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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엘르


폭력은 유전되는 걸까. 폭력을 이기는 방법은 또 다른 하나의 폭력 뿐인가. 폭력 앞에 사람은 무기력한가. 그럼 종교는 어디서 무엇을 하나. 이자벨 위페르가 주연한 영화 <엘르>를 보고 든 생각이다. 폴 버호벤 감독은 가장 급작스럽고 가장 지독해서 가장 폭력적인 장면을 태연자약하게 던진다. 그것도 수 차례에 걸쳐서. 보고있는 우리는 그저 폭력을 당할 뿐이다. 타인의 폭력은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고, 타인의 고통은 참고 있기 힘들 정도로 슬프다. 하지만 영화는 이내 폭력이 아닌 폭력의 자리, 폭력이 쓸고간 폐허의 기운에서 사람을 얘기한다. 미셸은 강하다. 그녀는 아마 내가 본 영화 속 가장 강한 인물 중 하나일 거다. 강간을 당하고도 직후 자리에서 일어나 깨진 그릇의 조각들을 쓸어 담고, 피를 흘리며 목욕을 하며, 전화로 방어 스시를 주문한다. 폭력이 침략했어도 그녀의 일상은 돌아간다. 그래서 고통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 거짓말같이 강한 여성의 온 몸을 통해 폭력의 주위를 사유한다. 폭력과 성욕은 얽혀있고, 성욕은 폭력과 동거한다. 미셸은 이 지독한 사실을 어디 기댈 대도 없이 혼자서 감내한다. 그러니까 그녀는 강하다. 그녀는 피하지 않는다. 그저 다가오는 것들을 있는 힘껏 살아낼 뿐이다. 

<엘르>는 폭력적인 영화다. <엘르>는 변태 성욕자가 나오는 영화다.  <엘르>에서 폭력은 유전되고 <엘르>에서 성욕은 폭력이 된다. 돌이킬 수 없는 도돌이표다. 하지만 동시에 <엘르>는 사람을 얘기한다. 폭력의 한 가운데서 미셸은 살아남았다. 그녀는 폭력의 트라우마로 인해 자신의 본능과 폭력 사이에서 길을 잃었고, 그녀의 일상에는 폭력이 잠복해있다. 가벼운 점심을 먹는 그녀 위로 음식물 쓰레기가 쏟아지고, 그녀가 사장으로 있는 회사의 직원은 그녀의 얼굴을 게임 속 강간 피해자와 합성한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산다. 기죽어서, 이곳 저곳 피해 다니며 사는 도망자의 삶이 아니다. 그녀는 이사를 가지도 않고,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갖고 있는 것, 얼마 안되는 힘과 본능으로 폭력에 맞설 뿐이다. 영화의 후반부 미셸은 친구이자 회사 동료인 안나와 함께 거울을 본다. 폭력의 트라우마, 폭력과 얽힌 성욕을 마주한 직후다. 나는 이 과정이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큰 거울 옆 확대경 속의 그녀 얼굴을 잊을 수 없다. 다소 과장되게 비쳐진 그녀의 얼굴은 폭력에서, 성욕에서 자유로워진 인간의 모습, 그 자체였다. 

영화를 보기 위해 표를 사는 동안 한 여자와 시비가 붙었다. 번호표는 왠일인지 고장이나 번호가 나오지 않았고 나는 그 앞에 서있었다. 그런데 그 여자가 나에게 줄을 서라고 했다. 나는 새치기 하는 거 아니라고 말했다. 이런 지난한 싸움이 꽤나 이어졌다. 화를 내고나면 후회만 든다. 내 안의 폭력이 떠나간 자리는 황폐하다. 나는 내가 몹시도 미워지고, 나는 내가 몹시도 싫어진다. 사노 요코 님의 <사는 게 뭐라고>에서 그 분도 이런 비슷한 감정을 말씀하셨다. <엘르>를 보고나니 폭력을 알 것 같았다. 사람은 누구나 못나고 아픈 구석을 몇 덩어리 쯤은 안고 산다. 그런 것 같다. 이걸 다스릴 줄 알면 정상일 테고 그렇지 못하면 폭력일 거다. 폭력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다. 우리 대다수가 그럴 것 같다. 하지만 <엘르>는 폭력을 성 안에서도 얘기하고, 성을 폭력과 함께도 생각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비폭력적인 영화다. 무엇보다 <엘르>엔 폭력보다 강한 사람이 있다. 미셸, 그녀는 말한다. "수치심은 우리가 하려는 것을 막을 정도로 강하지 않다"고. 
by ABYSS | 2017/06/23 15:15 | Cultur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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