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9일
외롭지만 외롭지 않다, 도시의 얼굴.

도시가 외로운 건 자신이 외로운 거다. 혼자가 되어버린 개인은 차가운 도시에서 자신을 바라본다. 도시가 쓸쓸해 보이는 건 자신이 쓸쓸한 거고 도시가 고독하게 느껴지는 건 자신이 고독한거다. 회사에도, 학교에도, 그 어디에도 다니고 있지 않다보니 만나는 사람이 가족 아니면 타인 뿐이다. 물론 종종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고, 만나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 아니면 타인과 보내고 있다. 그러니 혼자라는 감정이 일상 위에 섬처럼 동동 뜬다. 도시는 삭막하다고 한다. 실제로 그렇다. 시골의 인심, 온정을 도시에서는 찾기 힘이 든다. 같은 엘레베이터를 타도 눈인사조차 하지 않는 이웃이고, 주위에 오가는 사람은 전혀 배려하지 않은 채 장우산을 가로로 들고 걷는 행인이며, 빈 자리가 없어 서있는 사람을 보고도 무시하며 짐을 옆 좌석에 놔둔 채 그대로 있는 버스 안 승객이다. 그래서 혼자는 더 혼자가 되고, 외로움은 더 외로움이 된다. 하지만 도시엔 우연이란 게 있다. 그 희미한 확률이 시골에 비해 더 높다. 사람도 많고, 차도 많고, 시간도 빨리 흐르지만 그만큼 도시는 우연의 공간이다. 우연히 지인이 생길 수 있고, 우연히 길거리 음악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며, 우연히 책을 만날 수도 영화를 만날 수도 있다. 그래서 혼자는 함께가 되고 외로움은 자리를 감춘다. 도시엔 우연이 있다.
지금 여기에 내가 있는 것으로 인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또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동시에 너로 인하여 나는 어떻게 되고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얼마 전 이메일로 인터뷰했던 진을 만드는 일본의 키쿠치 유미코란 사람이 얘기한 문장이다. 그녀는 최근의 테마가 이것이라고 썼다. 우리는 모두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다. 나를 구성하는 건 온전한 내가 아니며, 거기엔 가족도, 친구도, 지인도, 그리고 무엇보다 거리의 행인도 섞여있다. 그래서 도시의 외로움은 완전한 외로움이 되지 못한다. 무수히 많은 복수로 구성된 게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구성된 무수한 복수는 서로 교차되고 연결된다. 나의 오늘이 너의 내일을 만들기도 하고 너의 어제가 나의 오늘을 데려오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원인과 결과는 아니지만,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욱더 소중한 연이란 게 만들어진다. 도시에는 그런 마술같은 순간이 자리한다. 철저히 혼자라며 울었던 날이 있다. 20여 년을 학교를 다녔고, 10년을 회사에서 일했는데 남아있는 게 정말 별로 없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던 밤이었다. 혼자여도 괜찮다고 생각했기에 돌연 찾아온 상실감은 실로 감당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도시에서, 모두가 혼자이고 함께인 도시에서 상실은 별 의미를 갖지 못하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 역시 든다. 나의 상실이 어느 누군가에 의해, 어느 장소에서, 어느 순간에 메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찾아온다. 불친절한 도시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혼자이고 함께인 사람들, 그 안에 나도 있다.
# by | 2017/11/29 13:39 | Ein | 트랙백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