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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椅子不椅子 의자이기를 거부하는 의자, 오카모토 타로의 예술


의자를 생각하다. 몇 년 전 일본의 잡지 '브루타스'에서 본 제목입니다. 가구를 디자인이나 브랜드, 트렌드로 설명하지 않는 소박한 제목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의자를 도구가 아닌 존재로 사고하는 방식이 신선했습니다. 패션도 일상의 품 안에서 풀어내는 사람들이기에 사실 별 새로운 제목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에게 이 제목은 '침대는 가구가 아니다'라는 말보다 충격이었고, 그만큼 새로웠습니다. 제목의 기사는 의자가 놓인 자리, 의자가 놓인 시간, 의자가 놓인 삶을 얘기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의자가 단순히 가구를 넘어 그 이상일 수도 있음을 기사는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앉기를 거부하는 의자 座ることを拒否する椅子', 말이 안되는 소리입니다. 어불성설입니다. 의자는 앉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고 그렇게 소비되는 가구입니다. 애초 의자에 착석을 거부할 권리가 어디에 있나 싶습니다. 하지만 이 말도 안되는 문구는 실제로 존재하는 의자의 제품 이름입니다. 바로 일본의 20세기 미술을 대표하는 예술가 오카모토 타로 岡本太郎가 1963년 시가라키에서 도예로 '앉기를 거부하는 의자'를 만들었습니다. 그의 작품 답게 강한 컬러가 사용된 세라믹의 제품은 불룩 튀어나온 구형을 하고 있습니다. 평평하지 않은 것도 이상한데 움푹 들어간 게 아니라 불룩 튀어나와 있습니다. 게다가 앉는 면엔 모형으로 틈이 파여 있기까지 합니다. 대체 그는 왜 이런 의자를 만들었을까요. 의자이기를 거부하는 의자는 어떻게 성립 가능할까요. 의자는 앉는 것을 거부합니다.

오카모토 타로를 시부야와 아오야마, 오모테산도를 잇는 국도 246길가의 '어린이의 성 こどもの城'으로 기억합니다. '씨네21'에 다니던 시절, 본래 선배가 가야하는 출장을 어쩌다 제가 가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일본에서, 좋아하는 영화를, 그것도 매일 수 편씩 보는 일이었으니 꽤나 설레었던 마음을 기억합니다. 영화는 이미지 포럼에서 보았습니다. 매일같이 그곳으로 출근했고 매일같이 그곳에서 (이미지 포럼 쪽에서 잡아 준) 숙소 'こどもの城, 어린이의 성' 근처 건물로 퇴근했습니다. 그래서 오카모토 타로, '어린이의 성'은 1주일 간 저의 집 만큼이나 친숙해졌습니다. 사방으로 팔인지 고개인지를 펼치고 있는 오색찬란한 그 조형물은 아직 초행에 가까웠던 도쿄 속 저에게 이정표 구실을 해주었습니다. 오카모토 타로는 거리에 있었습니다. 오카모토 타로는 20세기 일본 미술을 대표하는 인물이라 일컬어집니다. 무엇보다 그의 미술은 지하철 벽면에, 공원 한쪽 켠에, 거리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누구에게나 친숙합니다. 그는 작품을 팔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고, 그의 작품은 모두 그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 전국을 돌며 '오카모토 전'을 개최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게다가 그는 그 전시를 유명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아닌 백화점 전시장에서 가졌습니다. 누구나 돈 몇푼을 들고 쉽게 발걸음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백화점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카모토 타로는 예술의 높은 문턱을 필요없는 것이라 여겼고, 그렇게 대중 곁에 항상 있었습니다. 그의 작품의 대부분이 퍼블릭 아트인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에게 있어 예술은 대중의 것입니다.

지난 11월 도쿄 롯뽄기 힐즈 아리나에서는 '생활의 즐거움 전 暮らしのたのしみ展'이 열렸습니다. 그 중 특별 전시로 오카모토 타로의 작품 몇 점이 소개되었는데 전부 의자 작품이었습니다. '앉기를 거부하는 의자'를 시작으로 '새싹 めばえ', '주사위 サイクロ', '색 彩' 등 하나같이 앉기 쉽지 않아 보이는 것들 뿐입니다. 의자는 착석감이라고 합니다. 가수 빅뱅의 태양은 수 천 만원 짜리 피에르 잔느레 의자를 사용하기도 한다고 하지만 의자의 디자인이 모든 걸 만족시켜 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의자를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을 생각합니다. 오카모토 타로는 의자는 산속 길을 걷다 잠시 엉덩이를 붙이고 한 숨을 돌릴 정도의 그루터기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좋은 착석감을 자랑하는 모던한 디자인의 의자들은 노인이나 병이 있는 사람들에게 양보해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들이 착석감이 좋은 자리에 앉아 오랜 시간을 쉬기만 해서는 엉망이 된다면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에게 있어 의자는 편안한 휴식이 아닙니다. 그에게 있어 의자는 곧 생활이고, 동시에 싸움입니다. 그가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의자가 편안해야 한다는 건 어쩌면 그저 하나의 고정관념일지 모르겠습니다. 의자가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기능하고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따라 의자의 이상은 달라집니다. 의자가 앉기를 거부하는 삶도 세상엔 존재합니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 살아가는 삶은 오카모토 타로에게 보람이 없는 삶입니다. 그저 느슨하게, 흘러가듯, 미끄러지며 살아가는 것은 싸움이 없기에 돌아오는 것도 적습니다. 그리고 이를 오카모토 타로는 의자를 통해 구현합니다. 어쩌면 아파오는 엉덩이와 허리의 통증을 느낄 때 휴식의 다른 의미가 다가올지 모르겠습니다. 오카모토에게 예술은 별 게 아닙니다. 그건 어느 미술관에 고고하게 모셔져 있는 예술품도 아니고 고가에 경매에서 매매되는 그림도 아닙니다. 그에게 예술은 삶, 삶의 방식, 그 자체입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오사카 박람회의 '태양의 탑 太陽の塔'과 시부야 역내 통로의 벽화 '내일의 신화 明日の神話'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은 우리가 모르는 그의 작품들이 우리 일상 속에 무수히 많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 의자 뿐 아니라 오카모토는 컵, 물병 등 다양한 일용품도 제작했고, 위스키를 사면 따라오는 비매품까지 만들었습니다. 주위에선 예술 작품의 가치를 떨어뜨리니 그만두라 아우성이었지만 그에겐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를 두고 오카모토 타로 기념관의 히라노 아키오미는 '이렇게 예술을 일상으로 밀어넣으며 기계적인 삶에 길들여져 유약해진 일본인들의 정신을 바로잡으려 한 게 아닌가'라고 말했습니다. 앉기를 거부하는 의자가 이해됩니다. 일상이 일용품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일용품이 일상을 빚어내기도 합니다. 오카모토 타로의 예술은 그 일상과 일용품, 물건을 동등하게 바라봅니다. 그에겐 예술이 곧 삶이고 싸움이기에 앉기를 거부하는 의자도 존재합니다. 의자를 생각합니다. 
by ABYSS | 2017/11/25 15:38 | Cultur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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