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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호박과 마요네즈, 아니면 쇼트 케이크
조각과 조각, 그리고 조각. 사는 건 어쩌면 이런 걸지 모른다. 빨갛게 물든 발톱 끝에 칠해진 파란 새끼 발톱, 무대 위의 마이크와 잘못 걸린 거실의 나무 선반, 담배가 있어야 할 자리에 들어있는 수 십장의 만엔 지폐와 육상 유니폼에 이은 검정색의 원피스 수영복. 나나난 키리코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호박과 마요네즈'는 조각과 조각, 그리고 조각을 살아가는 여자 츠지야(우스다 아사미)의 이야기다. 저녁엔 라이브 공연 스태프, 밤엔 캬바쿠라에서 술을 따르며 살고 있지만, 거기에 딱히 이유는 없고, 츠지야는 이상하리만치 아무렇지가 않다. 함께 사는 세이치(타이가) 역시 돈 못 버는 아티스트에, 엄연히 더부살이이지만, 츠지야는 그저 그의 노래가 듣고 싶다. 영화는 별로 설명할 생각이 없다. 영화의 리듬을 무시하고 이야기하면, 츠지야는 전형적인 희생의 시간을 사는 여자다. 좀처럼 완성되지 못하는 노래 속에 그녀의 시간은 착취된다. 하지만 영화가 얘기하는 건, 그런 희생과 헌신, 진부하고 고리타분하게 연결되는 이야기가 아니고, 조각과 조각이 쌓여 만들어내는 시간, 그런 기묘한 궤적을 걷고있는 츠지야란 여자의 이야기다. 맨 다리를 타고 하수구로 흘러들어가는 물줄기, 라이브 시작 전의 수선한 움직임, 수영복 라인을 바라보는 시간. 오프닝이 이미 암시했듯 오목함과 볼록함, 요철의 시간을 지연하는 영화는 그저 호박과 마요네즈, 이렇고 저런 조각과 조각 만을 남긴다.

영화에 호박은 나오지 않는다. 마요네즈 역시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93분의, 츠지야와 세이치, 그리고 하기오(오다기리 죠)의 이야기는 묘하게 '호박과 마요네즈'를 닮아있다. 퍼즐이 어긋났을 때, 퍼즐이 틀렸을 때 느껴지는 이상한 이질감, 생경함 같은 게 이 영화엔 있다. 츠지야를 설명하는 건 지나간 시간과 어제가 아니고, 오지 않은 시간과  내일이다. 일견 세이치와 하기오가 그녀를 옭아매고, 츠지야는 두 남자에 휘둘리며 살아가는 것 같지만, 영화는 어디까지 츠지야의 의지로 쌓아가는 조각의 길을 바라본다. 나나난 키리코의 작품 중에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란 만화가 있다. 나는 같은 제목의 드라마를 꽤 오래 전 보았다. 그건 노지마 신지의 작품이다. 여자 네 명의 일상을 그린 만화와 배다른 누나와 사랑에 빠진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그렇게 이름만 같은 스트로베리 케이크. '쇼트 케이크의 딸기, 먼저 먹나요? 나중에 먹나요?' 노지마 신지의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다. 질문을 듣고 나는 조금의 망설이도 없이 후자라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어쩌면 삶은 이런 걸지 모른다. 별 다른 이유없이 행해지는 행위. 그렇게 쌓여가는 사소한 조각들. 의미를 잃은 퍼즐과 길을 잃은 이유. 쇼트 케이크의 딸기를 먼저 먹는 사람과 나중에 먹는 사람. 질문에 정답은 없고, 세상은 그냥 이런 걸 수도 있다. 

'호박과 마요네즈'는 사실 오해될 여지가 다분하다. 츠지야는 남자를 위해 사는 보수적인 캐릭터로, 세이치는 꿈을 버리지 못한 애송이 청춘으로, 하기오는 전형적인 クズ男, 쓰레기같은 남자로.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는 두 남자에 휘둘리는 듯한 여자 츠지야의 삶을, 어김없이 남아있는, 그녀의 틀린 퍼즐 하나, 그리고 또 하나의 퍼즐로 이어간다. 담배갑 속 돈의 정체가 들통나고, 새벽까지 흘러넘친 시간 탓에 하기오와 세이치가 부딪히는 장면에서 영화는 동요하지 않는다. 흔해 빠진 싸움이거나 소동을 그리지 않는다. 그저 서로 다른 퍼즐 조각의 만남, 요철이 완성되지 못한 시간의 어긋남을 천연덕스럽게 바라보기만 한다. 츠지야는 왜인지 폭소를 터뜨리고, 두 남자는 왜인지 그저 자기 길을 간다. 츠지야란 여자에 관한 이야기지만, '호박과 마요네즈'에서 그녀가 주인공으로 느껴지는 건 수많은 조각이 쌓이고 나서다. 그만큼 영화는 완결되지 않는, 조각으로 남아있는 시간을 바라본다. 애써 의미를 밀어내려는 리듬이 호박과 마요네즈 사이에 있다. 세이치가 끝내 완성한 노래 속 길 잃은 고양이처럼, 츠지야는 다시 또 길 잃은 길을 걷는다. 세이치도, 하기오도, 호박도, 마요네즈도, 모든 게 다 의미를 품고 있지는 않다. 텅 빈 거리를 홀연히 걸어가는, 어긋난 퍼즐에서 보이기 시작하는 츠지야의 길이, 나는 왜인지 뭉클하다. 완성된 퍼즐만이 퍼즐은 아니다. 
by ABYSS | 2018/09/24 13:09 | Cultur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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