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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일본은 도너츠를 닮았다
사카모토 유지가 쓴 드라마 '콰르텟'에서 주인공 남녀가 결성한 콰르텟의 이름은 도너츠 홀이었다. 다소 귀엽고 꽤나 일본적인 이 이름은 만화를 연상케도 하지만 보기보다 심오한 의미를 품고있다. 구멍이 있어야 성립되고 빈 구멍엔 어느 것도 들어갈 수 있다는 조건은 무수히 많은 것, 다양하고 다른 것들을 공존하게 한다. '홀'이라는 여백, 그런 백(白)의 자리, 그렇게 일본적인 빵. 도너츠는 일본을 닮았다. 그리고 이 '홀'은 하라 켄야가 얘기하는 백(白)과도 연결된다. 그는 자신의 저서 '백(白)'에서 '공백은 무(無)나 에너지의 부재가 아니다. 오히려 미래에 충실한 내용물이 가득 차야 할 '징조의 가능성'으로서 제시되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백의 운용은 커뮤니케니션에서 강한 힘을 낳는다'라고 썼다. 나는 그 여백의 하나가 도너츠 홀이라고 말하고 싶다. 미국에서 시작된 도너츠 체인 미스터 도너츠는 지금 일본에서 가장 번성하고 있고, 그 가맹점 수는 1300개에 달한다. 미국에 남아있는 매장은 일리노이 주에 달랑 한 개다. 여기에 일본의 어느 역사학자의 말을 더해보면 일본의 여백이, 도너츠 홀로서의 일본이 더 선명히 보인다. 그는 세계 지도를 45도로 기울여 놓고 보면 일본이 출구로 보인다고 말했다. 메이지 유신의 역사를 은유하는 문장이다.

누가 오리지널인지를 따지는 시간에 카피를 넘어선 카피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일본이다. 배척보다 수용의 역사가 긴 일본이다. 그렇게 나폴리탄을 만들었고, 스트로베리 쇼트 케이크를 완성했으며, 다양한 변종의 치아바타와 조리빵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 수용의 역사는 백(白)으로 설명되는 일본의 사상과 미학에 기반한다. 도너츠 홀이 수많은 다양한 것들을 담아내듯 일본은 여백을 비워두면서 가능성의 영역을 확장한다. 문화의 현실은 어느새 장르를 넘어섰다. 가끔은 카테고리와 맥락에 갇힌 문화가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다. 일본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2004년 대중 문화 해금이 풀리며 소개되기 시작한 일본 문화는 그저 새로운 것의 범주에서 소화되었다. 호러 영화가, 키타노 다케시나 이와이 슌지, 그리고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가, 혹은 오다기리 죠나 아오이 유, 그리고 카세 료 등의 얼굴이 일본 문화를 대신했다. 하지만 이것이 일본 문화의 전부는 아니다. 마이너 시장이 유독 탄탄하고 대중 문화의 영역이 유달리 넓은 일본에서 문화를 특정 카테고리와 장르로 얽어매는 건 무리한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 모든 걸 아우르는 건 오직 백(白)이란 여백이고, 도너츠 홀이란 빈 자리다. 지금의 일본을 얘기하며 도너츠 홀이란 이름을 붙인 이유다. 
by ABYSS | 2018/02/02 10:03 | Cultur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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