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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드시고 가시나요?

'마끄'에 밖에 갈 수 없었다. 일본에선 스타벅스를 '스타바', '맥도날드'를 '마끄', KFC를 '켄터키'라 부르는데, 일본어도 할 줄 모르고, 혼자 밥을 먹기에는 쭈뻣한 내가 갈 수 있었던 건 '마끄' 뿐이었다. 처음으로 도쿄에 갔던 2002년의 이야기다. 세트를 주문했는데 케챱이 보이지 않아 어리둥절하고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일본에선 기본 포테이토에 케챱을 붙여주지 않는다. '케챠프, 오네가이시마스.' 이 말이 그렇게도 힘들었다. 프랜차이즈에 종종 간다. 체인점에 자주 간다. 스타벅스에 가 커피를 마시고, 커피빈에서 담배를 피우고, 할리스에서 간단한 파스타까지 먹는다. 거의 7할이 넘는 게 체인점이고 프랜차이즈인 게 가끔은 속상하지만, 체인점에선 최소한 실패를 예상할 수 있다. 지난 해, 일본에서 ZINE을 만드는 사람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녀가 만든 ZINE의 제목은 '미스터 도너츠에서 만나요'였고 나는 그 책에 대해 쓰며 '체인점은 도시가 숨긴 하나의 얼굴'이란 문장을 적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그런 문장이었다. 체인점은 일률적이다. 체인첨은 빤하다. 체인점은 기계와 같고 체인점은 무미건조하다. 하지만 거리의 공기를 흡수하기도 하는 게 체인점이다. 도쿄 시부야에 스타벅스는 32 곳이나 있지만, 나는 이른 아침에 스크램블 교차로의 츠타야 스타벅스를, 점심이 지난 이후 2쵸메 246 국도 길변의 스타벅스를 간다. 아오야마 골목 길에, 우연히 만난 또 하나의 스타벅스는 지금 다시 간다면 분명 헤맬 게 뻔하지만, 후지와라 히로시가 만든 'the pool’에서 가방을 하나 사고 숨을 골랐던 곳으로, 나는 그 곳을 설명할 수 있다. 체인점은 도시를 닮는다. 

플라스틱 사용이 제한됐다. 셀 수 없이 쏟아지는 뉴스가 내 생활에 이렇게까지 치명적이었던 적은 없다. 스타벅스는 앉아서 먹거나 가지고 밖에 나가거나 항상 플라스틱 컵이었고, 나는 조금만 시간이 비어도 카페에 들어가 무언가를 주문하곤 하는 사람이다. 머그 잔에 음료를 받아들고, 약속 시작이 다가올 즈음, 음료는 절반도 줄어있지 않다. 요즘 그곳에 가면 예전에 없던 문장 한 마디를 계산 사이에 꼭 끼어 넣는다. '드시고 가시나요?' 스타벅스도, 할리스도, 커피빈도, 투썸도, 한국의 모든 카페가 그렇게 말한다. '드시고 가시나요?' 고작 며칠 사이에 테이크 아웃을 하면 매장에 앉아있을 수 없다. 고작 며칠 사이에 찬 음료를 머그에 마셔야 한다. 고작 며칠 사이에 종이 빨대를 물어야 하고, 고작 며칠 사이에 모두가 같은 말을 한다. 고작 며칠 사이에 나는 같은 5800원을 내고 토피넛 라떼를 주문하자마자 밖으로 나와야 한다. 스타벅스를 좋아했다. 정확히 그곳의 쵸코 퍼지 케이크를 좋아했다. 없는 곳이 많아 들어가면 항상 확인을 하고 자리를 잡을 정도로 좋아했다. 하지만 요즘 스타벅스는 그저 삭막한 도시의 체인 커피집인 것만 같다. 해마가 뱃속에서 면봉을 뱉어내고, 고래들은 죽어가며 눈물을 흘리는 지금, 플라스틱 문제는 소 잃고도 고쳐야 하는 외양간이지만, 플라스틱 사용에 반대한다는 말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투박한 머그 잔에 마시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양해의 제스춰, 공감을 구하는 온도가 생략된 말에 나는 동의를 하고 싶지 않다. 그저 체념의 마음으로 나는 스타벅스에 간다. 

사실 나는 이 나라가 밉다. 스타벅스가, 커피빈이, 투썸이, 할리스가 아닌 현실을 망각하고 드러난 얼룩만 지우려는 대한민국이 밉다. 플라스틱 사용 제한에 필요한 시간, 플라스틱 사용 제한을 위한 애씀이 간과되는 이 나라가 좋아지지 않는다. 플라스틱이 머물렀던 자리를 사고하지 않고 '제한'과 '벌금'으로 일을 마무리하려는 움직임은 그저 도시의 외벽같은 차가운 입막음에 불과하다. 가게는 고작 며칠 사이에 벌금을 내야 할지 모르고, 손님은 고작 며칠만에 가게에서의 시간을 잃어버린다. 건강의 이름으로 흡연이 사라지고, 환경의 이름으로 카페의 자리가 지워진다. 애초 테이크아웃 컵은 말 그대로 테이크아웃을 위한 컵이고, 플라스틱 남용은 꽤나 해묵은 일이고, 그건 어느 누구가 아닌 너와 나, 바로 이곳의 시간인데, 갑자기 그간의 사정은 반성할 시간도 갖지 못한다. 며칠 전 종종 찾던 스타벅스에 갔다. 한참을 걸어서 목이 마른 상태였고, 왜인지 햇살이 뜨거운 오후였다. 한참을 생각하다 '패션 라임 티'라는 걸 주문했다. 역시나 물었다. '드시고 가시나요?' 하지만 나는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유리 잔을 소독할 때 시간이 소요된다는 이야기가 오고갔고, 다행히 찾은 그란데 사이즈의 유리잔을, 그녀는 얼음으로 식히고 있었다. 차를 주문하면 항상 뜨거워 식혀야 입을 델 수 있는 스타벅스이지만, 나는 그 날의 패션 라임 티를 간직하고 싶다. 조금의 배려, 상대방을 위한 조금의 자리. 플라스틱을 덜어낸 자리를 채워야 하는 건 아마도 이런 애씀이다. 나는 다행히 다시 한 번 체인점에서 도시를 느꼈다. 

by ABYSS | 2019/01/19 18:08 | Ein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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