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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사카모토 유지的 삶


어쩌면 아이러니일지 모른다. 어쩌면 역설일지 모른다. 어쩌면 딜레마일지 모르고 어쩌면 모순일지 모른다. 우리의 삶을 설명하는 가장 적확한 단어는 어쩌면 이런 미스테리하고 수상한 말들일지 모른다. 희열은 성취 이후에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고, 고통은 아픔에만 수반하는 것이 아니며, 가해자는 피해자이기도 하고 피해자는 가해자이기도 하다. 논리와 관념에 가려진 이러한 순간들은 어쩌면 우리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모른다. 무수히 많은 '어쩌면', 무수히 많은 가정. 일본의 작가 사카모토 유지의 드라마를 보며 떠올리는 생각들이다. 그의 신작 드라마가 시작됐다. 제목이 'anone(あのね、저기요). 이처럼 소박하고 초라한 제목을 본 적이 없다. 일본 사람들이 말을 시작하며 흘리는 머리말을 사카모토는 드라마의 타이틀로 삼았다. 조금의 주저, 약간의 망설임, 그리고 작은 애절함이 새로운 드라마의 막을 연다. 

사카모토 유지의 드라마는 다소 말장난의 연속처럼 느껴진다. '최고의 이혼'이나 '콰르텟'만을 피상적으로만 본다면 아마도 그럴 것이다. 발음의 유사성에서 이야기를 끌어내고 의미를 내포한 구절들을 나열하는 장면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말엔 무언가 남는 것이 있다. 말과 말 사이에 의미를 넘은 드라마가 피어나고, 맥락과 맥락이 어우러져 딜레마를 빚어내며, 우리를 모순과 역설의 순간과 마주하게 한다. 슬프지만 기쁘고 기쁘지만 슬픈 드라마가 가능한 이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의미를 벗어나 작동한다. 동시에 우리의 삶과 닿아있다. 'anone'에서 납치범과 피해자가 같은 한숨을 내쉬는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장면은 납치극을 레(列)와 레(玲)의 오해로 변주했기 때문이고, '콰르텟'에서 스즈메가 사랑을 담아 체념할 수 있었던 건 사랑을 사랑이란 의미에서 도려내 사고했기 때문이다. 의미로부터의 이탈, 마음의 해방, 사카모토 유지의 삶은 인간 본연의 모습과 닮아있다.

'그래도 살아간다'는 살인 사건 피해자 가족과 가해자 가족의 이야기다. '마더'는 납치한 여자 아이에게 모성을 느끼는 여교사의 이야기다. '우먼'은 엄마의 딸이자 딸의 엄마인 여성의 이야기다. 가해자의 가족도 가해자인가의 물음, 피해자의 가족은 얼마나 피해자인가란 질문. 모성은 천성의 영역인가란 의문과 딸과 엄마란 역할의 어찌할 수 없는 딜레마의 제기. 어느 하나 쉽지 않다. 어느 하나 순탄하지 않다. 그러니까 TV 드라마에 어울리지 않는 소재다. 하지만 사카모토는 대범하다. 기존의 모든 것들을 의심하고, 상처의 뿌리를 헤집으며, 아픔의 근원을 파고든다. 고정관념에 묶여 아파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과 감정을 구원한다. 그리고 그의 드라마가 비범한 건 이 모든 것들을 말의 자리에서 해낸다는 것이다. 말장난처럼 보이는 대사의 나열은 통상적인 용법 밖의 의미를 끌어오고, 이례적인 말의 사용은 새로운 생각을 주조한다. 말이 삶을 구원하는 순간, 사카모토 유지의 드라마다. 

'그래도 살아간다'의 마지막을 잊을 수 없다. 실패한 복수와 좌절된 속죄가 마주한 마지막은 그저 평범한 일상이었다. '비가 그치고 깨끗이 씻겨 내려간 거리가 빛나는 것을 봤어요.' 복수는 하염없이 무너지고, 그 자리를 대신해 새로운 내일이 피어난다. 이 보다 더할 수 있을까 싶은 어둠에서 사카모토는 자그마한 다음을 그려낸다. 말로, 말에 의해, 전적으로 말의 자리에서 그렇게 해낸다. 이번에 방영 중인 'anone' 또한 말로 펼쳐지는 역설과 아이러니의 드라마다. 삶의 궁지에 몰린 다섯 명의 시간을 조금은 유쾌하고 발랄한 언어로 그리는데, 시작부터 구원을 예감하는 뉘앙스가느껴진다. '그래도 살아간다'의 식당에서 조심스레 마음을 적었다 금새 지우는 후타바의 냅킨, 'anone'의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 하지만 그친 비는 다시 온다. 자주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는 건 계속 죽고 싶다는 얘기는 아니다'라는 대사. 뒤틀린 삶의 조각을 품은 말들이 희망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사카모토 유지는 삶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한다. 





by ABYSS | 2018/01/27 14:39 | Cultur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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