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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자주 주눅이 든다. 움츠려 든다. 시무룩해지고 기운도 없다. 자주 그런다. 나에게 짜증이 나고 나에게 화가 난다. 이유도 없이, 원인도 모른 채 자꾸만 힘이 든다. 병원엘 다녀도,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는다. 약으로, 병원으로 치유할 수 없는 무언가가 요즘 내 안에 있는 것 같다. 어제 밤 트위터를 훑다 다혜 선배가 적어 놓은 글귀에 마음이 동했다. 상처에 관한 글이었는데 그 순간 아, 내가 상처받고 있구나, 혼자 껴안고 낑낑대던 감정들이 상처받은 감정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 감정은 외면받고 있다는 느낌과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하고 있는 퍼블리 리포트가 잘 되지 않는다. 원고는 70% 정도 써놓은 상태인데 판매가 잘 되지 않는다. 브루타스와 뽀빠이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돈도 중요하지만 난 이 리포트가 이렇게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까 두렵다. 주목 한 번 못받고 언제 그런 글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잊혀진 기억이 될까 무섭다. 취재하며, 자료를 모으고 읽으며 느꼈던 감정들이, 떠오른 생각들이 잘못된 것인가, 그러니까 내가 틀린 것인가 싶어, 나에게만 중요하고 소중하게 다가왔던 것인가 싶어 슬프다. 그래서 조심스레 출판사에 문의를 해보았다. 검토하는데만 시간이 한 달 가량 걸린다고 한다. 며칠 간 깜깜 무소식이었던 (인터뷰 답변을 주기로 한)이토 콘도 씨는 오늘 오전 메일을 보내왔다. 오늘 중에는 답변을 주겠다면서. 그러니까 나는 써야한다. 이번 리포트의 제목은 '쓰는 시대의 도래'다.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언제나 최고 밀도의 파란색이다'는 사이하테 타히의 동명 시집(원제엔 '도쿄'란 말이 빠져있다)이 원작인 작품이다. 아마도 20~30대일 여성이 화자로 도시의 쓸쓸함과 외로움, 그리고 허무함을 직설적이고 극단적은 언어로 비관과 함께 표현한다. 시집의 첫장인 '파란색의 시' 첫 문장인 '도시를 좋아하게 된 순간, 자살한 거나 마찬가지다'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시를, 이 비관적인 세계를, 이 직설과 극단의 언어를 이시이 유야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냈다. 이시이 유야는 '행복한 사전', '이별까지 7일', '밴쿠버의 아침'과 같은 휴머니즘이 듬뿍 든, 사람과 삶에 관한 성찰의 드라마를 그려왔던 감독이다. 단, 둘의 공통점이 있다면 나이가 서른 초반이란 점과(이시이 유야가 34, 사이하테 타히가 31) 둘 다 모두 도쿄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싫어함의 감정이 단순히 싫어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지 않지만 싫어한다 말할 수 없고, 싫어하긴 하지만 좋아한다 말할 수 없는 애증에 가까운 점이라는 것이다. 영화는 건축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을 하며 사는 남자 신지(이케마츠 소스케)와 낮에는 간호사로, 밤에는 바에서 일하는 미카(이시바시 시즈카)의 이야기다. 미카는 사랑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믿는 냉소주의자고, 신지는 한 쪽 눈이 보이지 않아 세계의 절반만 바라보며 사는 남자다. 그러니까 둘은 현실과 어느 정도 괴리되어 있다. 영화는 두 섬의 이야기다. 

이시이 유야 감독은 사이하테 타히의 시집을 영화로 옮기면서 '시집을 읽었을 때의 심정, 기분이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스토리를 엮으면서는 한 쪽 눈만 보이는 남자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고 한다. 어쩌면 사이하테 타히의 시는 너무나 많은 것을 알아버린 이가 의도적으로, 의식해서 한 쪽 눈을 가려버리는, 그렇게 하자고 제의하는 시가 아닐까 싶다. 세상의 본질을 알아버린, 현실은 그 본질의 쓰잘데기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채버린 사람의 이야기가 사이하테 타히의 시집에, 이시이 유야의 영화에 담겨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별 게 없다. 미카와 신지가 우연히 만나게 되고, 다시 우연히 재회하게 되어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해 공감해 나가는 게 전부다. 하지만 영화는 이 단조로운 줄거리를 시에 운율을 담듯 시각적인 장치들로 풍성하게 해낸다. 익스트림 클로즈업과 흔들리는 카메라, 그리고 사이하테 타히의 문체를 연상케 하는 딱딱 끊어내는 편집까지 영화는 외로움과 고독의 언저리를 맴맴 돌며 진행된다. 그래서 그 결과가 성공적이었나고 하면 그렇다고 흔쾌히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이시이 감독은 '시와 같은, 완전히 새로운 영화'라고 말했으나, 영화는 사이하테 타히의 시를 닮은 그저 새로운 영화에 가깝다. 한 편의 시로 완성되긴 했으나 전해지는 울림이 그의 전작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다. 

자주 주눅이 들었다. 움츠려 들기도 했다. 병원에 있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건 나만 빼고 다들 행복하고, 평범하게,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도쿄의 밤하늘은 언제나 최고 밀도의 파란색이다'는 남 애기 같지 않았다. 절망이 고통스러운 건 그 절망이 사람을 고립시키고 외면시키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외로움은 혼자여서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소외될 때, 고립될 때 느껴지는 게 외로움이다. 축 처진 어깨를 하고 담배를 한 모금 피우는 신지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세상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일부러 말을 많이, 그것도 빨리 하는, 그게 몸에 배어버린 신지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사이하테 타히의 시집은 후반으로 갈수록 희망의 언어를 뱉어낸다. 죽음, 어둠의 그림자가 걷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시이 유야의 영화도 그러하다. 세상을 냉소하고 세상과 괴리되어 살았던 두 남녀는 서로에게 희망의 작은 조각을 본다. 냉소, 회의에 자리를 내줬던 사랑, 진심이라는 감정이 본 자리를 찾아간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데이트 장면이 그려지고 신지는 미카를 만나기 위해 무려 달리기를 해 집을 찾아간다. 이 때의 이케마츠 소스케의 얼굴 역시 잊을 수 없다. 이시이 감독은 이 영화는 도쿄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말했다. (원제엔 도쿄란 말 자체가 없다.) 도시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허무함이 이 영화의 테마다. 그리고 영화는 이 테마를 시의 언어로, 시의 이미지로, 시의 리듬으로 담으려 한다. 이 영화를 이시이 유야 감독의 최고작이라 말할 순 없지만 상처받은 마음이 잠시 기댈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데엔 성공한 것 같다. 네온사인 가득한 밤하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하늘은 언제나 최고 밀도의 파란색이다. 
by ABYSS | 2017/10/26 14:50 | Ein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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