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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필요없는 쇼핑의 필요

어려운 아보카도와 곤란한 슈트

 

아보카도를 샀다. 2개 1팩에 8000원. 딱히 먹고 싶었던 것도, 떠오르는 레시피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마트를 돌았고, 아보카도가 있었고, 예뻐 보여 한 팩을 카트에 담았다. 물론 몇 번은 요리를 시도했다. 간장 소스에 참치 살과 섞어 덮밥도 해봤고, 김에 얹어 어설픈 아보카도 롤도 말아봤다. 하지만 혼자 사는 주방에서 아보카도는 그리 쓸모 있는 식재료는 아니다. 기껏해야 샐러드거나 아침 대용 과일에 불과하다. 심지어 손질도 쉽지 않고, 먹을 타이밍을 파악하기도 간단치 않다.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그의 에세이집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에서 “아보카도는 어렵다”고 툴툴댔다. 얼마나 익었는지 색이 정확히 얘기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보카도를 산다. 그리고 가끔 먹는다. 냉장고 과일 칸에 넣었을 때, 그리고 한번 씻어 싱크대 선반 위에 올려놓았을 때 그림이 다른 어떤 과일보다 탐나기 때문이다. 청록과 흑록의 컬러, 묘하게 굴곡진 타원형이 웬만한 장식품 이상의 역할을 한다. 비슷한 이유로 자몽, 그레이프 후르츠, 그리고 브로콜리를 산다.

2008년 아이폰이 등장하고 세계 각국의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어플리케이션을 쏟아내기 시작했을 때 독일의 한 개발자 아르민 하인리는 ‘나는 부자다(I'm am rich)’라는 어플을 내놓았다. 황당하게도 이 어플리케이션은 스마트 폰 화면에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만을 보여줬다. 그게 다였다. 더 이상의 옵션도, 소셜 기능도 없었다. 심지어 보석의 색깔을 바꾸는 터치조차 불가능했다. 하지만 가격은 무려 999달러. 비난과 항의에 애플사가 출시 익일 삭제 조치를 했지만 24시간 동안 이 비싼 바보 어플을 다운로드 받은 사람은 6명이나 됐다. 비싸니까 존재하는, 부자의 존재 증명을 위한 어플. 세상엔 이런 쇼핑도 있었다. 장식용으로 아보카도를 사거나 부자임을 입증하기 위해 어플을 다운로드 하는 것은 분명 합리적인 소비는 아닐지 모른다. 쓸모에 100% 부합하지 않기에 사치나 허세, 혹은 된장 질이라 욕먹을 수 있다. 하지만 감자와 호박, 두부를 사 된장찌개를 끓이는 일보다 아보카도 두 알로 주방의 디스플레이를 바꾸는 즐거움이 더 크다면, 그리고 무료 어플로 스마트폰을 꽉 채우는 것보다 999달러짜리 보석 하나를 고이 모셨을 때 만족감이 더 높다면 아보카도를, 그리고 보석을 사는 것이 정답이 아닐까. 눈치 보면 하는 쇼핑만큼 틀린 것은 없다.

역으로 어쩔 수 없이 하는 쇼핑이 있다. 나에겐 그것이 슈트다. 아동복을 제외하고 내가 처음 구입한 슈트는 대학 졸업 무렵 스트라이프 무늬의 검정 한 벌이었다. 두 번째는 면접을 준비하며 산 검정색 벨벳 한 벌이다. 하지만 평소 슈트를 거의 입지 않는 처지다 보니 옷을 사러 갈 때마다 곤욕을 치렀다. 취향도 모르겠고, 사이즈는 더 모르겠고, 싸봤자 수 십 만원을 넘는 가격은 그저 아깝기만 했다. 나에게 슈트는 완벽하게 남의 필요를 위한 쇼핑이었다. 게다가 쇼핑을 하는 과정 자체가 즐겁지 않았다. 일단 슈트를 사기 위해서는 슈트를 입고 가야 할 것 같았다. 그 압박감이 싫었다. 다시 한 번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들추면 그 역시 “슈트를 사러가기 위해 슈트를 산다”고 썼다. 이게 무슨 기똥찬 아이러니인가. 디자이너 브랜드의 청바지보다 아저씨 양복 차림이 더 환영받는 것이 백화점 정장 코너다. 기성복 중에서는 맞는 사이즈를 찾기도 힘들었다. 익숙하지 않다보니 어쩌다 한 번 입고 외출을 하면 빌려 입은 옷 마냥 불편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슈트를 샀다. 그리고 산다. 누군가의 결혼식을 위해 혹은 장례식 때문에, 가끔은 회사의 높은 사람들과의 미팅 용으로 슈트를 구입한다. 매번 참 아까운데 이래서 쇼핑이 사회활동이란 생각을 한다.

필요해서 쇼핑을 한다. 대충 누구나 그렇다. 하지만 때로는 쇼핑이 필요를 낳는다. 그리고 그 필요 덕에 사는 게 조금은 즐거워진다. 아보카도를 알고 내 요리 인생은 한 뼘쯤 커졌다. 여전히 먹는 게 절반, 버리는 게 절반이지만 그 절반은 분명 이전에 없던 절반이다. 슈트는 여전히 어렵다. 자주 입어봐야 편해질 텐데 자꾸 피하기만 하니 쉬워질 리가 없다. 그럼에도 싫지는 않다. 처음보다 두 번째가 나았고, 두 번째보다 그 다음이 편했다. 마치 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처럼 슈트와 함께 슈트의 부가 활동들을 체험했다. 백화점 정장 코너의 세계를 알고, 신사화 매장에서 사이즈를 찾고, 동시에 취향을 조금씩 길러가면서 쇼핑이란 이름의 사회활동을 했다. 결국 쇼핑은 필요거나 충족이다. 필요하지 않지만 충족될 수도 있고, 충족되지 않지만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저 예뻐서 하는 쇼핑, 남의 필요를 위한 쇼핑에도 값어치는 있는 법이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지만 세상에는 이런 쇼핑도 있고, 저런 쇼핑도 있다. 

by ABYSS | 2012/09/08 23:01 | Cultur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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