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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경주


장례식으로 향한 발걸음이 돌연 경주로 이어진다. 박해일, 신민아가 주연한 장률 감독의 영화 <경주>는 북경대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최현(박해일)이 경주에 와 겪은 하루의 일을 그린다. 영화를 보면서 '이거 굉장히 이상한 영화구나' 싶었다. 최현은 담배를 끊었음에도 한 개피를 꺼내 냄새를 맡고, 산책을 하다 기 체조를 하는 남자를 마주쳐 함께 기 체조를 한다. 더불어 술자리에서 낫또를 꺼내 먹는가 하면, 늦은 밤 윤희(신민아)의 집을 방문해 촛불을 키고 끈다. 게다가 영화에는 비슷한 장면이 자주 출현한다. 공항 재떨이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여자는 경주 재떨이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군인으로 반복되고, 여정(윤진서)을 점 집으로 부른 할아버지는 최현이 방문한 같은 점집의 여자로 변주된다. 엉뚱함과 반복, 변주의 풍경이 그려진다.

경주로 향한 최현의 여정은 곧 춘화를 찾으러 가는 길이다. 7년전 경주의 전통 찻집 '아리솔'을 방문해 춘화를 본 그는 다시 그곳을 방문해 춘화의 행방을 묻는다. 하지만 춘화가 그려져 있던 벽은 빈 벽이 되어있다. 현은 찢어진 벽지의 틈새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처음에는 이 공간과 안어울리다 생각했는데, 생각을 해보니 그냥 이 곳과 처음부터 함께였던 것 같아서요." 이 장면은 현이 담배를 들고 냄새를 맡는 신을 소환한다. 존재하는 사물과 그 흔적, 혹은 공기를 영화는 탐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가 그림자에 꽤 신경을 쓴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일 거다. 

영화에는 총 네 번의 죽음이 등장한다. 현의 선배의 자살, 공항과 공원에서 현을 스쳐간 한 모녀의 동반 자살, 그리고 윤희의 남편의 죽음, 점 집 할아버지의 죽음. 영화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넓게 뉘어져 있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윤희 집의 공작 그림은 영화의 결말을 암시한다. "사람 흩어져, 초승달 떠, 하늘이 맑은 물" 그림에 쓰여진 글귀를 현이 읽고 연희는 그 글귀를 두 번 더 읽어달라고 요구한다. 여기서 '사람 흩어져'는 지나간 시간 혹은 죽음을 의미할 것이고 '초승달 떠, 하늘이 맑은 물'은 그 죽음의 그림자가 걷힌 하늘을 의미할 것이다.

최현이 서울로 돌아간 뒤 윤희는 춘화를 가렸던 벽지를 뜯어낸다. 그림자가 걷힌 하늘이 떠오른다. 그렇게 드러난 춘화에는 '한잔하고 하세'라 쓰여져 있다. 친구 둘과 다시 아리솔을 방문한 현은 드디어 춘화를 마주한다. 7년 전의 춘화, 그리고 지금의 춘화. 영화는 죽음의 그림자를 풍경으로 생을 이야기한다. 반복되고 변주되는 우리의 일상을 드러내 생의 본질을 건드린다. 어딘가 홍상수 영화의 냄새도 많이 나는 <경주>는 냄새, 공기로 접근해 삶의 기운을 끓어내는 영화다.
by ABYSS | 2017/03/20 14:35 | Cultur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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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by ABYSS at 09:38
헉 이거 진짜 재밌게봤는데...
by 배고픈 무명씨 at 03/28
다들 그렇군요.;;
by ABYSS at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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