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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멜랑꼴리 first day

'원더풀 고스트'를 봤다. '그것만이 내 세상'을 봤다. 제목 만으로도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은 두 영화를 2월 4일과 5일, 연달아 봤다 .이 나라의 설은 왜인지 두 번이나 찾아오고, 구정이라 불리는 두 번째 새해를 나는 가족들과 이 두 영화를 보며 보냈다. 아침을 먹고, 간단히 정리를 하고, 차와 다과를 준비해 마루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설이라는 이유로 조금 더 잡다하게 늘어놓는다. 엄마는 반세기에 가까운 옛날옛적 이야기를 슬며시 꺼내시고, 누나들은 숨기고 있던 지난 날의 기억을 서로 다른 리듬에 얹어 놓는다. 지난 새해, 2018년 1월 1일, 두 번의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려 허덕였던 나는, 정확히 380일 즈음 지난 아침, 마루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빵을 먹는다. 어쩌면 설이니까 하는 이야기. 왜인지 명절의 옷을 입고 일어나는 날의 이야기. 매해 찾아오는 진부한 새해 아침에 나는 또 속고 말았다. '원더풀 고스트'를 보며 열 번은 웃었다. 마동석의 영화는 팔둑에 기대는 영화라 매섭게 쏘아 붙였지만, 나는 그의 연기에 배꼽을 잡았고, 어느 대목에선 간신히 눈물을 참았다. 영화는 진부한 설정을 진부한 흐름으로 진부하게 끌고간다. 조금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가 위기와 곤경을 천연덕스럽게 구해낸다. 모든 아픔이 구원받는 결말, 봉합이 예고된 익숙한 이야기. 이건 어김없이 영화의 이름을 빌린 거짓말이고, 새해의 아침을 닮은 이상한 영화다. 마치 내가 어제를 배반했듯, 그제를 잊으며 내일을 기대했듯. 영화 '원더풀 고스트'를 보며, 나와 엄마, 그리고 누나들은 이상한 웃음으로 새해 오후를 지샜다.

이상하게 명절 때마다 힘들었다. 결혼에 시달리는 섹슈얼리티도 아니고, 이름모를 친척 잔소리에 시달리는 환경도 아닌데 힘들었다. 매번, 어김없이 그랬다. 적당히 밥을 먹고 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거나, 홀로 빵과 커피로 끼니를 떼우거나, 뒤늦게 밖에 나가 텅 빈 거리를 홀로 걷거나. 남들은 혼자 보내는 명절의 여유를 얘기하는 듯 싶지만, 내게 혼자의 명절은 어찌할 수 없는 아픔과의 재회다. 보통으로 태어나지 못해 보통의 삶을 살지 못하는 나에게, 보통의 행복이 약속이라도 된 듯 정해진 날들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는 도망을 쳤고, 눈물을 흘렸고, 반쪽도 남지 않은 하루를 기를 쓰고 부여잡았다. 마치 세상이 분열이라도 된 듯, 그 분열된 조각은 한줌도 되지 않는 듯, 나는 엄마, 누나들, 그리고 우리집 강아지와 홀로 명절을 보냈다. 정해진 연휴 4일이 끝나려던 무렵, 약속된 행복이 지려하는 즈음, 나는 바보같이 지난 해와 다른 지금에 안심을 한다. 이미 그저그런 하루가 시작된 지금, 별 다를 바 없는 날들에 이상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방문을 닫고 틀어박히지 않았던 나를, 누나와 엄마 곁에 앉아 웃음을 터뜨렸던 나를, 좋아하는 일본 드라마를 틀어놓고 게이 커플이 키스를 하는 장면을 함께 바라보았던 시간을. '원더풀 고스트'와 '그것만이 내 세상'은 한 해 고작 다섯 편 정도 한국 영화를 보는 내가 올해 처음 본 한국영화고, 열에 아홉은 홀로 극장을 찾는 나는 가족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 새해 첫 영화를 보았다. 설이란 이름의 이상한 시간, 아마도 올해 나는 설날에 또 속고말았다. 

photo_「Family Re-gained」eiki mori 

by ABYSS | 2019/02/07 21:00 | Ein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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