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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그래도 살아간다


1996년 여름, 하늘을 날던 연이 서서히 추락한다. 일곱살 소녀가 살해당하는 순간이다. 사카모토 유지 작가의 드라마 <그래도 살아간다>는 잔인한 사건으로 시작한다. 중학생 켄지(카자마 슌스케)가 호숫가에서 연을 날리며 놀고 있던 친구의 여동생 아키(신타 마키)를 무참히 때려 죽인다. 이 때 아키의 오빠 히로키(에이타)는 친구와 에로 비디오를 돌려보고 있고, 아키의 아빠 타츠히코(에모토 아키라)는 게임 센터에서 파친코에 여념이 없다. 아무도 모르는 새 한 소녀가 목숨을 잃는다. 딸을, 여동생을 지켜주지 못해 슬픔이 사무친다. 드라마는 이후 15년 후로 이동한다. 피해자의 가족은 아픔을 묻거나 잊지 못해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가해자의 가족은 악의성 장난 전화에 시달리며 괴로운 나날을 이어간다. 잔인한 살인 사건이 남긴 아프고 쓴 파장이다.

가해자 가족의 아픔은 피해자의 상처 앞에서 작아져야 할까. 가해자 가족의 고통은 피해자의 치유를 위해 가산되어야 할까. <그래도 살아간다>가 제시하는 물음이다. 드라마는 15년간 켜켜이 쌓인 먼지를 걷어내듯 인물들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절절하고 애달프게 그려낸다. 가해자 켄지의 여동생인 후타바(마츠시마 히카리)는 남들의 눈이 무서워 메이크업도 하지 못하고, 피해자 아키의 오빠인 히로키는 복수를 다짐하며 칼을 지니고 다닌다. 양쪽 모두 15년 전 사건에 매여 나아가지 못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을 이야기하는 이 드라마에서 악과 선은 두부 자르듯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다. 가해자의 가족은 미디어의 폭력에 시달리고 피해자의 가족은 가해자에게 빼앗긴 15년 때문에 울분으로 매일을 증오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양쪽 모두 피해자가 되는 꼴이다. 어느 쪽이든 오늘같지 않은 오늘을 산다.

범죄를 다룬 작품이지만 <그래도 살아간다>가 응시하는 건 누가 범인이고 누가 피해자인가가 아니다. 드라마는 속죄와 용서를 깊이 파고든다. 가해자의 가족이 어떻게 죄를 다 갚을 수 있는지, 피해자의 가족이 어떻게 가해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역설의 상황 속에서 치밀하게 묘사한다. 결코 간단하지 않은 감정의 굴곡을 최선을 다해 표현한다. 칼을 지니고 다니며 복수에 이를 갈았던 히로키는 가해자의 여동생 역시 힘들어하고 있음에 칼을 내려놓고, 분노에 휩싸였던 감정은 그렇게 뭔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 가슴을 짓누른다. 증오에 가득차 연일 전화로 피해자 가족을 괴롭혔던 히로키의 엄마 쿄코(오타케 시노부) 역시 가해자의 엄마 타카미(후부키 쥰)를 만나 서로가 다르지 않음에 눈물을 흘린다. 미워해도 어찌할 수 없고, 사죄해도 어찌할 수 없다. 드라마는 딸이 살해당한 괴로움과 아들이 살인을 저지른 괴로움이 결코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결국은 같은 배를 탔다는 사실. 그래서 이들은 앞으로의 일을 같이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살아야만 살 수 있다.

가해자의 살의와 범행, 피해자의 분노와 슬픔. 이렇게 치열한 이야기지만 <그래도 살아간다>는 가해와 피해로 감정을 재단하지 않는다. 각각 가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으로 만난 히로키와 후타바(마츠시마 히카리)는 가해자와 피해자이기 앞서 한 명의 똑같은 사람으로서 만남을 갖는다. 그리고 그 만남이 죽음이라는 어둠을 품고 있음에 애달프고 슬프다. 둘은 솔직히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말을 쉬이 잇지 못한다. '아레(그거)'를 자주 내뱉으며 감정을 숨긴다. 특히나 후타바가 히로키가 좋아하는 냉동 귤을 차에 몰래 두고 나오고, 카페테리아에서 냅킨에 '좋아했어요'라 조심스레 적는 장면은 가슴이 시리다 못해 아프다. 피해자의 오빠이기에, 가해자의 여동생이기에 둘은 쉬이 사랑에 빠지지 못한다. 그렸다 바로 지어낸 사랑이다.

지독한 고통과 슬픔만이 남은 세상, 도망칠 일밖에 없는 것 같은 삶. 출구는 없는 걸까, 속죄와 용서에 얽매인 시간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 걸까. <그래도 살아간다>는 독하게 쓰라리고 아픈 드라마다. 질곡의 딜레마에 갇혀 숨이 막힐 것 같은 일상이 지난하게 이어진다. 하지만 드라마는 인물들을 포기하게 두지 않는다. 아프고 쓰려도, 힘들어 미칠 것 같아도, 슬픔이 말라 매마른 삶일지라도 살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히로키는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며 15년 만에 처음으로 창 밖의 아침 해를 봤다고 말한다. 이렇게 새로운 오늘이 시작된다. 더불어 히로키는 후타바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일상을 이야기한다. 엄청난 소나기를 맞았다고, 매일 아침 다섯시 반에 일어나 빗자루로 마른 풀을 쓸었다고, 대수롭지 않은, 하찮은 일들을 글로 주고받는다. 흔히 있는 일상이 고된 시간 끝에 찾아온다. 죽이려 했고 죽으려 했으나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했던 나날들. "비가 그치고 깨끗이 씻겨 내려간 거리가 빛나는 것을 봤어요". 히로키는 읇조린다. 그러니까 그래도 살아간다.


by ABYSS | 2017/04/15 14:49 | Culture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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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라비안로즈 at 2017/04/16 11:09
저렇게 가해자가 힘들어하며 살수만 있어도.. 피해자의 가족은 살수 있을텐데... 가해자가 도리어 너무 떳떳하게 잘 지내는게 힘들뿐이죠. 우리나라는 미안하다고 하지도 않을뿐더러 너무 잘 쳐웃고 지내고 있어서...
Commented by ABYSS at 2017/04/16 11:41
그래서 이렇게 가해자의 가족, 피해자의 가족 입장도 공들여 관찰한 작품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범죄의 잘잘못은 물론 가해자의 가족, 피해자의 가족이 겪는 아픔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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