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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가장 어리석은 변명, 우행록:어리석은 자의 기록

'우행록.' 이 영화엔 부제가 붙었다. '어리석은 자의 기록.' 부제라고는 해도 제목을 풀어놓은 정도이지만, 무거운 쓸쓸함을 풀어헤쳐놓은 듯한 이 제목은 이 영화의 전부다. 살인 사건을 쫓고있지만 그건 형사가 아닌 기자고, 범인으로 향해야 할 카메라는 자꾸만 옆 길을 바라본다. 어리석은 행동을 기록하고 기록하고 기록하는 것.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은 범인을 찾는 일에 관심이 없다. 어제의 살인을 오늘의 연예인 스캔들이 덮어버리는 시대에, 영화는 범인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을 선택하지 않는다. 이미 1년이나 지난 사건, 별 상관 없어 보이는 살인 사건과 아동 학대 사건. 이 둘의 어리석음과 알 수 없는 연결이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이다. 아침 버스의 상쾌한 공기를 둔탁한 사운드가 뭉개기 시작할 때, 기록은 조금씩 어리석은 속살을 드러낸다.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은 남자는 이기적이고, 그런 남자를 질타하는 중년 남자는 정의롭고, 다리를 절뚝거리며 이 보다 더할 수 없는 복수를 가하는 남자는 교활하기 짝이 없지만, 그런 남자를 바라보는 중년 남자는 머쓱해 사과도 하지 못한다. 누가 옳고 그른지, 어디까지가 예의이고 어디부터가 간섭인지, 사람은 과연 선한지 악한지. 모든 게 서로를 삼켜버리는 버스의 고작 3분 남짓한 시간에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은 씁쓸하고 다행인 지금을 바라본 다. 어리석어서 죽이고, 어리석어서 죽고, 어리석어서 괜찮고 어리석어서 다행이다. 영화의 마지막, 남자는 임신을 한 여자에게 자리를 양보하지만, 영화 초반의 둔탁하고 묵직한 사운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은 일본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그제자 포털 메인에 뜬 기사대로라면 그렇다. 타코로 출연한 코이데 케이스케의 여고생 스캔들로 영화가 실패했다고, 기사는 썼다. 하지만 그건 지난 해 7월의 이야기고, 영화는 2017년 2월애 개봉했다.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은 개봉 첫 주 10만을 동원할 정도로 나쁜 성적을 낸 작품이 아니다. 작품 특성상 많은 스크린을 잡지 못했고, 함께 개봉한 오락 영화들에 밀렸을 뿐이지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은 코이데 케이스케의 여고생 추문 때문에 실패하지 않았다. 연예인의 스캔들, 언론의 견강부회.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번의 어리석음은 '우행록'을 설명한다. 집안이 피로 도배된 섬뜩한 장면을 묵직하게 훑으면서도, 시종일관 표정을 감춘 남자의 시간을 느리게 쫓으면서도, 영화는 사건의 실마리를 향해 가지 않는다. 영화엔 가족 모두가 살해당한 끔직한 사건의 1년 후가 있고, 아동 학대로 구치소에 수감된 동생을 둔 주간지 기자 타나카(츠마부키 사토시)의 그늘같은 삶이 있다. 타나카는 타코 가의 살인 사건을 취재하지만, 영화는 사건의 조각을 흘리면서 주변 사람들의 알 수 없는 어리석음을 드러낸다. 남자에게 이용당하고도 괜찮은 마음, 자신의 꿈과 야망을 위해 합리하되는 이기와 착취. 비난이 자리할 자리에 알 수 없이 흐르는 세월과 서로의 이기가 맞물려 성립되는 관계. 그렇게 삶을 파괴하고 구원하는 어리석음. 서로 곁에 자리하게 되는 잔혹한 살인과 어느 버스에서의 아침 풍경에, 우리는 표정을 감출 수 밖에 없다.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은 최대 밀도의 현실이다. 1년이나 지난 시간을 데려와 지금의 사건과 뭉개버리는 영화는 어찌할 수 없는 체념과 어리석은 희망을 빈틈없이 기어낸다. 좀처럼 속을 비치지 않는 타나카는 지금을 살지 않는 듯 상실의 발검음으로 영화를 어슬렁거리고, 이야기는 사건의 원인과 결말과는 뜬금없는 조각을 던지는 것 같으면서도 어김없이 추리 영화의 '골'로 진입한다. 하지만 여기서 '골'은 사건을 마무리하는 '골'이 아니고, 상처나고 찢겨진 시간의 단면을 절개해 내비치는, 인간이란 이름의 잔혹하고 어리석은 일상의 낱낱이다. 비슷하게 타코에게 이용당하고도, 혼을 잃은 듯 울어버리는 여자에 오히려 안심하는 또 다른 여자 메구미(이치카와 유이), 오가타(나카무라 토모야)의 담배 꽁초를 휴대용 재떨이에 대신 버려주고, 비 내리는 밤 복수의 담배 꽁초가 되어버린 선의. 옳음은 그름을 물들이고, 선행과 악행은 한 자 차이고, 인간이란 존재는 알 수 없는 어리석음 덩어리다. 이시카와 케이 감독은 누쿠이 토쿠로의 나오키 수상작을 원작으로 했지만,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시종 지치지 않는 리듬으로 극을 끌고간다.내부와 외부, 격차와 계급이 남아있고, 진심과 거짓말이 뒤섞여버린 일상의 어리석은 얼룩을 바라본다. 이건 비관도 아니고, 낙관도 아니고, 긍정도 아니고, 부정도 아니고, 그저 리얼, 현실, 어리석은 인간에 대한 초상이다. 얼핏 타나카 남매와 타코 부부와 주변 사람들로 피해와 가해의 선을 그을 수 있지만, 영화의 엔딩은 타나카 남매에게 그을린 죽음이란 이름의 애절한 그림자다. 어리석음에 무너지고 어리석음에 일어나는 시간들. 어쩌면 이 영화는 가장 최선의 반성, 다시 과오를 범하는 내일에 대한 인간적인 변명일지 모른다. 
by ABYSS | 2019/01/22 11:42 | Cultur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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