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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어긋남, 어쩌면 영원함.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서 남겨진 것을 생각한다. 해가 저문 시간에서 남아있는 빛을 떠올린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삶을 스크린에 가져온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의 문을 여는 건 피아노 한 대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에 의한 쓰나미로 바다에 떠내려갔다 돌아온 피아노 앞에 사카모토 류이치가 있다. 둔해진 건반, 뒤틀린 현, 남아있는 상처의 흔적과 그렇게 울리는 둥탁한 소리. 하지만 영화는 이 아픔의 소리에서 애절한 시간을 길어낸다. 쓰나미로 인해 상처를 받은 피아노의 소리는 고장난 소리가 아닌 어딘가 기묘한, 그저 다른 소리고, 한 피해 지역의 학교 강당에서 사카모토 류이치가 연주하는 'Merry Christmas Mr. Lawrence''는 단순히 아픔을 위로하는 선율이 아닌 폐허 위에 남아있는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간의 자락이다. 음표 밖의 소리, 끝이 지난 이후의 시간, 그렇게 애절함이 완성한 음악. 사카모토 류이치는 중인두 암 3기를 진단받았다. 

쓰나미의 상처가 어린 피아노에서 시작해 사카모토 류이치의 지난 시간을 훑어가는 영화는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것, 사라졌지만 남아있는 것에 대한 믿음으로 흘러간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이 믿음은 현실 너머에 있어 연약하고 그래서 희망적이다. 쓰나미가 지나간 해변을 걸으며 바다와 바람, 흙과 나무의 소리를 채집하는 사카모토의 모습은 끝나버린 현실에서 남아있는 시간을 찾으려는 애씀이고, 동시에 죽음을 향해 흐르는 시간에서 움켜쥐는 생에 대한 강인한 의지다. 영화는 YMO란 이름의 밴드 활동을 했던 사카모토의 1970년대 시절부터 그가 참여했던 영화를 인용하며 이야기를 끌고가는데, 묘하게도 그가 참여한 영화들의 제목은 죽음과 마지막 앞에 멈춰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마지막 사랑'과 '마지막 황제', 그리고 오시마 나기사의 '전장의 크리스마스.'. 사카모토 류이치의 지나간 시절은 지금 여기 없지만 이렇게 거기에 있다. 

하루 열 알 가까운 약을 먹는 나날 속의 사카모토의 삶을 그리는 영화지만 영화는 병과 싸우는 힘겨운 시간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영화는 숲속을 거닐며 자연의 소리를 수집하고, 집 안의 물건을 이용해 비 오는 날의 소리를 찾아내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모습에 집중한다. 바이올린이나 첼로가 아닌 넓고 둥근 금속판을 현으로 켜며, 머리에 커다란 통을 쓴 채 비를 맞으며, 아프리카와 북극을 오가며, 쓰나미에 쓸려갔다 돌아온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며 사카모토 류이치는 숨겨진 소리를 담아낸다. 악기와 음표를 넘어선 이 소리는 현실 너머의 시간을 이곳에 데려오고,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한 세계를 드리운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희망, 아직 다 끝난 건 아니라는 용기, 그렇게 품어보는 여기가 아닌 어딘가의 소리. 사카모토 류이치가 참여한 베르톨루치의 영화 '마지막 사랑'에 나오는 한 구절은 어쩌면 사카모토 류이치가 바라봤고, 바라보고 있는 세계가 아닐지 모르겠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삶은 무한한 것이다.'  그렇게 사카모토는 죽음보다 생 곁에 있다. 

영화에는 오선지에 음표를 그려넣는 사카모토의 모습이 자주 보인다. 사카모토 음악의 시작은 피아노고, 그는 여전히 피아노로 악상을 떠올린다 말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의 음악은 음표 밖을 바라보고 있다. 쓰나미에 휩쓸렸던 피아노는 인간이 무리하게 조율한 소리를 다시 자연이 본래의 소리로 돌려놓은 것이고, 건반에서 울려퍼지는 피아노의 소리는 어김없이 사라지고 만다. 피아노 앞에서 사카모토는 점점 작아지는 소리를 들으며 사라지지 않는 소리를 찾고 있다. 애처로운 용기이고, 애달픈 희망이며, 지지 않는 믿음이다. 그가 아프리카와 북극을 찾은 것은, 환경 문제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본래의 소리, 본래의 시간, 본래의 삶에 다가가기 위함이었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처음 구입했던 사카모토의 1998년 앨범 'BTTB'와 지난 해 발매됐던 앨범 'ASYNC' 사이의 괴리는 이렇게 이해된다. 그가 좋아하는 타르코프스키 영화 속 젖은 날의 비 소리처럼 사카모토 류이치 음악은 어긋남(Zure), 음표 밖의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저 소리가 펼쳐내는 세상이 어쩌면 있다. 
by ABYSS | 2018/06/20 11:51 | Cultur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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