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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번의 어둠을 기억한다. 수많은 주저와 망설임이 열어젖힌 문 너머는 까만 세상이었다. 삭제된 기억처럼, 소리를 잃은 침묵처럼, 길잃은 시간처럼 모든 게 고여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어디에고 나아갈 수 없었고 무엇에도 무방비였다. 오랜 만의 일이다. 시간이 흐르자 어둠은 조금씩 자리를 내어주기 시작했다. 소파가 보였고, 등이 보였으며, 사람이 보였다. 그리고 문이 보였다. 어둠에 익숙해졌나 싶었는데 그건 내가 어둠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청력을 잃고 완성한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의 세계는 어쩌면 나를 벗어나 세계에 안기는 시간의 경지가 아니었을까. 선과 악, 빛과 어둠. 그의 음악은 둘의 화합의 결정이다. 두려움이 일었다. 후회가 밀려왔다. 사람은 참 어리석고도 어리석어 매번 하고나서야 후회한다. 후회하느니 하는 게 낫다고도 하는데 때로는 후회가 더 나은 선택도 있다. 후회로 문을 밀어내고 밖으로 나왔다. 한낮의 햇살은 아직 조금은 남아있었고 찬 공기가 어둠을 지워냈다. 버스를 타고, 다행히 자리에 앉아 생각을 구슬렸다. 어리석지만 사람에겐 다짐이란 능력이 있다. 생각은 다짐을 돕는다. 또 다시 다짐하고 또 다시 후회하고 다시 다짐하겠지만 살아있는 한 다짐에 유효기간은 없다. 후회는 다짐의 다른 말이다. 사진_植田正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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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 꿈이 그림처럼 느껴지..
by ABYSS at 01/11 전 잠이 들기 전, 아직 의식.. by rumic71 at 01/10 사실 되게 고혹한 시간일 수.. by ABYSS at 12/25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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