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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지금 일본 남자 배우를 얘기하는 이유


2003년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밝은 미래'가 개봉했을 때 일본 영화는 어떤 바통 터치의 순간을 맞이했다. 나이는 세 살 터울이지만 데뷔가 11년이나 차이나는 아사노 타다노부와 오다기리 죠가 일본 남자 배우 판에 눈에 띄는 분기점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극중 물수건 공장에서 일하며 초초하게 살아가는 유지(오다기리 죠)가 유일하게 마음을 털어놓는 건 공장 동료 마모루(아사노 타다노부) 뿐이었고, 이들의 관계는 흡사 형제처럼 보였다. 마치 유지에게 일본 영화의 미래를 위탁하는 듯 마모루는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극중 둘의 나이 차도 세 살이다. 그리고 배우의 이름은 줄곧 일본 영화를 설명해왔다. 호러와 '러브 레터' 류 로맨스 영화의 필터를 걷어내면 일본 영화를 수식하는 건 특정 감독 못지 않게 배우들의 이름이었다. 미야자키 아오이와 아오이 유는 W아오이라 불리며 2000년대 초반을 풍미했고, 카세 료와 아야노 고는 오다기리 죠와 아사노 타다노부가 걷지 않은 질감의 고독을 걸었으며, 츠마부키 사토시는 심에서 변방으로, 야마다 타카유키는 배우의 자리를 실험하며 필모그래피를 늘여갔다. 남자 배우들의 이름이 지금 일본 영화를 얘기한다.

스다 마사키와 이케마츠 소스케, 히가시데 마사히로와 소메타니 쇼타. 이런 배우들의 이름을 늘어놓고 나는 또 한 번 전환의 순간을 느낀다. 단순히 90년 전후에 태어난 헤세이(平成) 배우들이라서가 아니다. 중심과 변방을 넘나들고 장르의 구별을 무화시키며 영화를 배우의 자리에 데려다 놓는 매력이 이들에겐 있다. 지금 일본에서 TV 영화 밖의 영화를 설명하는 건 아마도 이들의 이름 뿐일 것이다. '키네마 준보' 2017 최우수 남우상을 수상한 스다 마사키의 '황야(あゝ、荒野)'는 157분에 달하는 거친 영화였고, 이케마츠 소스케가 이시이 유야와 다시 한 번 합을 맞춘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는 무려 시를 원작으로 삼은 작품이었으며, 히가시데 마사히로가 데뷔를 한 '키리시마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는 아스러질 듯 한 청춘을 극중 영화의 프레임을 빌려 판타지처럼 채색한 작품이었다. 히로키 류이치 멤버가 되어버린 소메타니 쇼타의 커리어 또한 인상적이다. 이질적이고 불균질하며 차이가 뒤석인 필모그래피, 지금 일본 영화를 수식하는 가장 최선의 단어다.

90년대 전후 남자 배우들의 이력이 남다른 건 이들의 작품엔 전형적인 서사를 이탈하는 시간과 상처 투성이의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다. 실험이라 말할 수도 있는 이 시간은 이들의 영화를 장르 너머에 위치시킨다. 드라마이긴 하지만 구로사와 기요시의 '예조 산책하는 침략자'에 출연한 히가시데 마사히로와 소메타니 쇼타는 외계의 이질적인 세계를 연기했고, '바다를 느낄 때(海を感じる時)'에서 이케마츠 소스케가 연기한 히로시는 다자이 오사무의 냄새가 나는 인물이었으며, 스다 마사키가 연기한 '거기에서만 빛난다(そこのみにて光輝く)'는 좌절된 희망과 실패한 현실에서 길어낸 빛 한 자락이었다. 키시 요시유키의 스다 마사키, 이시이 유야의 이케마츠 소스케, 히로키 류이치의 소메타니 쇼타와 요시다 다이하치의 히가시데 마사히로처럼 이들은 어느새 특정 감독들의 인장이 되기도 했다. 배우를 만나며 영화를 느낀다. 배우를 보며 시대를 산다. 배우는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이지만 동시에 영화를 확장하는 동력이기도 하다. '밝은 미래'로부터 15년. 새로운 남자 배우의 시간이 일본 영화를 물들이고 있다. 

by ABYSS | 2018/02/01 19:52 | Cultur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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