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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북클럽에 가던 날, 반지를 잃어버렸다

북클럽, 이란 걸 처음 가봤다. 책 욕심은 많아도 최근에만 사놓고 보지 않은 책이 여러 권 일 정도로 독서에 몰두하는 사람은 아닌지라 엄두를 내지 않았는데, 궁금함을 갖고 있던 이에게서 초대를 받았다. 나 정도의 독서량으로 얘기하기엔 머쩍지만, 책은 혼자 읽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 생각엔 왜인지 변함이 없다. 내가 느낀 감정, 내가 읽은 이야기, 내가 얻은 것들을 나는 언제나 숨겨두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 마치 자신이 좋아하던 무명 록밴드가 유명해지면서 유치한 질투 같은 것을 느끼듯, 나는 언제나 혼자이고 싶었고, 언제나 유일하고 싶었다. 그만큼 초라한 욕심쟁이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싶어하는 이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고른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내게 청했을 때, 나는 이상하게 웃고 있었다. 조금 긴 답변의 메시지를, 조심스레, A형을 닮은 특유의 B형 기질로, 몇 번이나 곱씹으며 보냈다. 하루가 지나 도착한 메일 속엔 '당신이 옳다'라는 책 제목이 적혀있었고, 나는 교보문고에서 책을 구입해 몇 번을 울먹이며 페이지를 넘겼다. 두 시간 정도 이어진 시간 속에 나는 말을 하기도 했고, 말을 듣기도 했다. '책'이 중심에 있는 자리였지만, (물론 책의 내용, 성격 탓일 수도 있지만) 이야기는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로 흘렀다. 타인을 공감하는 일이 결국 도착하게 되는 건 자신에의 공감, 아트가 빛나는 건 울퉁불퉁해도 선명한 자신의 목소리. 책을 고른 니키는 둘은 닮았다고 이야기했고, 나는 집에 돌아오는 길 그저 텅 빈 그릇이기만 한 나의 목소리를 생각했다. 

세 개 째리 반지 중 또 하나를 잃어버렸다. 사이즈가 조금 헐거워 항상 그만큼 불안했던 Pearls before Swine의 실버 링은 비 오던 가을 저녁, 그리고 어제 저녁 신사동 커피빈에서 하나씩 떨어져갔다. 내게 지금 남아있는 건 혼자가 되어버린 가느다랗고 심플한, 그렇게 초라한 반지 하나다. 별 거 아닌, 하지만 마음만큼은 넘칠 만큼 풍성한 선물 봉투 두 개를 가방에 넣다 반지가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는데, 찾아보니 손가락엔 반지 하나만이 외롭게 걸쳐있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는 아이가 아니었다. 엄마가 사주신 무슨무슨 전집은 손떼가 아닌 먼지가 쌓여갔었고, 아직도 몇몇 유명한 한국 고전 소설은 교과서에서 읽은 게 전부다. 그래도 무슨 깜냥으로 생각은 확실해, 모든 걸 알고있는 듯한 말도 안되는 자신이 있었다. 무슨무슨 백일장, 무슨무슨 글쓰기 대회에서 종종 상을 타기도 했고, 학원으로 향하는 버스에선 항상 거짓말도 되지 못하는 망상을 자주 했다. 어디까지나 나의 이야기지만, 나는 그냥 그릇인지 모른다. 홍상수 영화를 만났을 때, 나라 요시토모의 그림을 만났을 때, 사진인 줄 알았던 이하라 신지의 그림에 놀랐을 때, 람프의 음악을 듣고, 모리 에이키의 사진을 보았을 때, 나는 그저 이들의 세계를 그릇 안에 담고 싶었다. 담을 수 있었다. 나와 닮았다는 착각, 나와 비슷할 거라는 환상이 나의 그릇을 오므렸다 펴기를 반복했다. 홍상수도, 나라 요시토모도, 모리 에이키도 람프도 모두 나는 아니지만, 이들은 어쩌면 모두 나이다. 공감을 착각하며 채워온 그릇. 택시에 불이 꺼진 어느 밤, 경복궁 언저리에서 나는 반지를 잃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by ABYSS | 2018/12/21 14:33 | Ein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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