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가미 나오코의 변신,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차고 넘치는 쓰레기, 하지 않고 쌓여있는 설거지, 아직 걷지 못한 세탁물과 여기저기 놔뒹구는 화장품들. 거기서 홀로 오니기리를 베어 먹는 여자 아이 토모. 전형적인 싱글맘 집의 풍경이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5년 만의 신작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는 이렇게 시작한다. 아빠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고 엄마 역시 자리를 비운 상태며 집을 지키고 있는 건 고작 열살 내기 소녀 토모 뿐이다. 그리고 전해오는 메시지. 토모의 엄마는 쪽지 한 장을 남기고 사라졌다. 하지만 토모는 당황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 같은 이 상황에 토모는 익숙하다. 그저 낙심한 듯 고래를 떨굴 뿐 소녀는 힘든 기색을 하지 않는다. 토모는 서점에서 일하는 삼촌을 찾아가고 영화는 이후 토모가 삼촌 마키오, 그의 애인 린카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어긋난 가정이 새로운 형태의 가정으로 변해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의 시작이다. 하지만 오기가미 나오코는 변했다. 그녀는 이번에 말끔한, 깨끗한, 정갈한, 마치 표백을 한 것 같은 세상을 그리지 않는다. 이 영화엔 이야기라 불릴 만한 것이 제대로 있고, 그러니까 줄거리가 확실히 존재하는 영화다.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는 문장이다. 지금까지 오기가미 나오코의 영화는 짧은 단어 한 두개를 나열해 제목을 만들어 왔다. 안경, 카모메 식당, 요시노 이발관, 토일렛 등. 영화를 마치 청소하듯, 정리정돈 하듯 만들어온 그녀의 작품을 은유하는 제목들이다. 그런데 이번엔 제목이 길다. 무려 문장이다. 그만큼 그녀의 영화는 달라졌다. 무엇보다 꽤나 진보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고, 인물들의 갈등이 제대로 돌출되고 부딪힌다. 영화는 엄마를 거의 잃다 시피 한 소녀 토모가 삼촌 마키오, 그의 애인 트렌스젠더 애인 린코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는다. 토모는 오니기리만 사주던 엄마와 달리 직접 손수 요리를 해주는 린코에게 마음을 기대고 둘은 이내 꽤나 친한 사이가 된다. 그리고 영화는 묻는다. 제멋대로인 엄마지만 같은 피가 흐르는 엄마와 같은 피가 흐르지는 않지만 배려와 사려 깊은 엄마 중 어느 쪽이 더 맞는 선택인가를 말이다. 이 선택은 물론 토모의 몫이다. 이렇게 묻는 것만으로, 이러한 질문만으로 영화는 기존의 가족, 가족이란 개념을 뒤흔든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이런 가족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그 마음 그대로다.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가 기존의 가족이란 개념을 흔드는 것에 그치는 건 아니다. 영화는 가족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 대해 의문을 갖고 질문을 한다. 특히나 토모와 삼촌 마키오가 벤치에 앉아 대화를 하는 장면에는 이 영화의 핵심이 듬뿍 담겨있는데 조금 과장해 말하며 오즈 야스지로 영화의 냄새를 맡았다. 마키오는 말한다. '부모와 자식은 부모와 자식이기 이전에 사람 대 사람이다. 기질이 서로 맞지 않는 부모 자식도 있다. 너무 사랑하다 못해 미워지는 경우도 있다. 엄마를 요양 시설에 맡겼을 때, 이런 말 하면 안되지만 조금 안심했다. 항상 도시락 싸주고, 늦게 돌아가도 언제나 기다리고 있는 거 버거워서 우울해지곤 했다. 함께 살면서 언제나 떨어지길 바랬던 게 사실이다.' 토모는 엄마를 선택한다. 린코의 바램은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해피 엔딩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는 기른 정, 낳은 정으로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우리에겐 있다는 걸 환기시켜 준다. 린코의 마음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녀는 말했었다. 몸도, 이름도 바꿨지만 어찌해도 할 수 없는 게 있다고, 자신은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마음 조차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나는 여기서 오기가미 감독이 한 발짝 크게 나아갔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는 그녀의 새로운 시작임과 동시에 그녀의 최고작이다.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의 제목이 보여주듯 영화의 소재는 뜨개질이다. 오기가미 감독은 유럽 여행을 하던 무렵 한 책방의 한 잡지에서 노르웨이 숲을 배경으로 벤치에 나란히 앉아 뜨개질을 하고있는 게이 커플을 봤다고 말했다. 이 영화의 시작은 거기다.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지워버린 남성성을 위로하기 위해, 현실의 아픔과 고통을 참아내기 위해, 갖지 못한 가슴에 대한 그림움을 담아 린코는 뜨개질을 한다. 그리고 이 뜨개질은 영화 내에서 토모에게, 자신의 애인인 마키오에게까지 이어진다. 영화에는 아픈 장면이 더러 있다. 그 중 하나는 린코가 부상을 입어 입원해야 상황의 병원 장면인데 토모는 여자임에도 남자 병실에 누워야 하는 린코의 상황과 마주한다. 애써 쌓아올린 가정을 뒤흔드는 현실, 그 아픔의 가운데에서 토모는 린코의 병상을 찾아가 울면서 뜨개질을 한다. 타인의 아픔까지 참아줄 수 있는 마음을 토모는 갖게 된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해피엔딩으로 보았다. 미국의 관객들은 영화의 결말이 행복하지 않아 심지어 화를 내기도 했다는데 토모와 린코의 현실 곁에는 작지만 선명한 멜로디가 흘렀고, 토모의 '대단해'라는 외침의 울림은 아름답게 퍼져나갔다.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빛은 찾아온다. 

by ABYSS | 2017/10/23 13:03 | Culture | 트랙백

트랙백 주소 : http://monoresque.egloos.com/tb/356887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