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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자, 옥자의 고향은 칠레의 어느 들판이 아니다. 옥자는 앨리노이 주의 사육장에서 태어났고, 그의 엄마는 이름 모를 들판의 돼지가 아닌 루시 미란도가 경영하는 뷰티 회사 미란도 주식회사의 기술자들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자연이 아닌 기술의 품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미자가 옥자를 향해 이름을 외쳐 부를 때 그게 무엇을 향한 외침인지 의아했다. 미자가 사는 마을은 산골 깊숙한 곳의 꼭대기 집이지만 옥자를 구성하는 건 엄연히 조작된 유전자와 기술의 융합이다. 그녀는 결국 기술의 결합물을 아끼고 사랑하고 애지중지하는 것이다. 이를 보는 우리의 마음은 아려온다. 하지만 기술의 결합들이 오직 미자 곁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 조작 제품들은 영화 속 세계가 아니라도 현실에 널려 있고, 도심에선 자연 속 잔디보다 인조 잔디가 더 흔하다. 우리는 그런 기술의 결합들과 함께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상생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이미 조작돼 버린 동물을 어찌할 수 없고, 이미 변해버린 자연을 어찌할 수 없다면 이들을 있는 그대로 두고 함께 살아가자는 얘기 말이다. 그래서 <옥자>는 애달프고 또 애달프다. 광고 문구로 널리 알려진 것과 달리 <옥자>에서 뉴욕의 마천루를 질주하며 옥자를 구하는 미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단, 영화는 그녀의 마음을 쫓는다. 그녀에게 옥자는 동물도, 조작된 유전자의 결합물도 아니다. 옥자는 그저 옥자다. 어릴 때부터 함께 뛰놀고, 감을 던져 먹여주고, 품에서 잠을 잤던 옥자 말이다. 그래서 그녀에겐 동물 보호나 기업의 비밀 폭로 같은 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녀는 비밀 동물 단체 ALF의 리더 제이가 자신들의 미션에 동의하냐는 질문에 "옥자랑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에게 소중한 건 옥자와의 시간이고, 옥자와의 기억이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 어쩌면 이는 가장 과격한 주장이 됐는지 모른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은 현실과 부딪혀 이겨내야 하는 이상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옥자>는 싸운다. 비밀 동물 단체의 가면을 쓰고, 미자의 순수한 마음을 무기로 세상과 맞선다. 이는 우리가 그동안 저지른 잘못에 대한 비용이고, 우리가 감당해야만 할 책임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옥자>가 정직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있을 법한 판타지를 갖고 세상을 은유하는 것, 이는 영화의 힘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혼탁해진 자연을 원점에 돌려 바라봤다. 원초의 자연을 귀여운 판타지로 그려냈었다. 하지만 이는 애니메이션의 세계였고, 그로부터 이미 30년 가깝게 흘렀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은 혼탁해진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응시한다. 조작됐다면 조작된 대로, 더러워졌다면 더러워진 대로 자연을 바라본다. 그래서 나는 봉준호 감독의 시선이 보다 더 현실적이고 과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옥자는 하나의 징표일 뿐 전부가 아니다. 영화는 유전자가 조작된 세상의 이야기다. 그래서 여기에 최선은 없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차선이 존재할 뿐이다. 영화가 오가닉한 유전자 조작 자연을 그리는 이유다. 그럼에도 <옥자>엔 순수한 감정, 인간과 자연 본연의 감성이 살아있다. CG는 옥자의 감정을 실감나게 살려내고, 미자가 옥자를 향해 달려 안길 때, 옥자가 휠체어를 탄 환자를 위해 가던 길을 비킬 때, 그리고 옥자를 때리려는 제이의 쇠 막대기를 막을 때 나는 울컥하고 말았다. 무엇보다 옥자는 너무나 사랑스럽다. 자연이 변했어도 우리가 본성을 잃은 건 아니다. 자연 역시 순리를 잃진 않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무자비하게 돼지를 조각내는 신 뒤에 옥자 입 속에 숨어 탈출하는 아기 돼지, 변하지 않는 옥자에 대한 미자의 마음이 이를 증명한다. 조금 바꿔 말하면 <옥자>는 과격하고 순박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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