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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이게 다 핸드폰 때문이다


이게 다 핸드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자꾸만 버벅대기 시작하더니 어쩔땐 저절로 꺼지기도 했고 어쩔땐 제멋대로 전화를 걸기도 했다. 언젠가 어디서 떨어뜨렸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고 그러니까 원인도 모른 채 내 핸드폰은 혼자서 난리를 피우는 일이 잦았다. 언어가 일본어로 설정되어 버린 것 역시 미스테리다. 한글로 바꾸려 해보았으나 하지 못했다. 내가 아는 한 이 핸드폰에 그런 설정 기능은 없다. 애초에 이 핸드폰은 나에게 와서는 안됐을 거다. 같은 기종의 사이즈와 색상만 다른 초록색 핸드폰을 잃어버린 나는 하루도 참지 못하고 청담동 소니를 찾아가 같은 기종의 하얀색 커다란 버전을 사질렀다. 그 날 오후 늦게 핸드폰을 찾았다는 전화가 걸려 오리라고, 당시의 나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초록색 작은 버전의 핸드폰을 썼다. 출장차 찾은 태국에서 떨어뜨려 액정을 깨먹기전까지는. 그리고 그렇게 지금의 핸드폰이 다시 내게 왔다. 이게 다 핸드폰 때문이다.

핸드폰을 바꿨다. 바꾸게 되었다. 얼마 전 20% 할인을 조건으로 1년 약정을 했음에도 그랬다. 위약금이 몇 천원 나았지만 그랬다. 블랙베리의 프리브를 사고 싶었으나 출혈을 하고 싶진 않았고 그래서 적당하게 고른 게 아이폰 6다. 핸드폰은 이틀만에 왔다. 스페이시 그린 색상의 작은 버전. 나는 큰 것보다 작은 게 좋다. 이것저것을 세팅하느라 수 시간을 보냈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로. 그런데 다음 날 문제가 일어났다. 비하인드에서 퍼블리의 살롱 준비를 하고 나서려는데 이어폰이 핸드폰에 꼽히지 않았다. 나는 이어폰을 귀에 꼽고 음악을 들으며 비하인드에 들어섰었다. 이어폰의 두께가 줄어든건가 구멍이 늘어난건가.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노래는 듣지 못하며 버스 정류장에 갔다. 타야 할 버스의 대기 시간이 26분이다. 나머지 다른 하나는 16분. 지하철을 탈까 잠깐 생각을 했지만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그 때 16분이 금새 4분으로 줄더니 이내 곧 3분이 되었다. 잘됐다 싶었다. 또 그런데 왠걸. 3분이 지나도, 6분이 지나도, 9분이 지나도, 12분이 지나도 3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게 다 핸드폰 때문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던 버스는 결국 오지 않았다. 전광판에는 아마도 다음 버스의 대기시간인 28분이 나와 있었다. 짜증이 났다. 어쩔 수 없었다. 짜증이 난 사실이 또 짜증이 났다. 어딘가 누군가의 말에서 화를 내지 않으려고 화를 낸다는 말을 봤는데, 그때의 내가 딱 그랬다. 그래도 버스는 왔다. 사람은 가득했고 나는 어쩔수 없이 서서 가야 했다. 에어콘이 켜져있음에도 시원하지 않았고 노트북이 담긴 가방은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짜증을 참으려 애를 썼다. 일부러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다. 핸드폰 사건만 없었어도 짜증이 조금은 덜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밀어내버렸다. 그때의 나에게 필요한 건 엉덩이를 붙이고 앉을 자리 하나와 생각을 말끔하게 치워줄 어느 노래 한 곡이었다. 버스가 부평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내 앞의 여자도 내렸고 나는 앉을 수 있었다. 다 꼽히지 않는 이어폰을 꼽고 노래를 들으며 가고 있는데 왼쪽 팔목에 차고 있던 시계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봤더니 '심호흡 하세요'라고 되어 있지 않는가. 또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 마음 상태를 알아채고 말을 건건가. 아니면 하루의 어느 시간이 지나면 매번 이렇게 말을 걸도록 설정되어 있는 건가. 나는 따라해 보았다.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이게 다 핸드폰 때문이다.

미스테리했던 핸드폰과 이어폰의 불협화음 문제는 어처구니 없게 끝이 났다. 핸드폰을 교체하려고 전화를 하던 나는 또 짜증을 내고 있었고 누나는 다가와 자신이 해보겠다며 핸드폰과 이어폰을 손에 들었다. 그 다음 누나의 말에 나는 맥이 빠찐다. '세게 꼽아야지'. 원인은 내게 있었던 거다. 하지만 그게 아니기도 한 것이 핸드폰과 함께 배송돼 온 범퍼 케이스가 유난히 두꺼웠기 때문이다. 그렇다. 어쨌든 기묘한 기운 같은 건 내게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이 기묘하지 않은 기묘함을 통해 깨달은 건 짜증은 짜증을 불러온다는 것과 동시에 상황을 매우 짜증스럽게, 그러니까 해법을 찾을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는것, 아니 망쳐 버린다는 것이다. 우리 막내누나는 침착하고 꼼꼼하다. 내가 뭐가 없어졌다고 하면 다 찾아주곤 한다. 어제의 수트 바지 역시 그랬다. 나는 짜증을 냈지만 누나는 해법을 찾고 있었다. 짜증을 내면 보이던 해법도 보이지 않게 된다. 그게 짜증의 기운인 것 같다. 내게 기묘한 기운은 찾아오지 않았지만 짜증의 기운이 곁에 있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다짐을 해본다. 짜증을 내지 말자, 짜증을 내지 말자고. 이게 다 핸드폰 때문이다.






by ABYSS | 2017/07/29 11:51 | Ein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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