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제인



흔들리는 나무 가지, 들려오는 바람 소리, 천장을 빙그르르 도는 미러볼과 뉴 월드라는 간판. <꿈의 제인>은 처음부터 현실 어딘가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지만 보일 것 같은 세계를 조금씩 드러냅니다. 힘들고 아픈 현실에 비상구라도 내어 쉬게 해주려는 듯 칠흙같은 현실에서 용케도 출구를 찾아내 유영합니다. 제인(구교환)은 체념을 일상처럼 달고 사는 여자고, 소현(이민지)은 갈 곳 없이 쉼터를 떠도는 소녀며, 심터 커뮤니티에 매여있는 무수한 소년과 소녀들은 자본주의의 냉혹한 칼날을 하루도 빠짐없이 느끼며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갈 곳이 없다는 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한다는 건 세상에서 유리될 수 밖에 없는 지옥같은 처지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세상을 비판하는 대신 이들의 삶을 보듬습니다. 제인을 엄마라 부르며 따르는 아이들에게 일상을 안겨주고, 소현의 인생이 휘발되지 않게 편지로 남겨둡니다. 암흑같은 현실 한 켠에 자그마한, 하지만 모두가 편하게 숨 쉴 수 있는 세상이 있다고, 있을 수 있다고 작게 읊조립니다. 이들에겐 하늘의 달빛 대신 천장의 미러볼이 있고, 날카로운 바람이 부는 현실 대신 클럽의 따듯한 조명이 흐르는 뉴 월드가 있습니다. 영화는 현실의 비참함과 참혹함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지만 저는 이 영화에서 실낯같은 희망을 보았습니다. 신과 신 사이에 의미없이 흐르는 풍경에서 들숨을 느꼈고, 모든 걸 다 잃고 달리기 시작하는 소현의 모습에서 날숨을 느꼈습니다. 죽어가는 세상, 보이는 것들로만 가득한 지옥에서 영화는 생을, 보이지 않음의 희망을 얘기합니다. 꿈은 자고 일어나면 깨어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저에게 <꿈의 제인>이 특별하게 다가온 건 영화가 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기운 때문이었습니다. 제인은 잘못 태어난 여성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하반신에 달려있는, 보이는 것 때문에 괴롭습니다. 자신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은 그녀가 거지말쟁이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말은 거짓말이었다고. 그녀의 인생은 거짓말 투성이었습니다. 세상이 그녀를 거짓의 세상으로 몰았고 그녀는 아픔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로 살았습니다. 소현은 새끼 발가락이 하나 없습니다. 제인이 아무렇지 않냐고 묻자 그녀는 괜찮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가끔씩 뭔가 있어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면서요. 보이는 것들만이 존재하는 세상은 우리 중 누군가를 삭제합니다. 숨 쉬고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숨통을 끊어 놓습니다. 그렇게 제인이 지워졌고, 소현의 발가락이 아파했습니다. 영화는 비관적입니다. 제인은 사랑하는 정호의 마음에 체념하며 몸을 던졌고, 쉼터에서 살아보려 애썼던 지수(이주영)는 쉼터를 벗어나지 못해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쉼터에서 아이들을 압박했던 병욱(이석형)은 자신이 저지른 죄가 되돌아와 죽임을 당합니다. 100분 남짓한 시간 동안 무려 세 명이나 죽은 셈입니다. 하지만 감독은 현실의 한 켠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제인이 소현을 위해 불렀다는 노래 장면은, 시간 상 맨 처음임에도 마지막에 다시 배치됐고, 몽롱하게 흐르는 플래시 플러드 달링스의 노래는 이들의 삶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 노래의 제목이 <Moving through Life>란 사실을 안 건 영화를 보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영화가 아름다운 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세상의 틈에서 온화한 거짓말 같은 시간을 찾으려 애쓰는 순간인 것 같습니다. <꿈의 제인>은 다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현실을 암흑으로 그려냅니다. 등장하는 아이들은 모두 연고가 없고, 제인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합니다.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특히나 쉼터에서 생활하는 대포(박강성)가 소현에게 검은색 비닐봉지를 씌울 때는 비명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는 이 영화가 사랑스럽습니다. 현실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범함을 느꼈고, 그래도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에선 아름다운 의지를 느꼈습니다. 트렁크를 이용해 시체를 나르는 장면에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도 떠올랐습니다. 단, 고레에다의 아이들이 일상을 어떻게든 이어가고자 애를 썼다면, <꿈의 제인>에서 아이들은 현실을 어떻게든 이겨내려 애를 씁니다. 그 '애를 씀', 여기에 내일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비상구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영화가 끝나도 이들의 삶은 끝나지 않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꿈이 잠에서 깨어나도 우리의 머리와 마음을 맴돌듯 제인의 품에서 벗어난 아이들은 여전히 아프고 힘든 일상을 살아갈 겁니다. 영화는 현실에서 이렇게 한 숨을 쉽니다. 

by ABYSS | 2017/06/08 16:03 | Cultur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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