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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프랑스 남쪽의 작은 마을 세라에 사는 장 루이는 불현듯 이야기한다. "프랑소와가 내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의 이 혼잣말은 묘하게 무언가 암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는 프랑소와가 누구인지 모르고, 장 루이가 왜 이러한 말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장 루이의 느낌적 느낌만이 영화의 심부를 울린다. 영화는 여느 에릭 로메르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무수한 대화 장면들로 이루워진다. 근황을 묻는 일상적인 이야기부터 종교와 철학을 오가는 심오한 얘기까지 대화가 영화의 품을 넓힌다.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역시 마찬가지다. 엔지니어로 일하는 장 루이는 클레몽의 거리를 걷다 철학과 교수인 친구 비달을 오랜만에 만난다. 둘은 짤막하게 인사를 나누고 카페에 앉아 얘기를 하기 시작하는데 그 대화가 자못 의미심장하다. 비달이 말한다. "A 사회와 정치에는 의미가 없다가 참일 확률이 90, B 의미가 있다가 참일 확률이 10." 돌연 무슨 얘기인가 싶어 의아하다. 하지만 이 얘기는 이내 영화의 본심과 연결된다. "B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역사에 의미가 있다는 가설만이 나로 하여금 제대로 인생을 살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 인생과 행동을 정당화 하기 위해 B를 선택해야만 한다." 에릭 로메르는 선택에 대해 이야기한다. 

비달은 루이에게 의사 친구인 모드 집에 함께 가자고 한다. 루이는 사양을 하다 마지못해 가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이 시작된다. 모드는 자유 사상가 출신의 무신론자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루이와 달리 아무것도 믿지 않는 신앙을 갖고 있다. 비달과 루이, 그리고 모드는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또 한번 에릭 로메르 특유의 깊고 넓은 대화의 세계가 펼쳐진다. 파스칼의 <팡세> 이야기부터 루이의 원칙과 신앙, 그리고 도덕과 금욕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짊어진 삶의 무게가 진중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비달은 갑자기 자리를 뜬다. 모드와 루이, 단 둘이 남게 된 상황. 영화는 루이를 시험에 들게 한다. 함부로 섹스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과 신념, 그리고 언젠가 아내가 될 게 확실한 프랑소와의 존재. 동시에 침대에 누워 루이를 유혹하는 모드. 원칙과 본능이 부딪힌다. 미래의 아내는 카톨릭 신자여야만 하고, 금발의 여인이여만 하는 원칙과 매력적인 모드의 유혹에 이끌리는 본능. 모드는 카톨릭 신자도 아니고, 금발도 아니며, 무엇보다 이혼녀다. 루이는 곁으로 오라는 모드의 말에도 이불을 뒤덮고 의자에 앉아 자려한다. 원칙이 본능을 밀어낸다. 결국 루이는 자신의 원칙을 지킨다. 루이는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을 보내며 별 탈 없이 자고 나온다. 

루이는 프랑소와와의 결혼에 성공한다. 귀여운 아이도 생겼다. 루이와 프랑소와 그리고 둘의 아들은 어느 해변으로 휴가를 가는데 그 길에서 모드를 만난다. 모드와 프랑소와 사이의 기류가 수상찮다. 둘이 아는 사이인 것만 같다. 루이와 모드는 어색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헤어진다. 프랑소와는 모드의 남편과 사귀었던, 그래서 모드의 이혼 사유가 된 여자였다. 루이는 고민한다. 아마도 원칙이 부서지는 감정을 무참히 느꼈을 것이다. 프랑소와의 과거사는 루이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끝없이 펼쳐지는 하늘과 바다. 루이와 프랑소와는 이야기한다. 아니 말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 그런 이야기 그만 하기로 해요." 성탄절 미사 장면이 떠올랐다. "생생한 기쁨을, 오늘의 기쁨을 누리다." 어제, 내일이 아니라 오늘의 기쁨. 둘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과거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뛰기 시작한다. 앞을 향해 나아가는 셋의 등 위로 FIN 마침표가 찍힌다. 루이는 종교의 신념에 얽매여 살았던 남자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신부님은 말씀하신다. 기독교 신앙은 도덕의 법전이 아니라고. 기독교 신앙은 삶의 양식, 모험이고 신성함을 향한 모험이라고. 사람은 원칙과 신앙이 아니라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선택을 쌓아가며 매일을 살아가는 게 사람이다. "하느님께서 선택의 순간에 우리를 도우신다 하더라도 우리는 삶의 순간마다 무언가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믿어요." 프랑소와가 말했다. 루이는 비로서 삶을 살아가는 진리를 깨닫는다. 도덕, 종교, 여기저기 부딪히며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게 사람이다. 자유, 삶에 방해가 되는 원칙, 종교는 그 어떠한 원칙도, 종교도 아닐 거다. 
by ABYSS | 2017/05/21 12:40 | Ein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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