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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시가 된 영화, 패터슨



오늘이 끝나고 오늘이 왔다. 초침 소리만이 선명하게 울린다. 어김없이 우울하게 일어나 밥을 먹고 정해진 일들을 하나둘 해나간다. 추위에 언 창문은 열리지 않았다. 메일을 체크하고 마음이 설레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런 날이 내게도 아주 가끔은 있다. 어느새 창 너머 햇살이 곁에 다가왔다. 똑같이 스팸들을 지우고 똑같이 메일 창을 닫는다. SNS를 서성이다 방송을 듣고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쓴다. 별 일 없는 날에도 기복은 있어 혼자서 희로애락을 다 겪는다. 베란타를 트고 방을 넓힌 내 방엔 밖의 기운이 남아있다. 조금은 서늘한 이 기운이 싫지 않다. 아주 여린 어떤 설레임 같은 게 어른거린다. 소소함 열풍이 몹시 싫다. 문제는 삶의 태도가 아닌데 자꾸 태도를 나무라는 이 말들이 몹시 거슬린다. 문득 세상은 산문으로 이뤄진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한다. 우리가 아픈 건 모든 게 산문으로 둘러싸였기 때문이고 그 상처는 태도가 아닌 리듬에 나있지 않을까하고. '패터슨'을 보았다. 깐느 때 공개된 스틸을 보고 마음에 품었으니 어언 8개월만에 보았다. 영화는 지루한 남자의 일상을 그린다. 어김없이 아침 6시 15분 언저리에 일어나 아내에게 키스를 하고 씨리얼로 아침을 떼운 뒤 집을 나선다. 버스에 타서는 동료의 신세 한탄을 들어주고 퇴근 후엔 똑같은 길을 지나 집에 간다. 그런데 이 지루함이 지루하지 않게 보였다. 아름답게 느껴졌다. 주인공은 패터슨 시에 사는 패터슨, 시를 쓰는 버스 드라이버. 시가 영화 전체에 흐른다. 현실을 부유하는 리듬, 꿈과 교차하는 시간. 영화는 시로 자리한다. 

영화에는 모두 다섯 편이 시가 낭송된다. 패터슨의 음성으로 전해지는 시는 패터슨의 일상을 현실이 아닌 어딘가에 위치시킨다. 시가 세상에서 시작하는 것이라면 시로 이뤄진 세상도 있을 수 있다. 영화는 그걸 구현한다. 짐 자무쉬의 영화는 시의 리듬, 시의 시간, 시의 공기 위에 흘러간다. 여기서 영화가 시와 같다는 말은 적절치 못하다. 이 표현은 어디까지나 현실을 전제로 한 것이고, '패터슨'은 현실 밖에, 현실과 뒤섞인 어떤 시적인 리듬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패터슨의 일상은 틀에 박혀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시계를 차고, 집에 들어갈 때면 잉글리쉬 불독 마빈이 기울여놓은 우체통을 바로 잡는다. 산책 중 바에서 마시는 건 언제나 맥주다. 그런데 이 지루한 일상이 아름답게 울린다. 시를 쓰는 버스 드라이버라는 설정 자체가 시적이다. 스퀼의 몽환적인 음악은 이곳을 미국 뉴저지에 위치한 지리적 의미에서의 패터슨이 아니라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와 앨런 긴스버그가 시를 쓴 문학적 의미에서의 패터슨으로 담아낸다. 도시 패터슨은 삭막해보인다. 패터슨이 시를 쓰곤 하는 폭포를 제외하면 온통 건물 투성이다. 패터슨의 아내인 로라는 즉흥적으로 기타를 사달라 조르고, 동료인 남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불평을 늘어놓는다. 너무나 현실적인 그저 그런 일상이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시의 자리를 확보한다. 나아가 그 리듬이 현실에 스며든다. 쌍둥이를 낳는 꿈을 꾸었다는 로라의 말은 현실 속에 스쳐가고, 시와 같은 순간 또한 다가온다. 매일이 똑같은 시간 한 구석에서 어느 남자는 랩으로 시를 뱉고, 어느 소녀는 비밀 노트에 시구절을 적고 있다. 패터슨은 이렇게 한 편의 시가 된다.

영화를 보면서 패터슨의 인내심이 감탄스러웠다. 강아지 마빈이 찢어놓은, 자신의 시가 가득 든, 비밀 노트를 보고도 소리 한 번 크게 지르지 않는다. 하루가 지나서야 '너가 미워'라고 낮게 읊조릴 뿐이다. 매일이 똑같으면 똑같아서 힘들었고, 조금이라도 나쁜 일이 벌어지면 버거워서 힘들었다. 시간에 드리운 현실의 그림자가 너무나 짙게 느껴졌다. 그런데 '패터슨'의 시간은 달랐다. 퍼즐 조각처럼 꽉 맞춰진 생활 속에 자연스레 스며드는 우연은 숨겨진 시간, 잃어버렸던 감각, 잊혀진 감정의 세계를 펼쳐낸다. 산문을 운문으로, 시로 풀어낸다. 영화의 마지막 패터슨엔 기묘한 장면이 찾아온다. 동양인 관광객이라곤 전무할 것 같은 그 곳에 나가세 마사토시가 분한 시인이 등장한다. 그는 패터슨과 대화를 나누는데 짐 자무쉬의 시간이 거기서 흘러간다. 미술가인 장 뒤비페는 에펠탑의 기상학자였다. 패터슨이 좋아하는 패터슨 출신의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는 의사였다. 서로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두 개의 시간은 이렇게 바로 곁에 있기도 한다. 산문 옆에 운문이, 시가 자리한다. 어쩌면 소소함의 유행이 데려온 위안은 시의 세계에 도착하지 못한 바람의 실패가 아닐까. 곁에 있다. 우리 주변에 흐른다. 영어로 연기를 하는 나가세 마사토시가 유일하게 내뱉은 일본어가 귀에 남는다. '아하' 무언가를 떠올렸거나 깨닳았을 때 내뱉는 감탄사다. 패터슨은 따라해본다. '아하.' 오늘이 끝나고 오늘이 온다. 초침 소림만이 선명하게 울린다. 어김없이 우울하게 일어나 밥을 먹겠지만 '패터슨'의 시간을 떠올린다. 그 안에 있고 싶다 생각한다. 내게도 시를 길어낼 현실은 존재한다. 
by ABYSS | 2017/12/22 12:09 | Ein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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