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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고레에다 히로카즈 '세 번째 살인'

누가 누구를 심판할 수 있나라는 질문, 우리는 인간이고 가해자도 인간이다

’なぜ殺したんですか, 왜 죽였나요?', 영화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은 어느 깊은 밤, 한 남자가 시체를 유기하고 있다. 시체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이는 장면은 흡사 구로사와 기요시의 '절규'를 떠올리게 한다. 아닌게 아니라 두 영화의 주인공은 모두 야쿠쇼 코지. 영화를 혼란의 구덩이로 몰아 붙였던 '절규'의 오프닝 신만큼이나 '세 번째 살인'의 오프닝은 강렬하다. 명확한 살인과 죽음, 그리고 역시나 명확한 범인과 피해자. 하지만 이 역시 혼란의 구덩이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세 번째 살인'은 세 개의 드라마와 세 개의 서스펜스로 살인을 에워싸는 작품이다. 서로 다르지만 교차하는 서스펜스는 아슬아슬한 줄을 타고, 거기서 발생하는 긴장감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조여온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전작과는 사뭇 다른 신작이다. 여기서 제목을 잠깐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영화에선 단 한 번의 살인 만이 등장한다. 그런데 제목은 '세 번째 살인' 여기에 영화의 포인트가 있다. 극중에는 호랑이는 어느 부위를 만지느냐에 따라 달리 인지하게 된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세번째 살인'의 살인이 딱 그러하다. 그 어느 것도 확실한 사실일 수 없고, 그 누구도 확실한 범인이라 말할 수 없는 상황.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 무엇으로도 심판할 수 없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인간이고, 가해자 역시 인간이다. 

제목부터 아리송한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왜 죽였나요?', 즉 살인의 동기다. 범인은 이미 자백을 해버렸고 형량 역시 사형임에 틀림없다. 그러니까 영화는 이 '왜'를 찾아 다니는 길을 간다. 그리고 다가오는 세 가지의 서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혼란을 파헤칠 생각이 전혀 없다. 그가 혼란과 혼돈, 즉 세 개의 서스펜스와 세 개의 서사를 가져온 건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에서다. 즉 법과 제도, 그러니까 시스템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뒤흔들기 위해서라는 말이다. 이를 위해 영화는 혼란과 혼동의 옷을 빌려 입었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영역, 하지만 이미 존재했던 어떤 영역의 연장을 우리는 마주하게 된다. '세 번째 살인'의 문턱에서. 

영화는 가해자인 미쿠마(야쿠쇼 코지)와 그의 변호사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의 접견실 장면을 중점적으로 담는다. 하지만 접견이 반복되면 반복될 수록 사건은 미궁 속에 빠져든다. 처음엔 자신이 살해했다고 자백했던 미쿠마는 그 진술을 번복하기에 이르고 변호사 시게모리는 자신이 믿는 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아니면 그 무엇도 아닌지 모를 의심에 시달린다. 일단 사건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미쿠마는 돈을 목적으로 사장을 살해했다. 아니다. 그건 거짓이고 바람을 피는 남편의 보험금을 노린 사장 아내의 요청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그도 아니다. 그건 거짓이고 아빠인 사장에게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당하는 딸 사키에(히로세 스즈)를 위해 저지른 살인이다. 이렇게 단 한 번의 살인은 세 개의 다른 버전으로 구연된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 중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따지지 않는다. 고레에다 감독은 누군가를 심판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가, 사실을 어떻게 사실이라 믿을 수 있는가라는 보다 근원적인 질문에 매달린다. 이를 변호사와 가해자의 오버랩으로 표현하는데 영화의 백미다. 세 개의 다른 살인으로 분열되는 상황에서 그 누구도 무어라 장담할 수 없다. 

영화에는 수 많은 접견실이 등장한다. 당연히 변호사인 시게모리와 가해자인 미쿠마의 투 숏인데 이 장면의 서스펜스가 일품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시게모리와 미쿠마 사이에 여러 접점을 놓아둔다. 가령 비슷한 나이대의 딸이 있다는 점, 모두 새를 기른다는 것, 그 새가 도망을 갔거나 어느새 죽어버렸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시게모리는 어느새 미쿠마의 대사를 따라한다. 입장이 입장을 거스르고 그렇게 입장은 입장도무엇도 아닌 것이 되고만다. 그리고 고레에다 감독은 이 오버랩되는 상황을 타이트한 접견실의 투 숏 안에서 얼굴의 윤곽을 교차시키며 표현한다. 여기엔 손 역시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한다. 말보다 감정, 문장보다 손짓이 영화의 드러나지 않는 사실같은 덩어리를 짐작케 하는 영화적 순간이다. 오고가는 진술과 심문 속에 흔들리다 못해 소용돌이 치는 법과 제도, 그리고 시스템의 껍데기들. 영화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시게모리와 미쿠마가 누구의 딸인지 모를 사키에와 눈 놀이를 하는 장면은 영화적 쾌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장면에서야 비로서 사람은 법에도, 제도에도 구애받지 않은 온전한 존재로 위치한다. 

영화 초반의 이야기는 강도 살인을 보통 살인으로 어떻게 격하시킬 것인가다. 이게 무엇이 중요하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일본 법 체제 안에서 둘은 엄격히 다르며 구형되는 형량의 세기도 다르다. 고레에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러한 것들이 '변호사 입장에서는 루틴 워크겠지만 나에겐 매우 재미있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법 체계의 말도 안되는 것들을 영화는 응시한다. 교살과 살인의 형량이 다르고, 살인의 목적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는 어리석은 상황을 말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공범죄라는 법률이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범죄로 이어질법한 일에 엮인 사람을 미리 처벌하는 법이라 한다. 어리석고 어처구니가 없다. 아마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 법을 둘러싼 분위기에서 영화의 모티브를 얻었을지 모르겠다. 법이란 게 얼마나 본질과 떨어져 있으며, 말로서 누군가를 심판한다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를 새삼 느꼈을 것이다. 영화는 그 느낌을, 법과 제도의 치명적인 헛점을, 하나의 살인을 세 가지로 변주하면서 드러낸다. '세 번째 살인'은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같지 않다. 본인이 도전이라 말한 것처럼 영화는 기존의 고레에다 영화보다 숨이 가쁘고 여백이 부족하다. 하지만 '세 번째 살인'은 나름의 완성도 있는 서스펜스 드라마다. 법과 제도의 헛점을 지목하고, 이를 서스펜스로 풀어낼 수 있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 혼란과 혼동 속에서도 사람을 얘기했다.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을 사람에 관한 것에 대해, 사람의 방식으로 구현하는 솜씨는 여전히 기품 있고 아름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보다 여백이 느껴지고 보다 깊은 숨을 내쉴 수 있는 영화가 더 사랑스럽다. 우리는 인간이고, 가해자도 인간이기에 재판은 시작될 수 없다. 
by ABYSS | 2017/09/29 16:17 | Cultur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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