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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고인 시간의 엘레지, 군산-거위를 노래하다


군산은 고여있다. 일제 시대 반세기 이전의 시간이 그곳에 고여있다. 일본식 주택, 단정한 마을이 이제야 관광지로 이야기되곤 하지만, 군산은 아픔의 기억이 부유하는, 시간 속 섬 같은 도시다. 장률 감독의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를 보며 어김없이 그의 전작 '경주'를 떠올렸다. 7년 전 춘화의 기억을 찾아 그보다 더 깊은 시간을 서성이던 하염없는 고독은 '경주'를 지나 '군산'에서 쓸쓸함을 배회한다. 나란히 늘어선 집들, 무언가를 숨긴 듯 굳게 닫힌 문들, 결코 수평을 포기하지 않는 집념의 앵글. 그만큼 소외되고 고립된 도시, 군산. 하지만 영화에 흐르는 건 '와본 적 있는', '본 적 있는 얼굴'의 알 수 없는 기시감이고, 영화는 공포와 희망, 어제와 내일이 뒤섞인, 그렇게 시를 닮은 골목으로 들어간다. 영화에서 언급되는 윤동주 시인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충분히 시에 가까운 영화다. 운율의 리듬으로 영화를 채워가고, 마주 앉은 인물을 곁에 두며 아름다운 착시의 시를 쓴다. 재일동포인 민박 주인(정진영), CCTV 안에 갇혀버린 소녀 주은(박소담), 시를 포기해버린 남자 윤영(박해일), 헤어짐의 상처를 가진 송현(문소리). 그저 우연히 스쳐가는 이들의 고향은 어쩌면 모두 군산일지 모르고, 보이지 않던 그곳의 애달픈 시간의 수평선은 어느 도심 고층 빌딩의 야경으로 이어진다. 

기차역 지도 앞을 출발한 영화는 군산의 작고 작은 거리를 느린 걸음으로 산책한다. 시간의 역사가 쌓인 집들은 아무런 표정이 없고, 단정하기 그지없는 거리는 발길을 조금 더 더디게 한다. 느리고, 느리고, 느리게. '와본 것 같다'와 '본 적 있는 것 같은' 속도로, 그렇게 막연하고 희미하게 발걸음을 조금씩 내딛는다. 나란히 늘어선 건물, 끝이 없는 수평선의 풍경, 단절된 시간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도시 . 영화는 그렇게 애타는 리듬으로 흘러간다. 집 앞에서 카메라는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하고, 안에 들어가서도 이방인의 조심스런 시선이 카메라의 움직임을 대신한다. 심지어 송현과 윤영, 그리고 그 맞은 편에 앉은 국수집의 백화(문숙)를 한 장면에 담아내는 장면에서, 영화는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수평의 질서를 포기하지 않는다. 카메라를 돌리지 않는 집념, 군산의 시간을 바라보려는 의지, 묻혀있던 아픔과 마주하려는 용기가 군산을 노래한다. 함께 연기한 문소리가 이야기했듯, 군산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건 어느새 '장률 영화 리듬에 딱 달라붙은' 박해일이다. 아무런 사정도 설명되지 않은 초반부터 윤영은 군산을 연기한다. 그를 움직이는 건 지도에 그려져 있지 않은 기억의 그림자이고, 그에겐 알 수 없는 소녀의 꿈이 아른거린다. 윤영이 담장을 넘어갈 때, 그 수평의 시간이 꿈틀댈 때, 나는 군산이란 이름의 질곡의 균열을 느꼈다. 

영화는 크게 두 개의 파트로 나뉜다. 시간은 왜인지 앞뒤가 뒤집혔고, 뒤집힌 시간만큼 군산과 서울은 이질적이다. 하지만 '군산'은 운문과 산문이 아닌, 산문 속에 배어있는 운문의 애절함으로 영화를 물들인다. 지갑을 잊은 윤영에게 약국의 여자(한예리)가 돈을 받지 않고 약을 건네는 장면은, 분명 군산 이전의 시간이지만, 왜인지 그 장면은 군산의 어느 자락 한 켠에서 숨을 쉰다. 군산에 흐르는 리듬을 채우는 건 갇혀버린 시간의 애달픔이고, 그만큼 영화는 공포를 머금고 있다. 단정한 일본식 가옥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 군산은 미로같은 복도 속 방 안에 움츠려있다. 주은은 고작 몇 대의 CCTV 화면으로 밖을 내다보고, 화면에 비친 남자를 가녀린 손으로 가리고 만다. 좀처럼 사람을 바라보지 못하는 벽면의 풍경 사진, 방이 없다는 거짓말과, '스미마셍'이라는 역설적인 사과, 그리고 결코 마주하지 못하는 수평의 고독. 하지만 상처는 상처를 알아보고, 머무르는 곳이 고향이며, 민박 주인의 필름은 왜인지 윤영의 가방 속에 담겨있다. 윤동주 시인의 증손녀가 윤영의 집 주방에서 그릇을 닦고있을 때, 우리는 식당 종업원에게 조선족이란 이름을 붙인다. 거리의 처지를 한탄하는 거리의 조선족 사투리는 가짜로 의심받을 만큼 시간이 흘러버렸다. 어쩌면 고작 치통에서 시작한 이야기, 하지만 영화는 아픔으로 시를 쓰고, 결코 비상하지 못하는 거위를 노래한다. 누군가의 고향, 군산의 노래를 부른다. 두 동강의 영화, 하지만 '군산-거위를 노래하다'는 그런 시다. 
by ABYSS | 2018/11/17 17:55 | Cultur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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