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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죽음이 전하는 생, 사진이 흘리는 눈물


어쩌면 세상엔 세월이 말해주는 예술이란 게 있다. 그런 것 같다. 그것이 삶과 관련되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아라키 노부요시의 전시를 보았다. 벌써 두 달 전이다. 아라키는 올해 모두 스무 차례의 전시를 했고, 하고 있으며, 할 예정인데 그 중 대규모의 전시는 '센티멘털 져니'와 '사진에 미친 노인 A'다. 둘 중 내가 본 건 그가 생전의, 죽음 앞의, 사후의 아내 유코를 그린 '센티멘털 져니(センチメンタルな旅 1971-2917--)다. 애절한 여행, 애달픈 여정. 왜인지 감상적인이란 말보다 애절함, 애달픔이란 말이 더 떠오른다. 더 적합할 것 같다. 전시는 방대했다. 볼륨도 볼륨이었지만 그곳엔 감정의 격렬한 굴곡이 있었고, 애수와 슬픔의 결들이 차곡이 쌓여있었으며 무엇보다 아라키 노부요시라는 사람의, 사진 찍는 노인의, 77번의 세월을 살아온 인간의 이야기와 감정, 그리고 삶과 죽음의 흔적이 놓여있었다. 빛과 그림자가 뒤섞이고 일상과 비일상이 혼재하는 황홀경. 아라키 노부요시는 생 다음에 죽음이 아닌, 죽음 뒤에, 아니 죽음 곁에 생을 사진으로 담아낸다. 그의 사진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다. 

아라키 노부요시가 병상에 누워있는 아내 유코의 손을 잡고 있는 사진 앞에서 미동도 할 수 없었다. 이승과 저승이 서로 손을 잡은 모습에서, 생과 사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장면에서, 한 사람과 한 사람이 이별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말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흑백으로 찍힌 이 사진은 그저 먹먹했고 뭉클했으며 아름다웠다. 결코 영화가 하지 못하는 일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러한 순간은 그냥 스쳐 지나가기 십상이라 마주했을 때, 바라보았을 때 받게되는 충격이, 감흥이 몹시 크다. 애절하고 애달픔, 그 자체다. 그리고 몇 걸음을 걸어 나아가니 쓰러진 나무, 시들어 말라버린 꽃, 버려진 운동화, 반쪽 뿐인 사과의 흑백 사진이 이어졌다. 이는 아라키가 유코의 죽음 이후 둘의 생활의 무대나 마찬가지였던 발코니에서 유코와의 생활을 느낄 수 있는 사물로서 찍은 피사체다. 그 안에 유코의 흔적이 보였다. 죽음의 기운이 느껴졌다. 유코의 삶이, 죽음에 다다른 삶이, 죽음에 자리를 내어준 삶이 농후하게 묻어났다. 그러니까 아라키는 생의 기운을 품고 있는 죽음을 그린다.  

전시를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짐을 감출 수 없었다. 그의 애묘 치로를 찍은 사진조차 애달프고 간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전시는 애초에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먹먹해지는 가슴을 감당해가며밖에 볼 수 없는, 그런 전시다. 제목의 숫자 1971은 그와 아내 유코의 신혼여행을 담은 사진집이자 이후 아라키 자신의 메니페스토가 되다시피 한 책이 자비출판 된 해이며, 이 전시와 비슷한 시기에 소개된 일기 '사진에 미친 광인 A 2017.1.1~2017.1.27~2017.3.2'의 숫자들은 각각 유코가 세상을 떠난 날, 애묘 치로가 세상을 떠난 날의 기일이기 때문이다. 아라키 노부요시는 사진의 시작은 사랑이고, 사랑은 사소설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60~80년대의 사진들은 모두 사사진(私写真)이라 불린다. 근경(近景), 공경(空景)과 같은 작품들이 해당된다.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죽음이 드리어진, 동시의 생의 기운을 품고 있는 사진들이다. 그 이질적인 만남이, 작용이 유코라는 한 개인에 의한 것이란 점이 이 전시의 또 하난의 대단한 지점이라 생각했다. 아라키는 사랑을 했다. 사랑을 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사랑이 죽음을 꽃피웠다. 

이번 전시에서 유코의 사진만큼 많았던 것은 수많은 하늘을 찍은 사진들이었다. 유코를 기리는 전시라는 점이, 본인 역시 전립선 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무관하지 않았을 거다. 아라키 노부요시는 전립선 암에 오른쪽 눈이 실명된 상태다. 그런데 올해 전시를 무려 열 다섯 번이나 했고, 앞으로 다섯 번을 더 예정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일본의 잡지 스위치에서 유르겐 텔러와 함께 화보를 찍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선 '공경'이란 제목의 사진들이 20점 가량 있었다. 이 사진들은 유코의 죽음 직후 상실감, 허무함에 시달리던 아라키가 역시나 발코니에서 찍은 하늘 사진을 페인팅해서 완성한 것들이다. 갈 곳 없는 감정의 혼란이 묻어난다. 더불어 '유작 소라니(遺作空2)'는 전립선 암이 발병하고 스스로 죄어오는 죽음을 느끼며 제작한 작품으로, 사진이 현실의 모방임과 동시에 하늘에 무언가를 그려서 '또 하나의 나만의 하늘'을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하늘 역시 눈물을 흘린다. 

얼마 전 아에라의 아라키 인터뷰를 읽다 가슴에 크게 다가왔던 말이 있다. 나이 듦에 관해여, 세월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 말이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좋은 사진이 찍힌다. 경험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 최근엔 안티 에이징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는데 그건 안되는 거다. 인간은 늙어야 한다. 점점 늙어서 '모두 할아방, 할멈이 되어라'라고 말하고 싶다. 나이를 먹고서 처음으로 느끼는 것이나 알게되는 것이 분명 있으니까. 몇 백명, 몇 천명의 여자와 만나면 만난 만큼 가르침을 받게 되는 것이 있다. 대개 여자가 얼마나 간사하고 째째한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뭐, 남자는 그 이상이지만. 눈이 쇠퇴하면 그런 부분을 포착하게 된다." 죽음이 단지 죽음이 아니고, 죽음에서 보이는 세계가 단지 어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라키 노부요시 사진을 보며 알게된다. 세상엔 세월이란 게 말해주는 예술이 있다. 분명 있다.


by ABYSS | 2017/10/29 11:46 | Cultur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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