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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퇴사하겠습니다, 퇴사 학교, 퇴사 준비생의 도쿄, 나는 5년마다 퇴사를 결심한다, 퇴사 탐구생활. 퇴사가 붐이다. 퇴사를 못해 안달이다. 3포 세대의 21세기는 결국 퇴사란 키워드 앞에 멈춰섰다. 관련 책이 줄지어 출간되고 있고, 관련 기사도 넘쳐난다. 잔업 수당도 없고, 유급 휴가도 맘 놓고 쓰지 못하는 회사에 매달려 있기보다 차라리 회사를 그만두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의 확산이다. 그만큼 너도나도 힘이 들고, 그만큼 회사는 지옥같다. 그리고 퇴사를 소재로 한 영화가 한 편 개봉했다. 올해 5월, 새해를 시작하는 무렵(일본에선 4월이 새학기, 시무식의 시기다.)에 개봉한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라는 영화는 일본의 관료 시스템, 그 안의 회사라는 조직, 그리고 정사원이란 이름의 족쇄를 마치 하드 보일드 스릴러 풍의 어두컴컴한 톤으로 그려낸다. 햇빛 한번 들지 않는 사무실엔 어둠이 자욱이 깔려있고, 그 안의 사원들은 개미처럼 일을 한다. 영화는 초반부 직원들 모두가 부장의 지시에 따라 아침 체조를 하고 몇 가지 조항의 준수 사항을 복창하는 신을 보여준다. '마음을 버려라. 마음이 없으면 부러지지 않는다. 그러면 버텨낼 수 있다.' 감옥에 다름없다. 회사가 아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것이 회사의 본질이고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한다. 퇴사는 단순히 회사를 나오는 것이 아니다. 퇴사는 회사와의 영원한 이별을 고하는 것이다. 

영화의 설정은 참신하다. 매일같이 부장에게 당하고, 내일 따위 안 와도 좋다고 생각하는 나날을 사는 아오야마에게 회사는 지옥이고 일상은 고통이다. 그래서 그는 지하철 플랫폼에 몸을 던지려 한다. 그런데 그 때 귀신같이 어느 한 남자가 그를 구해주고 둘은 서로가 중학교 동창생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후는 예상대로 야마모토라는 동창생 친구를 만나 변해가는 아오야마의 일상이다. 그러니까 시작은 참신했으나 이후는 진부하다. 하지만 영화에는 빤하다고, 진부하다고 간과하기엔 조금 아까운 대목들이 더러 있다. 어느 실수로 인해 다 따놓은 계약이 물거품이 되었을 때, 그 실수가 자신의 탓임을 알게되는 순간, 현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핀치다. 그 때의 심정을, 그 때의 상황을, 그 때의 아픔을 영화는 절대적인 절망의 한복판 속 아오야마의 모습으로 그려낸다. 누구의 탓도 아니고, 따라서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상황의 가녀림, 연약함에 기댈 수 있는 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까 영화는 암흑이다. 회사란 세계에서 개인이 의지할 수 있는 건 자신 이외의 아무 것도 없다. 심지어 그 자신이 나약하고 약하기 그지 없을 때 사는 건 죽는 것만큼이나 힘이 든다. 아오야마는 몇 번이나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를 복창하지만 그를 구해주는 건 어느날 귀신같이 나타난 동창생 아닌 동창생 야마모토 뿐이다. 그래도 영화는 살아감에 이야기의 초점을 맞춘다. 대중 영화로서의 당연한 흐름이지만 이 진부한 이야기가 전하는 삶의 기운이 있다.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이는 죽다 못해 결정한 선택에 다름 아니다. 

영화의 제목에서 풍기는 다소 조크같고 가벼운 뉘앙스의 느낌과 달리 영화는 꽤나 심각하고 어두운 현실을 담는다. 우선 아오야마의 집엔 과일이 썩어 벌레가 모여들고 방구석은 난장판에 다름없다. 단, 영화는 유령일지 모르는 야마모토, 거짓말처럼 갑자기 나타난 동창생의 설정으로 이야기의 무게를 던다. 그리고 이 장난같은 설정은 영화를 일면 진부하게 흘러가게 하지만 반면 농밀한, 진심이 담긴 삶의 한 켠을 응시하게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야마모토는 동창생도, 유령도, 귀신도 아니다. 그는 오래 전 쌍둥이 동생 쥰을 잃은 유라는 남자고 그가 아오야마를 구한 건 동생의 시무룩한 얼굴이 아스카의 얼굴과 오버랩되서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참신한 설정은 그저 가벼운 포장지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어딘가 우리 삶 곁에서 숨쉬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영화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유라는, 귀신도, 유령도, 동창생도 아닌 남자는 결국 가족이란 생각이다. 빌딩 옥상에서 뛰어 내리려는 아스카에게 유가 건네는 진부한 설교는 생명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닌, 나를 소중히 생각하고 아껴주는 이들 모두의 것이란 점을 상기시킨다. 마지막이 되어서야 인물들의 수수께끼, 과거가 장광설로 쏟아져 나오는 건 한국이나 일본이나 다름 없지만 그 장광설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삶의 본 모습, 생명의 내면을 마주한다.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은 잊었던 나를 찾아가는 일과 같다. 영화는 그 당연함, 진부함, 빤한 결말에 힘을 싣는다. 결코 미워할 수 없다.

영화에는 마음을 움지기는 신도 더러 있다. 초반 아오야마와 야마모토가 어릴 적 기억을 더듬으며 마트의 카트를 타고 언덕길을 신나게 내려가는 장면. 야마모토는 말한다. 하늘을 보라고.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르지 않냐고. 카메라는 새파란 하늘을 비춘다. 아스카는 되뇌인다. 이렇게 파란 하늘을 언제 봤던가라고 말이다.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는 작은 파란 하늘같은 영화다. 잊고 살았던, 팍팍한 회사 생활에 묻혀있던 일상을 있는 그대로, 조금의 장식도 없이, 다만 진심과 속내를 듬뿍 담아 버무린다. 아오야마는 회사를 그만둔다. 정말 제목 그대로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라고 말하고 말이다. 죽는 것보다 어려울 것 같았던 퇴사는 이렇게 가볍게, 간단하게, 별 거 아니게 그려진다. 그러니까 영화의 핵심은 이 가벼움, 간단함, 별 거 아닌 선택에 있다. 세상엔 그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한 것들이 무수하고 그러니 퇴사 정도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만의 문제는 아니다. 퇴사는 곧 지나간 시간을 맺는 의미를 갖고, 맺음은 곧 잊었던 것의 복원, 새로운 내일의 시작을 의미한다. 영화를 보며 수 차례 눈시울이 불거졌다. 죽을 생각을 한 것도 아니고, 어렵게 퇴사를 결심했던 것도 아니지만 영화엔 내가 놓치고 왔던 것들, 내가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들의 풍경이 펼쳐졌다. 오늘이 없는 내일은 없지만 오늘 다음엔 반듯이 내일이 찾아온다. 


by ABYSS | 2017/10/25 13:05 | Cultur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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