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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후회는 나쁜 게 아니야

'댄싱 베토벤'은 스위스의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가 1964년 완성한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의 공연을 따라간 다큐멘터리다. 베토벤의 음악을 관통하는 어둠과 고뇌, 그리고 아픔을 극복한 사랑이 무용수들의 춤사위로 그려진다. 스위스 베자르 발레 로잔의 감독 길 로만의 딸 말리야 로먼이 인터뷰를 진행했고, 아란차 아기레 감독이 완성했다. 베토벤의 음악을 충실히 춤으로 옮겨낸 베자르를 성실하게 따라가는 영화는 그리 별다르지 않다. 고야의 판화 '전쟁의 참상'을 인트로에 배치하며 상징과 은유의 품을 만들어내지만 줄곧 발레단의 연습 과정을 쫓는다. 하지만 이 영화엔 어느 순간 비범해지는 장면이 있다. '청력을 잃은 베토벤이 베자르의 공연을 보고 자신이 품었던 세계를 느꼈을까요?'란 질문이 들려올 때, 동시에 모든 사운드가 지워지고 정적만이 남았을 때, 무용수들의 춤사위가 침묵을 가를 때. 어쩌면 이 느낌이 베토벤이 그렸던 세계에 더 가까운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밀려온다.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을 때 보이는 것이 있다. 영화는 그렇게 비범해진다. 

몇 번의 어둠을 기억한다. 수많은 주저와 망설임이 열어젖힌 문 너머는 까만 세상이었다. 삭제된 기억처럼, 소리를 잃은 침묵처럼, 길잃은 시간처럼 모든 게 고여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어디에고 나아갈 수 없었고 무엇에도 무방비였다. 오랜 만의 일이다. 시간이 흐르자 어둠은 조금씩 자리를 내어주기 시작했다. 소파가 보였고, 등이 보였으며, 사람이 보였다. 그리고 문이 보였다. 어둠에 익숙해졌나 싶었는데 그건 내가 어둠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청력을 잃고 완성한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의 세계는 어쩌면 나를 벗어나 세계에 안기는 시간의 경지가 아니었을까. 선과 악, 빛과 어둠. 그의 음악은 둘의 화합의 결정이다. 두려움이 일었다. 후회가 밀려왔다. 사람은 참 어리석고도 어리석어 매번 하고나서야 후회한다. 후회하느니 하는 게 낫다고도 하는데 때로는 후회가 더 나은 선택도 있다. 후회로 문을 밀어내고 밖으로 나왔다. 한낮의 햇살은 아직 조금은 남아있었고 찬 공기가 어둠을 지워냈다. 버스를 타고, 다행히 자리에 앉아 생각을 구슬렸다. 어리석지만 사람에겐 다짐이란 능력이 있다. 생각은 다짐을 돕는다. 또 다시 다짐하고 또 다시 후회하고 다시 다짐하겠지만 살아있는 한 다짐에 유효기간은 없다. 후회는 다짐의 다른 말이다. 

사진_植田正治
by ABYSS | 2018/02/04 15:53 | Ein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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