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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세상에서 가장 아픈 옷, 맥퀸

맥퀸의 옷을 단 한 벌도 갖고있지 않다. 사기 쉬운 가격도 아니지만, 알렉산더 맥퀸의 해골, 브랜드의 그 얼굴같은 해골은 결코 사기 쉬운 종류가 아니다. 물론 디자인이 범상치 않기도 하지만, 파격과 실험, 실험과 파격에서 패션을 빚어내는 그의 옷은 왜인지 내게 꽤나 많은 용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꼼 데 갸르송이나 요지 야마모토의 옷을 조금의 오기로 사고, 릭 오웬스의, 결코 맥퀸에 뒤지지 않는 대범함도 종종 옷장에 집어넣곤 한다. 비범함과 아방가르드, 어쩌면 그건 맥퀸의 단어가 아니다. 맥퀸의 강렬함 속엔 그저 '리'란 이름의, 가장 연약한 뚱보 청년이 숨어있고, 그의 옷은,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슬프다. 이안 보노트와 피터 에트귀가 맥퀸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맥퀸'은 성실하게 한 남자의 삶을 돌아본 기록이다. 물론 이야기는 옷에서 시작하고, 리가 알렉산더 맥퀸을 만들고, 지방시의 수석 디자이너가 되었다 구찌로 옮겨가는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간다. 하지만 영화를 이어가는 건 수시로 날개짓을 하는 색색의 나비들이고, 죽음 이후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진 누군가의 얼굴이다. 영화는 어김없이 어느 천재의 패션 스토리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못했던 패션, 어느 남자의 패션을 바라본다. 상처를 지우지 못한 패션, 세상과 화해에 실패한 패션. 맥퀸의 옷엔 구원받지 못한 고독이 스며있고, 그의 패션은 어딘가 쓸쓸한 실루엣이다.

동성애자, 뚱뚱한 몸, 지워지지 않는 어릴 적 아픔, 지방 흡입, HIV 양성, 맥퀸의 삶 속엔 결코 작지 않은 굴곡이 자리한다. 하지만 패션 계의 게이 디자이너는 한둘이 아니고, 삶의 굴곡으로 치면 존 로렌스 설리반은 본래 복싱 챔피언이었다. 이슈와 가십 없이 굴러가지 않는 게, 사실 패션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맥퀸의 삶은 조금 다른 의미에서 외롭다. 세인트 마틴의 교수가 입학을 앞둔 그를 두고 '매력없는 남자'라 얘기했을 정도로 그는 사실 별 볼 일 없는 청년이었고, 오래 전 삼촌에게서 받은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은 채 그대로다. 세상은 그를 '천재의 탄생', '충격과 파격의 센세이션'으로 포장했지만, 그 화려한 말들 속에도 그의 외로움은 여전히 어둠 속 혼자다. 20파운드로 드레스 한 벌을 만들던 남자가 1500만 파운드 어치의 옷을 파는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리는 셀러브리티가 되었지만 오랜 작업 파트너이자 친구인 이자벨라를 잃었고, 지방 흡입을 했지만 마약에 중독됐으며, 지방시의 수장이 됐지만 디오르의 존 갈리아노 그 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예산을 받았다. 리는 분명 옷이란 날개를 펴고 런던과 파리의 하늘을 비상했다. 하지만 그곳에 그 말곤 아무도 없다. 지방시에서의 작업은 분명 그에게 맞지 않은 옷이었고, 좋지 않은 반응을 받았지만 어쩌면 그것이 딱 그와 세상과의 현실일지 모른다. 나는 맥퀸이 몇 번이나 모델에게 달아준 날지 못하는 날개에서 그의 쓸쓸한 고독을 본다. 

분노와 폭력, 아픔과 상처. 맥퀸의 옷들은 어김없이 현실의 언어로 치환됐다. 모델들이 마치 방금 강간을 당한 듯한 걸음으로 런웨이에 등장하는 'Highland Rape'는 그저 여자의 성적 대상화란 비판으로 물들었고, 맥퀸의 아마도 가장 훌륭한 쇼 'No. 13'은 '감정적이고 감동적인 테크놀로지와 패션의 만남'이란 호평 으로 들썩이는 수준에 그쳤다. 심지어 한 갤러리의 관장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로봇이 여자를 위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맥퀸이 그의 13번째 쇼를 마치고 이야기한 건 '감정'을 끌어내고싶었다는 말과, '내 쇼를 보고 처음으로 눈물이 났다'는 말이었다. 어쩌면 그에겐, 로봇의 발달, 테크놀로지와의 융합, 그렇게 패션의 품을 넓혀가는 콜렉션이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쇼의 마지막, 모델의 몸짓과 함께 두 로봇은 움직이기 시작하고, 로봇은 모델의 치마를 페인트로 물들인다. 모델은 눈물을 흘리지만, 그 눈물의 의미를 알고있는 건 아마도 알렉산더 맥퀸, 리, 그 혼자 뿐이다. 치유되지 않는 아픔, 스며들지 못하는 시간 속에 맥퀸은 끊임없이 옷을 만들었지만, 그건 어쩌면 패션이란 이름의 카모플라쥬, 그렇게 거짓말 같았던 인생일지 모르고, 그가 흘린 눈물은 아마도 무대 위 두 대의 로봇을 향해있다. 세상은 그에게 옷이란 날개를 건네주었지만, 나는 무리를 지어 다니는 나비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by ABYSS | 2018/10/15 15:15 | Cultur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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