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2월 02일
일본은 도너츠를 닮았다

누가 오리지널인지를 따지는 시간에 카피를 넘어선 카피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일본이다. 배척보다 수용의 역사가 긴 일본이다. 그렇게 나폴리탄을 만들었고, 스트로베리 쇼트 케이크를 완성했으며, 다양한 변종의 치아바타와 조리빵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 수용의 역사는 백(白)으로 설명되는 일본의 사상과 미학에 기반한다. 도너츠 홀이 수많은 다양한 것들을 담아내듯 일본은 여백을 비워두면서 가능성의 영역을 확장한다. 문화의 현실은 어느새 장르를 넘어섰다. 가끔은 카테고리와 맥락에 갇힌 문화가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다. 일본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2004년 대중 문화 해금이 풀리며 소개되기 시작한 일본 문화는 그저 새로운 것의 범주에서 소화되었다. 호러 영화가, 키타노 다케시나 이와이 슌지, 그리고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가, 혹은 오다기리 죠나 아오이 유, 그리고 카세 료 등의 얼굴이 일본 문화를 대신했다. 하지만 이것이 일본 문화의 전부는 아니다. 마이너 시장이 유독 탄탄하고 대중 문화의 영역이 유달리 넓은 일본에서 문화를 특정 카테고리와 장르로 얽어매는 건 무리한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 모든 걸 아우르는 건 오직 백(白)이란 여백이고, 도너츠 홀이란 빈 자리다. 지금의 일본을 얘기하며 도너츠 홀이란 이름을 붙인 이유다.
# by | 2018/02/02 10:03 | Culture | 트랙백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