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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외롭지만 외롭지 않다, 도시의 얼굴.


불친절한 도시를 생각한다. 그런 도시의 우연을 생각한다. 길을 걸으며 불평을 털어놓고 횡단보도 앞에 잠시 멈춰 마음을 고른다. 입원을 하고 퇴원을 한 뒤 다리가 몹시 아팠다. 약의 부작용인지 무언지 모를 이유로 다리가 밤낮 가리지 않고 쑤셨다. 걸음걸이도 내맘대로 되지 않았고 그래서 엄마는 걸을 때 '발을 잘 하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내가 봐도 내 오른쪽 발은 팔자의 한쪽 면을 그리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걷는 데 민감해졌다. 도로 사정에 예민해졌다. 서울의, 인천의 도로는 굴곡 투성이다. 무얼 기준으로, 무얼 원칙으로 정비된 것인지 곳곳이 경사와 굴곡으로 가득하다. 앞뒤로 경사인 건 이해가 가지만 좌우로 경사인 건 납득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용을 써도 뒤뚱뒤뚱 걸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인도를 벗어나 차도를 걷는 일이 빈번해진다. 심지어 인도가 없는 도로도 있다. 그만큼 사람에게 불친절한 게 서울이고 인천이다. 한국의 도시는 사람을 위해 디자인되지 않았다. 이 나라의  도시는 사람을 위한 도시가 아니다. 차, 속도, 돈을 위한 도시다. 모든 게 그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도시를 마음껏 미워할 수는 없다. 어찌됐는 내가 태어난 곳이고, 어찌됐든 내가 생활한 곳이며, 어찌됐든 내가 살고있는 곳이다. 싫어한다 말할 순 없지만 좋아한다 말할 수 없고, 좋아하지 않는다 말할 순 없지만 싫어한다 말할 수 없다. 서울엔, 인천엔, 그리고 도시엔 애증이 서려있다. 

도시가 외로운 건 자신이 외로운 거다. 혼자가 되어버린 개인은 차가운 도시에서 자신을 바라본다. 도시가 쓸쓸해 보이는 건 자신이 쓸쓸한 거고 도시가 고독하게 느껴지는 건 자신이 고독한거다. 회사에도, 학교에도, 그 어디에도 다니고 있지 않다보니 만나는 사람이 가족 아니면 타인 뿐이다. 물론 종종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고, 만나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 아니면 타인과 보내고 있다. 그러니 혼자라는 감정이 일상 위에 섬처럼 동동 뜬다. 도시는 삭막하다고 한다. 실제로 그렇다. 시골의 인심, 온정을 도시에서는 찾기 힘이 든다. 같은 엘레베이터를 타도 눈인사조차 하지 않는 이웃이고, 주위에 오가는 사람은 전혀 배려하지 않은 채 장우산을 가로로 들고 걷는 행인이며, 빈 자리가 없어 서있는 사람을 보고도 무시하며 짐을 옆 좌석에 놔둔 채 그대로 있는 버스 안 승객이다. 그래서 혼자는 더 혼자가 되고, 외로움은 더 외로움이 된다. 하지만 도시엔 우연이란 게 있다. 그 희미한 확률이 시골에 비해 더 높다. 사람도 많고, 차도 많고, 시간도 빨리 흐르지만 그만큼 도시는 우연의 공간이다. 우연히 지인이 생길 수 있고, 우연히 길거리 음악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며, 우연히 책을 만날 수도 영화를 만날 수도 있다. 그래서 혼자는 함께가 되고 외로움은 자리를 감춘다. 도시엔 우연이 있다.

지금 여기에 내가 있는 것으로 인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또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동시에 너로 인하여 나는 어떻게 되고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얼마 전 이메일로 인터뷰했던 진을 만드는 일본의 키쿠치 유미코란 사람이 얘기한 문장이다. 그녀는 최근의 테마가 이것이라고 썼다. 우리는 모두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다. 나를 구성하는 건 온전한 내가 아니며, 거기엔 가족도, 친구도, 지인도, 그리고 무엇보다 거리의 행인도 섞여있다. 그래서 도시의 외로움은 완전한 외로움이 되지 못한다. 무수히 많은 복수로 구성된 게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구성된 무수한 복수는 서로 교차되고 연결된다. 나의 오늘이 너의 내일을 만들기도 하고 너의 어제가 나의 오늘을 데려오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원인과 결과는 아니지만,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욱더 소중한 연이란 게 만들어진다. 도시에는 그런 마술같은 순간이 자리한다. 철저히 혼자라며 울었던 날이 있다. 20여 년을 학교를 다녔고, 10년을 회사에서 일했는데 남아있는 게 정말 별로 없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던 밤이었다. 혼자여도 괜찮다고 생각했기에 돌연 찾아온 상실감은 실로 감당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도시에서, 모두가 혼자이고 함께인 도시에서 상실은 별 의미를 갖지 못하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 역시 든다. 나의 상실이 어느 누군가에 의해, 어느 장소에서, 어느 순간에 메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찾아온다. 불친절한 도시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혼자이고 함께인 사람들, 그 안에 나도 있다.

by ABYSS | 2017/11/29 13:39 | Ein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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