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봐서 하는 이야기


아픔이 결여된 위로, 장식으로 진열된 위안, 필연이 아니라 선택의 사소함. 치열하게 쌓인 눈물과 아픔이 담긴 땀방울을 외면하는 이 말들을 나는 호사스런 사치라고 말해본다. 사소함과 소소함 조차 본연의 자리를 빼앗긴 시대는 허울 좋은 시간 속에 사라진다. 간절하게 위로를 바라는 마음은, 애타게 위안을 기다리는 감정은 어디에도 자리하지 못하고, 그저 외로움만 쌓여간다. 외면의 반복, 도착하지 않는 응답, 오해로 빚어진 아픔. 고독이란 이렇게 싸늘함이이고, 소소함이란 간신히 빚어내는 내일이다. 애씀이, 애절함이, 간절함이 부재할 때 위안은 어떤 위로도 되지 못한다. 위로는 어떤 위안도 아니다. 일본 영화 '잠깐 회사 좀 관두고 올게'나 박준 작가의 '운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게지만'의 경우는 그래도 괜찮다. 치열한 현실이 있고, 고뇌의 시간이 있으며, 아픔의 축적이 있다. 하지만 '언어의 온도'를 시작으로 갈래를 뻗는 말의, 말을 위한 잔치는 뜬구름의 몽상만 늘어놓는다. 아픔의 반대말이 기쁨이 아님을, 아픔이 고통에만 수반하는 것이 아님을 모르는 이 말들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책방의 풍경, 교보문고나 알라딘의 첫 페이지를 보며 갖는 생각이다.

착신 제로의 나날. 늘어가는 애증의 대상. 오해에서 시작해 뒤틀린 시간과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의 바다. 애씀도, 노력도, 간절한 마음도 통하지 않는 시간은 꿈도, 희망도, 목표도 고개를 숙이게 한다. 비상을 꿈꿔보지만 현실은 무리하게 문을 닫아 코트에 먼지가 묻게 하는 버스고, 분명 내일이 왔음에도 빛을 가리는 건 집단 기억 상실증에 걸린 듯한 제1야당의 말들이다. 잔소리의 반대말이 외면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짜증의 반대말이 외로움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공포에 소름이 돋았다. 나로 인한 외로움, 나로 인한 두려움. 말이 진정 구원해야 할 건 여기에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반대말 놀이를 인용햐지 않더라도 세상은 반대말을 감추고 흘러간다. 아픔은 조금 다른 아픔으로, 고독은 맑게 치장된 고독으로, 외로움은 여유를 동반한 고즈넉한 시간으로. 외로움을 주제로 책 한 권을 동원한 잡지를 보며 내가 느낀 건 몽상에 가까운 궤변이이었고, 현실을 가리는 백일몽이었다. 거기서 위로란 허울 좋은 간섭에 다름아니라고 나는 말해본다. 누가 더 슬프고, 누가 더 우울한가의 얘기가 아니다. 말을 환상에서 구하자고, 위로와 위안이란 체면에서 깨어나자고 하는 이야기다. 말도 아닌 말에 우리는 너무 심취해 있는 건 아닌가라고. 슬픔의 반대말은 위로가 아니다.

평지를 걷는데 넘어질 뻔한다. 앞뒤로 경사가 아닌, 좌우로 경사길을 뒤뚱거리며 걷는다. 오랜만에 가본 카페는 하필이면 휴일이고, 안내 표지는 어디에도 없다. 돈을 쓰는데 기분이 상하고, 서비스를 받는데 편하지 않다. 상식을 잃은 채 도시가 휘청인다. 도시가 상냥함을 잃는 순간이고, 동시에 흉폭해지는 시간이다. 어디에도 털어놓을 곳이 없는 이 감정은 그저 홀로 떠나간다. 이런 시간들에 상처를 입는다. 이런 순간들에 아파한다. 말이 진정으로 위로해야 할 건 이런 시간들의 파편이다. 그렇게 덧난 상처들이다. 거기에 앞뒤로 문이 모두 닫힌듯한 상황이 더해지면 세상을 버리고 싶다는 마음까지 갖게 되는 게 혼자다. 하지만 말들은 외면한다. 본연의 의미를 상실한 말에 그러한 기능은 이미 동이 난지 오래다. '언어의 온도'가 따뜻하기만 하다는 환각에서 깨어나지 않는 한 말에 미래는 없다. 거기엔 좌절된 희망이, 실패한 꿈이, 고개 숙인 내일이 자리하지 못한다. 말도 아닌 말들만이 타래를 잇는 세상에서 나는 노래를 듣는다. 책을 읽는다. 생각을 한다. 리뉴얼한 식당은 꽤나 성황을 이뤘고 오래 기다린 뒤 페투치니를 하이볼과 함께 먹었다. 말이 닿지 않는 그곳에서, 잿빛 하늘 아래에서 그렇게 먹었다. 


 

by ABYSS | 2018/01/28 14:46 | Ein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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