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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Let the Sunshine In


이런 순간이 있다. 세상 모든 얘기가 나의 것인 것 같고 세상 모든 노래가 나를 노래하고 있는 것 같으며 세상 모든 아픔이 나의 것 인 것 같은 그런 순간이. 영화를 보면서, 노래를 들으며, TV 드라마를 보며 종종 경험한다. 영화와 나, 드라마와 나, 음악과 나만이 존재하고 그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이 아주 종종 찾아온다. 부산에서 두 번째 영화로 클레어 드니의 '렛 더 선샤인 인'를 보았다. 영화는 줄리엣 비노쉬의 신음하는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내려다보며 시작하는데 나는 여기서부터 극도로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며 작품을 모으고 살고있는 그녀는 사랑을 찾기를 갈구한다. 언제나 같은 패턴의 반복이라 지치고 매번 실패하는 사랑에 이골이 난다. 첫 장면 섹스 신에서 상대가 예전 남자 친구를 묻는 말에 화가 나 뺨을 때리고 눈물을 떨구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그녀는 사랑을 찾는 게 아니라 자신을 찾는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종종 결여의 원인을 외부 환경에서 찾으려 한다. 답은 자신에게, 내부에 있음에도.  

줄리엣 비노쉬가 연기하는 이자벨이 찾고 있는 건 진정한 사랑이다. 그녀는 그렇게 얘기한다. 하지만 자신이 진정하다 느꼈을 때 남자는 무겁다고 피곤함을 토로하고, 자신이 편안함을 느낀 상대에 대한 감정은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점점 시들어간다. 그러니까 그녀의 사랑은 힘이든다. 하지만 이러한 그녀의 애씀, 눈물, 모습을 보다보면 사랑에 대해, 결혼이나 사귀는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결혼이나 연애라는 말이 단지 그저 감정을 억지로 규정하고 옥죄는 단어에 불가하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그리고 나아가 줄리엣 비노쉬의 연기는, 그녀의 얼굴은 그것이 단지 사랑, 혹은 그 비슷한 무언가의 감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란 점을 상기시킨다. 그녀는 자신을 모른다. 자신을 구성하는 감정, 생각, 느낌이 실제 자신이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한 것인지에 혼란을 겪는다. 섹스를 했으니까 연인이라 말하는 건 쉽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렇게 단순화할 수 없는 감정의 결이 있고 굴곡이 있다. 이자벨은 그 결과 굴곡에서 고뇌한다. 무수히 아프고도, 애달프게.

영화를 보며 정말 잠시 구원받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장면은 이자벨이 남자와의 다툼 이후 헤어진 뒤 탄 택시에서다. 택시 기사와 이자벨은 다소 형식적인 인사치레의 말을 주고 받는데 그 순간이 매우 아름답게 그려진다. 음악을 뭘 틀건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결국 라디오를 켜는 선택까지, 그리고 흘러나오는 재즈 선율이 이자벨의 피로를, 그녀의 고뇌를, 그녀의 아픔을 감싸 안는다. 이자벨에게 버팀목이 되어준다. 줄리엣 비노쉬는 정말 멋진 연기를 보여준다. 사랑이란 거대한, 불투명하고 정체 불명의 존재와 맞서고 많이 깨지면서,  그럼에도 걸어간다. 그리고 맞이하는 매우 긴 롱테이크의 마지막 시퀀스. 이자벨은 점성술사로 생각되는 한 남자를 찾아가 마주 앉는다. 그 점성술사는 이자벨의 많은 걸 한 눈에 꿰뚫어보고 조언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주변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곧 이자벨 자신의 이야기로 수렴되고 그녀는 드디어 자신의 본성, 본능에 가까이 다가간다. 점성술사는 말한다. '자신을 사세요. 스스로를 돌보세요. 중요한 건 나, 나의 일,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이고 그 외의 사람들은 생각하지 마세요.' 영화는 사랑을 얘기하는 무수히 많은 로맨스 영화들의 클리셰, 장치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사랑에 접근해 사랑을 얘기한다. 그리고 줄리엣 비노쉬는 이를 훌륭하게 해낸다. 그녀는 빛을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 
by ABYSS | 2017/10/24 10:57 | Ein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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