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패션 잡설

Airport Dressing

공항은 여름인가 겨울인가. 실내인가 실외인가. 퍼블릭인가 프라이빗인가. 옷이 꺼내 든 질문이다. 수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공항에서의 착장법은 난하고 묘하다. 공항 패션의 딜레마. 


지난
4월 레이디 가가가 한국에 도착했다. 2012 월드 투어의 첫 공연을 위한 방문이었다. 김포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금색 줄이 장식된 순백의 롱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양손에는 색 맞춤 하얀 망사 장갑을 꼈고, 얼굴에는 진주 100여 개가 촘촘히 박힌 가면을 얹었다. 화장은 물론 풀 메이크업, 가슴골은 아슬아슬하게 파여 있다. 궁금했다. 그녀는 설마 저 기괴한 복장을 기내에서도 유지했을까. 아무리 일등석이라도, 에스코트를 받는다 해도 LA에서 김포까지 10시간은 넘게 걸린다. 물론 도착 2~3시간 전 기내에서 완성한 룩일 수도 있다. 레이디 가가의 전용기에는 드레스 룸부터 메이크업 룸, 스파와 마사지 시설 등이 갖춰져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무슨 고생인가. 1, 아니 길어봤자 5분의 포토 슛을 위해 이렇게 치장을 해야 하나. 게다가 고도 4000m로 나는 기내 환경은 꽤 고난스럽다. 슈퍼스타 레이디 가가에게 비행은 이동이라기보다 백 스테이지에 가까웠을 것이다.

공항에 갈 때면 종종 고민한다. 특히 5시간을 넘어서는 장시간 비행일 때는 더욱 그렇다. 무엇을 입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입어야 할지. 여행가는 마음에 새로 산 옷, 과감한 옷들을 꺼내보기도 하지만 기내에서 그렇게 치장한 룩의 소용은 어디에도 없다. 기껏해야 우리는 밥을 먹을 것이고, 잠을 잘 것이며, 반쯤 누워 영화를 볼 것이다. ‘방콕해서 할 법한 일들을 위해 공들여 풀 착장을 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마음껏 편해질 수만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어차피 잘 것이지만 잠옷을 입을 수는 없고, 어차피 양치하고 세수하겠지만 자다 일어난 얼굴로 공항으로 향할 수는 없다. 격식을 차리는 둥 마는 둥, 편의를 중시하는 둥 마는 둥. 마는 둥이 필요하다. 그나마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기내 특유의 암묵적인 양해와 간과가 아닐까. “어차피 편한 것이 좋지 않소?”, 또는 “You Know?!" 다소의 꼴불견도, 민폐도 참아야 하는 것이 공항이고 기내다.

제발, 절대 요가 팬츠만은 입지 마시오.” 패션 웹진 <Closet Couture>의 에디터 알리슨 윌슨(Alyson Wilson)이 던진 경고다. 공항 패션에 대한 노하우는 스타들의 공항 패션만큼이나 많은 패션 매체들이 다루고 있는 소재다. 워낙 남의 옷 꼬집기를 좋아하는 동네니 어떻게 입어도 정답일 수 없는 여행자들의 공항패션이 그냥 넘어갈 리 없다. 대략 이곳저곳의 이야기들을 모아보면, 절대 착용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요가 팬츠를 비롯해 파자마, 3인치가 넘어가는 힐, 실크나 새틴 등의 얼룩이 쉽게 지지 않는 소재의 옷 등이다. <얼루어(Allure)> 미국 판의 한 기자는 주시 쿠튀르(Juicy Couture)의 파자마라 해도 파자마는 명백한 홈웨어(definitely fucking home-wear)라고 쏘아붙였다. 순화해서 말하면 많은 사람과 마주하는 곳에서 최소한의 매너는 지키자는 뜻일 것이다. 반대로 유용할 아이템으로는 스카프, 캐시미어 소재의 가벼운 카디건, 레깅스, 양말, 플랫 슈즈 등을 꼽았다. 스카프와 카디건은 기내 온도가 상당히 낮다는 의미에서 보온용으로, 양말은 에티켓이자 긴급 상황 시 안전하고 가벼운 걸음으로 도망갈 수 있어서, 그리고 플랫 슈즈는 비행기 안팎 기압차를 고려해 발의 피로를 덜어준다는 이유로 유용하다는 것이다. “대부분 괜찮아, 괜찮아라고 하지만 기내에서 루부탱 10센티 힐이 괜찮은 여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Style Sizzle>이란 패션 블로그를 운영하는 한 패션 칼럼니스트의 말이다.

정답은 없다. 참 많은 문제들이 그렇지만 공항 패션에도 모두를 만족시키는 답은 없다. 날씨만 생각해도 인천공항에서 베스트였던 의상이 남반구 뉴질랜드에서는 정신 나간 옷일 수 있고, 아부다비 공항에서 완벽했던 옷이 북유럽 어느 공항에서는 난감한 천 조각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그저 오답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계산하고 또 계산할 뿐이다. 캐주얼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룩을 하나의 아웃라인으로 잡고 필요한 옵션을 하나씩 더해 가면 어떨까. 불편, 민폐 등 부정적인 경험들을 떠올리며 하나씩 제거해가는 소거법도 유용할 수 있다. 가령 머리 스타일 걱정을 더는 모자를, 메이크업의 수고를 줄이고 기내에서의 수면을 돕는 선글라스를, 그리고 목 베개를 걸고 공항 이곳저곳을 활보하지 않는 체면을 챙기자. 우리 모두 레이디 가가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녀 정성을 따라해 볼 수는 있다. 100분의 1, 1000분의 1도 좋다. 사소한 차이로 공항패션이 다소 쉬워진다.

by ABYSS | 2012/06/22 10:56 | Travelog | 트랙백

트랙백 주소 : http://monoresque.egloos.com/tb/333751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