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8월이라 하는 이야기, 람프의 시정


노래 하나가 뭐라고, 노래 하나가 뭐라고, 노래 하나가 뭐라고. 지난 겨울, 그 날엔 눈이 내렸다. 라이브가 끝나고, 그들을 만나러 가는 아침, 전차는 좀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고장난 핸드폰 탓에, 오래 전 핸드폰을 꺼내 넣고, 마지막 메일을 받지 못한 채 전차에 탔다. 병원에서 오래 시간을 보낸 이후, 나는 종종 밖에 나가는 게 무서워졌다. 알 수 없는 공포, 어쩌면 그 무엇도 아닌 감정에 짖눌리며 거리를 걸었다. 버스를 타 자리에 앉거나, 커피숍에 들어가 귀에 이어폰을 꽂지 않으면, 헤어나올 수 없었다. 스스로를 구슬리며 시간을 보냈다. 때로는 30분, 어쩔 땐 한 시간 이상이 흘렀다. 그 알 수 없는 공포, 어쩌면 무엇도 아닌 감정 이후의 고요가 나는 좋았다. 호텔에 소메야 타이요란 사람의 이름은 없었다. 직원은 다른 일본인 이름을 얘기했지만 나는 그 사람을 몰랐다. 다행히 불통이던 핸드폰이 와이파이를 잡았고, 몇번의 메일을 주고받아 그를 만났다. 영등포와 여의도, 두 번의 택시, 머쩍고 서먹서먹한 한 시간 여. 나는 람프 앞에서 람프를 얘기했다. 질문이어야 하는 얘기가 자꾸 물음표를 뱉어내지 못했다. '8월의 시정' 앨범 속 '8월의 시정'을 얘기했고, 도쿄에 있던 무렵, 미타카다이 역에서 무레 6쵸메까지의 시간을 울먹임을 감추며 애기했다. 소메야 타이요는 내가 보낸 메일에 '얼굴까지 기억해요'라고 보냈다. 사카키바라 카오리는 내게 내가 알던 도쿄 바나나가 아닌 조금 다른 도쿄 바나나를 건넸다. 나가이 유스케는 '우리랑 닮은 사람이라 느껴요'라고 말했다. 여전히 쑥쓰럽고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는 나는, 다시 한 번 머쓱하게 웃으며 넘겨버렸지만만, 눈 오던 날, 12월의 시정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8월의 시정' 앨범을 좋아했다. 좋아한다. 단지 도쿄에서의 빈 자리를 채워주었던 노래라서가 아니다. 물론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의 노래는 내게 왜인지 아직 알지 못하는 아침처럼 다가온다. 눈이 조금씩 녹아들기 시작하던 즈음, 나는 이틀 전 라이브에서 '8월의 시정'을 들을 수 없어 아쉬웠다 얘기했다. 나가이 유스케는 코러스가 많고, 라이브 하기 쉬운 곡은 아니라 지금까지 두 번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나는 마음 속에 몰래 적어 놓았던 쑥쓰러운 꿈을 슬며시 지웠다. 그들과의 이야기가 끝나고, 소메야는 내게 이후 비는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그저 일정이 있다고 말했다. 핸드폰을 고치려 갈 생각이긴 했지만, 그 때문은 아니었다. 밖에 나와 담배를 한대 물며, 아직 그들이 있는 카페를 바라봤다. 두고 온 내 마음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아침의 공포는 아직 녹지 않았다. 지난 해 람프는 자신들을 소개하며 성, 이름이 아닌, 이름, 성, 그러니까 미국식으로 말했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한국에서 류이치 사카모토가 된 것처럼,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걸 물었고, 그들은 웃으며 한국과 일본은 반대인 줄 알았다고 그랬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그들은 소메야 타이요, 사카키바라 카오리, 나가이라 자신들을 소개했다.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리고 공연의 중반쯤, 내가 사진을 한 장 찍으려 핸드폰을 꺼낸 순간. 그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 노래. 그 노래가 흘러나왔다. '8월의 시정.' '8월의 시정.' 8월의 시정.' 부끄럽게 지워냈던 꿈이 살며시 다가왔다. 어느 늦은 저녁의 시정. 



by ABYSS | 2018/09/11 23:15 | Ein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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