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사마 야요이의 루이비통

루이비통이 동그라미를 그렸다. 빨갛고, 파랗고, 노란 도트 무늬가 원피스와 핸드백을 가득 채웠다. 루이비통과 마크 제이콥스의 팝 아트 콜래보레이션 프로젝트 2. 그 주인공은 쿠사마 야요이다.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크 제이콥스는 무라카미 다카시의 지난번 콜래보레이션 프로젝트에 이어 이번에도 일본에서 영감을 찾았다. “루이비통의 모노그램, 쿠사마 야요이의 땡땡이(polka dot)가 갖는 공통점을 보았고, 둘 다 끝이 없다는 것, 영원하다는 점이 협업의 출발이었다고 했다. 결과는 긍정적이다. 지난 6월 첫 공개된 루이비통의 쿠사마 야요이 콜렉션은 루이비통의 컬러를 유지하면서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 세계를 위트 있게 반영했다. 쿠사마의 트레이드와 같은 노란 호박 조각은 곡선이 도드라진 힐과 지갑, 반지로 변형됐고, 그녀의 땡땡이가 가득한 빨간 원피스는 모던하면서 팝한 한 벌이 되었다. 무엇보다 파자마부터 안경, 그리고 스카프와 각종 악세서리까지 변주된 다양한 아이템은 타임리스(Timeless), 영원(Infinity)'이라는 쿠사마의 세계와도 상통해 호평을 받았다. 쿠사마 야요이는 아마 지금 가장 뜨거운 아티스트일 것이다.

쿠사마 야요이의 나이는 올해로 83이다. 강렬한 색채의 사용, 다소 기이한 모양의 조각 등 과감한 작품 세계 때문에 종종 오해를 받곤 하지만, 그녀는 소위 말해 요즘 아티스트가 아니다. 쿠사마 야요이는 1950년대 일본에서 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1957년 뉴욕으로 건너갔다. 이미 세상을 떠난 도날드 져드(Donald Judd), 조셉 코넬(Joseph Cornell)과 친구며, 앤디 워홀(Andy Warhol),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보다는 선배다. 미국 팝 아트 운동의 시작을 온몸으로 체험했으며, 1960년대 반전, 평화 운동에도 참여했다. 한 마디로 할머니 아티스트며, 일본에선 모던 아트를 개척한 일종의 선구자다. 하지만 서구가 일본의 게임,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또는 오타쿠 문화가 떠오르면서, 단적으로 무라카미 다카시의 캐릭터와 작품들이 수십만 달러에 팔려나가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작품 세계도 비슷하게 간주되거나 이해됐다. 쿠사마 야요이가 1980년대 활동을 잠시 접고 90년대 다시 재개하며 재발견 된 탓도 있지만, 전 세계적인 팝 아트의 유행은 그녀를 종종 일본 오타쿠 문화 속에 위치지었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세계는 분명 애니메이션과 게임의 비즈니스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은 확실한 자기 반영의 베이스에서 태어났다.

“I'm here, but nothing" 2000년 쿠사마 야요이가 발표한 작품의 타이틀이다. 네모난 작은 방에 색색깔 조명을 설치해 내부를 온통 땡땡이로 채운 이 작품은 화려하지만 쓸쓸하고 컬러풀하지만 음울하다. 1950년대 뉴욕으로 건너가 자신은 그저 작은 동그라미에 지나지 않게 느껴졌다고 고백했던 쿠사마는 세상을 수많은 자신의 흔적으로 도배했다. 지난 6월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에서 열린 쿠사마 야요이의 회고전에서도 이 고백의 여운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 다수 있었다. 1950년대 쿠사마가 뉴욕에서 생활할 당시 사진을 묶은 슬라이드 쇼는 묵묵히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쿠사마는 뉴욕의 회색 콘크리트 벽 사이에 기모노 차림으로 서서 자꾸 뒤를 돌아본다. 어릴 적부터 정신분열증을 앓았던 그녀에게 세상은 끊임없는 공포였을 것이며, 뉴욕이란 새로운 공간 속에서 그녀가 숨을 곳은 자신의 몸밖에 없었을 것이다. 1973년 파트너이자 친구였던 조셉 코넬이 죽은 뒤 그녀는 한동안 소설만 쓰며 은신하기도 했다. 무한 확장하며 자기 번식하는 땡땡이의 세계. 그 슬픈 운명 속에 쿠사마 야요이의 삶이 있다. 루이비통의 팝한 변주가 묘한 기품을 갖추고 있는 것도 쿠사마의 고독과 아픔, 그리고 용기를 품고 있어서일 것이다.

by ABYSS | 2012/07/20 10:09 | Culture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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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에반 at 2012/07/20 17:40
잘 읽었습니다 ㅎㅎㅎ 덕분에 좋은 정보를 얻었어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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