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2월 07일
멜랑꼴리 first day

이상하게 명절 때마다 힘들었다. 결혼에 시달리는 섹슈얼리티도 아니고, 이름모를 친척 잔소리에 시달리는 환경도 아닌데 힘들었다. 매번, 어김없이 그랬다. 적당히 밥을 먹고 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거나, 홀로 빵과 커피로 끼니를 떼우거나, 뒤늦게 밖에 나가 텅 빈 거리를 홀로 걷거나. 남들은 혼자 보내는 명절의 여유를 얘기하는 듯 싶지만, 내게 혼자의 명절은 어찌할 수 없는 아픔과의 재회다. 보통으로 태어나지 못해 보통의 삶을 살지 못하는 나에게, 보통의 행복이 약속이라도 된 듯 정해진 날들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는 도망을 쳤고, 눈물을 흘렸고, 반쪽도 남지 않은 하루를 기를 쓰고 부여잡았다. 마치 세상이 분열이라도 된 듯, 그 분열된 조각은 한줌도 되지 않는 듯, 나는 엄마, 누나들, 그리고 우리집 강아지와 홀로 명절을 보냈다. 정해진 연휴 4일이 끝나려던 무렵, 약속된 행복이 지려하는 즈음, 나는 바보같이 지난 해와 다른 지금에 안심을 한다. 이미 그저그런 하루가 시작된 지금, 별 다를 바 없는 날들에 이상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방문을 닫고 틀어박히지 않았던 나를, 누나와 엄마 곁에 앉아 웃음을 터뜨렸던 나를, 좋아하는 일본 드라마를 틀어놓고 게이 커플이 키스를 하는 장면을 함께 바라보았던 시간을. '원더풀 고스트'와 '그것만이 내 세상'은 한 해 고작 다섯 편 정도 한국 영화를 보는 내가 올해 처음 본 한국영화고, 열에 아홉은 홀로 극장을 찾는 나는 가족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 새해 첫 영화를 보았다. 설이란 이름의 이상한 시간, 아마도 올해 나는 설날에 또 속고말았다.
photo_「Family Re-gained」eiki mori
# by | 2019/02/07 21:00 | Ein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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