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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나와 닮아 슬픈 도쿄, 아리가또
이 보다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도시는 없다. 옆에 두었던 가방을 누군가를 위해 치우고, 노래가 몇 곡 흘러간 뒤 그와의 거리는 한층 가까워진다. 시부야 교차로 귀퉁이에서 함께 담배를 피우던 남자는 저녁을 먹기 위해 간 곳 구석에 앉아있었고, 연일 아침을 먹었던 가게의 사람들은 다른 듯 변함이 없다. 인구 천만,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 같은 걸 애기하는 건 아니다. 나는 도쿄에서 가장 사람을 느낀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영화를 기다리고, 같은 장면에 눈물을 흘리거나 졸음에 고개를 꾸벅이는 사람들, 라이브 공연의 순서가 110번이거나 308번인 사람들, 새로 산 피어스를 하고 나선 거리에서 마주친 어쩌면 똑같은 피어스의 남자와 극장을 들어서려던 순간 문을 열고 나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조금 허기가 져 문을 연 나카메구로(中目黒의) '오니기리 카페'엔 사람이 점점 늘어났고, 곁엔 일본인 남녀 커플이, 맞은 편 끝쪽에 아마도 놀러 온 듯 한 한국 여자 두 명이 꽤 많아 보이는 짐을 내려놓았다. 나는 이번 도쿄에서 처음으로 낯선 한국 사람과 한국말로 대화를 나눴다. 세상에서 가장 사소하고 유치한 이유로 도쿄행 비행기 표를 끊고 날아온 도쿄. 친한 듯 친하지 않은 듯 친한 몇 명에게 연락을 했고,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일본에선 주로 이런 관계를 '아는 사람(知り合い)'라고들 한다. 애매하고 아리송하고, 별 의미를 갖지 못하는 어쩌면 가장 차가운 도시의 단어. 젊은 남녀가 프론트를 보는 호텔에선 매일 아침 사람이 바뀌었고, 나는 매일 아침 다른 이와 인사를 나눴다. 도쿄에서 나는 가장 사람을 느낀다. 

도쿄를 떠나올 땐 항상 그렇다. 최대한 늦게 오고 싶어 늦은 비행기를 끊어도 마지막 날 쓸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점심 언저리까지다. 이제 막 하루가 기운을 내려는 차에 나는 항상 무거운 가방을 낑낑대며 공항으로 향한다. 이미 예고된 아쉬움, 몇 번이나 경험했던 쓸쓸함,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또 다시 어리석게 최대한 늦은 비행기를 끊었다. 눈은 내렸고, 캐리어는 좀처럼 나아가지 못했고, 차는 막혔고, 비행기는 지연됐다. 타려는 버스의 막차까지 아슬아슬해 하는 수 없이  4000엔 짜리 열차 티켓을 샀다. 2년 전 겨울과 지금, 비슷한 시간에 같은 열차. 공포가 어린 데자뷔의 한복판. 듬성듬성 남아있던 기억이 스쳐가는 창밖 밤 풍경에 흘러갔다. 가방을 버리고 와 찾으러 갔고, 이후에도 몇 번이나 나리타 공항에 내렸고, 비슷한 거리와 비슷한 가게를 걷곤 했지만, 12월 어느 밤 도쿄에 눈은 내리지 않았다. 바보같은 이유들을 움켜쥐고, 희미한 이야기를 되새기고, 시부야에 내려 택시를 탔다. 남아있는 건 고작 두 세 시간 짜리 하루. 다리가 아팠고, 감기가 올 듯 무거워진 코에, 밖은 이미 어둠 뿐이다. 사소한 이유에 아무 생각 없이 온 도쿄에서,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았지만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는 데자뷔는 이미 많은 걸 예고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6일 조금 남짓, 144시간하고 몇 분. 나는 여전히 낑낑댔고, 변함없이 힘들었고, 종종 무언지 모를 눈물을 흘렸다. 매일 걷던 길의 보이지 않았던 샛길, 스쳐가기만 했을 뿐 걷지 않았던 길, 오래 전 내가 살던 미타카(三鷹)의 집은 없어졌고, 좋아하는 이노카시라 공원 입구 스타벅스 점원들은 작은 숲을 닮은 단아한 검정색의 긴 스커트를 입는다. 


도쿄에 와 약 값으로만 오천엔 정도를 썼다. 매일같이 걷고 걷는 나날이라 80개들이 파스를, 얼마 전 가위에 베인 손가락 탓에 100개는 들었을 법한 반창고 한 박스를, 코에서 목까지 번진 감기를 참지 못해 약국에서 감기약 한 통을. 한 통이라고는 해도 한번에 세 알을 먹어야 하는지라 고작 5일치가 만 오천원은 한다. 왜인지 많은 게 아팠다. 몽블랑을 먹고 싶었던 신주쿠의 란푸루(らんぷる)는 하필이면 만석이었고, 어쩔 수 없이 가볼까 싶었던 후루기 가게는 3층에, 날이 주말인지라 체인점 카페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그저 아는 곳을 서성였다. 가장 싸지만 가장 맛이 없는 카페 '베로체(veroce)'에 겨우 앉아, 나카메구로 작은 책방에서 산 책들을 꺼내 작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바라보아도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신쥬쿠 2쵸메에 위치한 이곳은 게이가 많다고 말이 많은지라, 스쳐가는 시선만이 시끄러웠고, 나는 가방에서 다이어리를 꺼내 모리의 전시를 보러 가자고 겨우 다짐했다. 3쵸메에서 2쵸메로, 겨우 몇 미터의 거리를 꾸역꾸역 걸었다. 워낙에 작은 갤러리라, 근처에서 한참을 헤매고, 기억 속 기억을 더듬으니 갤러리 'KEN NAKAHASHI'는 가파른 계단 위 5층에 있다. 해가 진 이른 저녁, 새하얀 갤러리의, 아마도 주인인 듯한 켄 씨가 굵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한참을 혼자서 멀뚱히 사진을 바라보고 어둠을 바라봤다. 가파른 계단 위 갤러리만큼 여기서 먼 곳 어딘가의 희마한 불빛이 빛나고 번지고 번지고 빛났다. 모리 에이키는 아우팅한 게이 사진가이고, 그는 기무라 이헤이 상을 수상했고, 그의 이번 전시 타이틀은 'letter to my son'이다. 집에 돌아와 트위터를 살펴보니 모리의 전시는 시간에 따라 다른 빛을 낸다고 쓰여있었지만, 나는 어둠도 빛도 아닌, 그저 아직 오지 않은, 어쩌면 가장 망설이고 겁내했던 그런 단어를 떠올렸다. 어쩌면 희망, 살아있기만 한다면.

어쩌면 그저 무수히 많았던 숱한 도쿄일지 모른다. 대부분 혼자이고, 가끔 누군가를 만나고, 무언갈 많이 사거나 조금 사거나, 거의 신주쿠 아니면 시부야. 스다 마사키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 껏 만들었다는 프로그램 'NHK'의 '스다 마사키 테레비' 때문에 온 도쿄는 어김없이 나의 도쿄였고, 대행히 지금의 도쿄였다. 영화보다는 '이미지 포럼'에 가고 싶어 고른 영화 '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寝ても覚めても)'를 보며 어디에도 없던 눈물을 흘렀다. 히가시데 마사히로가 바쿠(麦)와 료헤이(亮平), 1인 2역을 맡은 이 영화는 나와 누군가, self & other를 이야기하는 오묘한 작품이다. 2011년 311 동북대지진의 흔적이 흐릿하게 느껴지지만, 영화는 그보다 넓게 바다를 숨긴 뭍의 이야기를 뿜어낸다. 미스테리라기 보다 공포가 되어버린 현실 속 누군가, other의 존재를 삶 가장 깊숙한 곳에서 그려낸다. 바쿠를 밀어낸 아사코(카라타 에리카)가 료헤이를 쫓아 달려가는 비오는 날 지난한 길은, 나를 하염없이 울렸고, 옆에 앉은 어느 중년 여성이 가방 속 손수건을 꺼내게 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도쿄에서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 처음으로 혼자 신주쿠 동쪽과 서쪽 출구를 헤맸을 때도, 외국인 노동자로 도쿄 외곽에서 혼자 살았을 때도, 마감 직전 '반액' 스티커가 붙은 도시락을 사고, 퇴짜를 맞은 길고 긴 원고를 수정하던 때도, 하물며 막차를 놓쳐 가방을 버리고 잘 곳 없는 거리를 걸었을 때도, 나는 울지 않았다. 나는 그저 영화를 보았고, 음악을 들었고, 조금씩 나와 닮은 무언가에서 몸을 움츠렸다. 나를 잃어버렸던 일년 , 이상한 꿈이 이어지던 몇 달, 나는 깨어있거나 자고있었는지 모른다. 전날 밤 잠을 자지 못해 초반을 졸았지만, 왜인지 개운해진 기분에 바라본 첫 장면은 아사코가 떠나가는 바쿠의 차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바이바이'라 외치던 부분이었다. 나는 영문도 모르면서 눈물을 찔금 흘렸다. 


도쿄를 마음 먹고, 몇 가지를 노트에 적었다. 모리 에이키의 두 전시, 아사노 타다노부가 그린 8000점의 그림을 볼 수 있는 와타리움 미술관, 퍼블리와 일을 하며 이메일로 몇 차례 얘기를 주고받았던 카미부의 P가 보내 준 메일과 시부야 언덕 카페에서 만났던 카나이 후유키의 작은 전시, 그리고 나라 요시토모가 좋다고 트위터에 올린 이랑의 책 '슬프면서도 멋있는 사람(悲しいくてかっこいい人)'과 후지하라 히로시가 긴자에 만들었다는 'the conveni'' 등. 보통 여행가는 사람이 으레 그러는 것처럼 그렇게 적었다. 적어놓은 걸 착실히 수행하는 성실한 여행자처럼 도쿄를 걸었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시부야 언덕길의 WWW에서 라이브가 보고 싶었고, 왜인지 오래 전 살았던 미타카 무레(群) 6쵸메에 가보고 싶었다. 지난 여름 비가 내리던 날, 도쿄에 주소가 없어 예매하지 못했던 paellas의 공연을 보겠다고 근처 카페에서 한 시간을 기다리고, 'sold out'이라 적힌 초라한 종이 쪼가리에 발길을 돌린 지 1년이 조금 넘어, WWW에 갔다. 무슨 우연인지 또 조금 비가 내렸고, 아마도 마지막에서 열 번째 쯤으로 공연장에 들어갔고, 알 수 없이 문을 닫아버린 마음을 끌어안고 미조베 료(ミゾベリョウ)의 노래를 들었다. 그저 '나쁘지 않은 것' 같아 골랐던 공연, odol의 공연을 안내하며 스태프는 odol을 '오도루'라 발음했고, 나는 왜인지 그게 작고, 귀엽고, 초라해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감기를 걱정하며 고른 진저에일을 한 손엔 쥐고, 리듬에 휘청이고 흔들리면서, 나는 울고 있었다. 마치 병원의 불안한 전자음이 쓸쓸하고 외롭게 희미한 숨소리를 알려오듯, 무대 이곳저곳에 점멸하는 빨간 빛 어둠 속을 뚫고 뛰쳐나오는 미조베 료의 우울과 고독에 나는 눈물을 흘렸다. '나쁠 것 같지 않다'는 건 어쩌면 나와 닮았을지 모른다는 감각이고, 이들은 어김없이 내 얘기를 하고 있었다.

올해 여름 문을 닫았던 아오야마 북센터는 입장료를 받는 서점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롯뽄기 대로변에 위치한 '분끼츠(文喫)'는 1500엔을 내고 뱃지를 구매해야 입장할 수 있다. 입구엔 호기심을 열어준다는 의미로 백 여 권의 잡지가 진열되어 있고, 뱃지를 단 사람들은 이곳의 책을 마음껏 보고 구입할 수 있다. '서점'에서 하야시라이스를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는 동안 사카이, 언더커버, 레이 카와쿠보의 백과사전만한 책을 골라 테이블에 놓았다. 하야시라이스 자리를 위해 책을 한쪽으로 정돈하고, 이곳저곳을 살폈다. 총 다섯 곳의 섹션으로 나뉘어 있지만 사실 한 공간의 여기저기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렇게 남다른 구분은 아니고, 1500엔을 주고 볼 수 있는 책은 몇 천 권이라 해도 사실 그리 많지는 않다. 아마도 10여 년 전 나는 이곳이 아닌 이곳을 찾은 적이 있다. 도쿄필름페스티벌 취재 차 선배가 도쿄에 왔고, 선배의 호텔은 록뽄기에 있었고, 나는 빈 시간을 떼우기 위해 아오야마 북센터의 이런 저런 책을 구경했다. 아마도 그 때 보았던 책은 여기에 없다. 시간은 흘렀고, 나는 변했고, 책방은 점점 사라지고, 새로운 형태의 책방이 문을 열고 있지만, 내게 '분끼츠'가 만든 '엄선실'이란 이름은 자신과 닮은 것들의 둥지같은 애뜻한 방처럼 느껴졌다. 소외와 외로움을 각오한 자리, 나의 책이지만 너의 책은 아닐 수 있는 것들, 누군가에겐 책을 만끽하는 시간이지만, 누군가에겐 입에서 살살 녹는 하야시라이스가 오롯이 남는 시간. '분끼츠'엔 보그와 바자는 없지만 철도 매니아 잡지 '철도인(鉄道人)'이 있고, 이곳의 아트 코너는 고작 책장 한 줄이다. 도서 검색대를 놓지 않으며 '책과의 만남'을 유도하는 '분끼츠'의 의도는 그러니까 절반만 맞고 나머지는 틀렸다. 이곳에서 나는 나와 닮은 책을 만나지 못했지만, 꿈꿔오던 하야시라이스를 만났다. '나와 닮은 것들', 이 말의 절반은 차가운 겨울 바람을 닮았다.


미타카를 가려면 시부야에서 이노카시라센을 타고 키치죠지에 내려 버스를 탄다. 이후 신오오쿠보와 긴자에 갈 예정이라면, 순서는 당연히 신오오쿠보 다음 긴자이고, 츄오센과 마루노우치센을 탄다. 하지만 이노카시라 공원 스타벅스에서 음료를 한 잔 더 시킨 탓인지, 시간이 애매해졌다. 버스를 타고 살던 집까지 갔다 미타카다이(三鷹台) 역까지 걸었지만, 긴자의 '더 콘비니'는 저녁 7시에 문을 닫는다. 결국 순서를 바꿔 집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주문한 하이볼을 몇 모금 마시지도 못하고 자리를 떴다. 숨막히게 걷고, 숨막히게 구경하고, 숨막히게 몇 가지를 사고. 밖을 나오니 이미 해는 어디 가고 없다. 하지만 생각한다. 10여 년 전의 시간이, 몇 번을 망설였던 만남이, 몇 년간 눈물에 가려있던 거리가, 기껏 데자뷔에 떠오른 그 흐릿한 감정이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노트에 적은 대로 굴러갈 리가 없다. 공원으로 향하는 골목 곁엔 작은 약국이 있었고, 그곳의 아주머니 약사는 친절하게 나의 아픔을 물어봐주었고, 오전의 스타벅스는 고요하고 고요해 맑은 날의 숲 속 같았다. 나는 괜스레 오래 전 좋아했던 '포피 시드 파운드 케이크'를 물었다. 시간도 빠듯하면서 10분이 넘는 길을 오래 전 밤길을 걸었던 것처럼 걸었다. 고작 버스 정류장인 표지판을 오래 전 여름 아침을 생각하며 찍었다. 키치죠지 마루이 쇼핑몰 앞 정류장에서의 시간, 버스 자리에 앉아 내다본 창 밖의 그저 그런 가게와 길, 뭐라 더할 단어도 없이 평범하고 아무렇지 않은 풍경. 하지만 나에게만 보이는 얼룩과 아픔과 눈물과 바보같은 실수, 무엇보다 꾸역꾸역 걷고있던 나와 나. 나는 나에게 울었고, 나에게 미안했고, 나에게 고마웠다. 어떻게든 살고있었던 초라하고 볼 품 없는 작고 작은 감정, 시간, 아픔들이 이제야 보였다. 도쿄는 내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언제나 그저 도쿄였고, 언제나 그저 조금 다른 도쿄였다. 하지만 나는 그냥 '괜찮을 것 같아' 도쿄를 간다. 바보같고 어떻게도 설명되지 않는 그런 나를 품고 도쿄에 간다. 이 바보같은 144시간에, 작은 희망으르 보았다니, 나도 참 바보다. 

by ABYSS | 2018/12/27 11:10 | Ein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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