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로서의 태민



별 관심이 없었다. 샤이니라면 키, 김기범을 애정했다. 특히나 드라마 '혼술남녀'에서의 그는 아픔과 고민의 시간을 쾌활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밝고 투명한 청년이었다. 매력적이고, 생기 있으며, 보고 있으면 기운이 났다. 긍정 에너지에 감염되는 듯했다. 그러니까 샤이니는 나에게 곧 키, 김기범이었다. 그런데 사람에겐 어느 순간이란 게 있는 것 같다. 무어라 정의할 순 없지만 그냥 다가오는 순간, 하지만 어느 의미를 만들어 내는 순간. 9시 쯤 끝날 줄 알았던 모임이 조금 일찍 끝났다. 다행이란 마음과 함께 계획을 수정했다. 광역 버스 대신 지하철을 타기로. 차비도 절약될 거고, 밀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집에도 빨리 도착할 거다. 그렇게 생각했다. 다행히 밤이 오기 전 전차는 붐비지 않았다. 빈 자리가 꽤나 있어 편하게 앉았다. 하지만 내가 탄, 다행이라 생각하며 자리를 잡고 앉은 전차는 인천행이 아닌 서동탄행이었다. 아차 싶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바로 알아차려 내리고 다시 탔다. 다행이었다. 자리에 앉을 수 있었고 어느 순간이 다가왔다.

음악을 들으려 멜론 어플을 열었다. 재생 리스트에 있는, 듣고 있던 노래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신보를 알리는 첫 화면에 '태민'의 싱글 커버 사진이 보였다. 'Thirsty', 갈증. 손가락이 방향을 틀었다. 그냥 그렇게 했다. 태민이라면, 아니 TV라면 최근 거의 보지 않고 있는 나다. 그래서 태민의 근황이랄지, 그의 신곡 소식이랄지, 뮤직비디오 등등은 전혀 모른다. 다만, 들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가 얼마 전, 아마도 얼마 전 공개한 신곡 퍼포먼스가 꽤나 여성적인 액션을 모티브로 한 퍼포먼스였다는 것 정도다. 노래는 좋았다. 나도 모르게 '좋다'라 말할 정도로. 박력이 있었고, 임팩트가 도드라졌으며, 목소리의 변주로 탄탄히 쌓아올린 템포와 리듬에 볼륨을 주었다. 퍼포먼스가 연상됐다. 가사가 귀가 아닌 몸으로 들려왔다. 단지 좋은 노래만의 느낌이 아닌 것 같았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느껴졌다. 태민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고, 그를 좀 더 알고 싶다고 생각했다. 샤이니의 막내로 여성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던 스물 다섯의 청년. 하지만 이미 데뷔 10년차가 된 베테랑 아이돌 가수. 그는 어쩌면 지금 어느 순간과 마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 어느 의미를 만들어 내는 순간.

일본에서는 최근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를 LGBT가 아닌 LGBTQ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Q는 Question, 질문의 Q다. 그러니까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로도 규정하지 못하는 젠더가, 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Q가 태민에게서 보였다. 그는 샤이니에서 귀여운 막내였고 나아가 조금씩 남자가 되어갔다. 우리가, 뭐든지 도식화하고 마는 우리 사회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솔로로 데뷔한 뒤 내놓은 'Move'는 자신에게 꼬리표처럼 붙어다니던 '여자같다'란 말에 정면으로 소리치는 듯한 제스춰였다. 요염하게, 섹시하게 춤추고 노래하는 그는 '여자같다'는 말을 의식하지 않고, 아니 오히려 의식한 뒤 그냥 내버려두는, 마음껏 떠들어보라고 외치는 저항, 그 자체였다. 뒤이어 내놓은 싱글 ', 'Thirsty'는 더욱 흥미롭다. 겉으론 얼핏 남성적인 요소를 가득 넣은 퍼포먼스와 노래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태민은 자신의 정체성을 그 어느 것에도 옭아매지 않기로 결심한다. 남성적이기도 하고 여성적이기도 하지만 남성적이지도 않고 여성적이지도 않다.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의 구분이 무화되고 결국 남는 건 태민이란 스물 다섯의 청년, 한 사람 뿐이다. 

다시 'Move'의 이야기. 'Thirsty'를 듣고 'Move'를 들었다. 그리고 다시 'Thirsty'를 들었다. 갈증이 갈망으로 들려왔다. 'Move'의 가사를 떠올려봤다. 자못 의미심장하다. 태민은 아이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성격이 원래 내성적인데 샤이니 활동과 솔로 활동이 조금씩 조금씩 쌓이면서 나름의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었다. 사람은 변한다. 실패가, 성공이, 아픔이, 기쁨이, 그리고 자신감이 그렇게 한다. 따라서 지금의 태민을 규정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자신감과 10여 년의 시간으로 설명하려 애를 써볼 뿐이다. 태민은 노래한다. '잘 빗은 머리가 헝클어질수록 아름다워 내버려둬 oh oh 반듯한 자세가 흐트러진대도 괜찮아 날 똑바로 봐 Oh yeah 신경쓴 화장이 더 번져갈수록 아름다워 내버려둬 oh oh 단정한 셔츠가 구겨져버려도 괜찮아 날 똑바로 봐 Eh eh yeah'라고. 이 가사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의 외침, 동시에 자기에의 다짐이라고 한다면 과장일까. 그는 그저 Q다. 그것만을 말할 수 있다. 



by ABYSS | 2017/11/11 11:39 | Cultur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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