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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나이 먹음에 관하여
병원엘 항상 엄마와 함께 간다. 이틀에 하루 꼴로 앙칼진 바람이 불어 왔던 날 퇴원했으니 외래 진료를 받기 시작한 게 어느덧 세달째가 된다. 감염 내과도, 신경정신과도, 비뇨기과도 엄마와 함께 택시를 타고 인천 구월동의 길병원으로 향한다. 나이 서른 여섯 먹은 사내의 일상이다. 이뿐 만이 아니다. 항상 뒷자리에 앉는 엄마는 차가 목적지에 다다를 때쯤 앞에 있는 나에게 만원 짜리 한 장을 건네신다. 계산을 하라는 거다. 그리고 남은 거스름돈은 항상 내 몫이 된다. 마치 용돈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매번 병원에 갈 때마다 돈을 번다.

엄마는 1949년 생, 69세, 나는 1982년 생, 36세. 서른 세 살 차이의 엄마와 나다. 숫자만 생각하면 엄마보단 어머니가 더 어울릴 나이 차다. 하지만 나는 태워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엄마를 어머니라 불러본 적이 없다. 어릴 적의 호칭인 엄마가 나이를 먹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병원 안을 돌아다닐 때, 택시를 타기 위해, 혹은 버스 정류장까지 엄마와 나는 손을 잡고 걷는다. 때때론 팔장을 낀다. 누군간 나를 마마보이라고, 또 엄마를 너무 아들을 감싼다 생각할 테지만, 나에게 엄마란 호칭은, 손을 잡는 행위는, 그리고 팔짱은 나이 차와 무관하다. 시간이라는 건, 세월이라는 건 특정 관계 안에서 그 나름의 속도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서른 여섯이나 먹기까지 나는 나이 먹음을 어떻게 체감하고 있는 걸까. 10대와 20대, 그리고 30대라는 큼직막한 구분을 나는 실제로 차이로 느꼈는가. 서른 여섯이나 먹은 지금의 나로서 대답은 아니오다. 시간은 숫자로 굴러가지만 경험으로 세어진다. 엄마와 나 사이의 경험, 아빠와 나 사이의 경험, 그리고 누나들과 나 사이의 경험이 나를 나이 먹게 한다. 대자연에 흐르는 전체의 시간이 있다면 각각 관계에 존재하는 사이의 시간도 있는 거다. 경험과 경험이 쌓이고 쌓여 한 상자를 채우면 새로운 상자 하나가 나타나 나를 대자연의 시간으로 이끈다. 그렇게 나는 나이를 먹는다. 

사이의 시간은 견고하다. 대자연의 시간이 물 흐르는 것처럼 지속된다면 사이의 시간은 수많은 머무름을 거쳐 흐른다. 엄마와 나 사이의 호칭, 존댓말과 반말의 혼용은 대자연의 시간이 방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마마보이도 아니고, 나의 엄마는 아들을 너무 감싸는 여자도 아니다. 나이 서를 여섯이나 먹어 용돈이나 타 쓴다고 욕 먹을 일도 아닌 거다. 엄마와 나 사이엔 엄마와 나만의 시간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이의 시간 덕에 우리는 서로를 그리고, 아끼며, 사랑할 수 있다. 나이 먹음과 상관 없는 관계의 시간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살이다. 
by ABYSS | 2017/03/31 16:29 | Ein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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