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타자의 꿈을 꾼다, 아사코


영화 '아사코'를 보며 엄청 울었다. 초반을 졸고도 끝도 없이 눈물이 났다. 아사코(카라타 에리카)가 떠나가는 바쿠(히가시데 마사히로)의 차를 향해 두 손을 흔들며 '바이바이'라 작게 외치던 장면부터 료헤이와 하염없이 강둑을 달리는 장면까지 깨어있는 내내 알 수 없는 눈물이 그칠줄 몰랐다. 지난 겨울 도쿄에서 '아사코(寝ても醒めても)'를 처음 봤을 때의 이야기다. 주인공 아사코가 바쿠란 남자와 만나 사랑에 빠지고, 이상한 이별 후 바쿠와 꼭 닮은 료헤이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하면 그저 평범한 멜로물로 들리지만, '아사코'는 묘하게 의미심장한 이야기다. 여기가 아닌 어디, 강둑 너머 바다를 바라보는 듯한 영화는 알 수 없는 막연함으로 사람을 울린다. 초반의 대부분을 졸아버린 나는 고향 친구 하루요(이토 사이리)와 배드민턴을 치다 여고생들의 대화에서 흘러든 '바쿠'란 말에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 향하는 아사코의 모습이 아슬아슬하고 위험하게 아름다웠다. 오사카에서 도쿄로, 몇 번의 시간이 점프하는 영화에서 어떤 영문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울고 또 울었다. 이른 아침 아사코와 바쿠, 둘은 우연히 만나 이름을 건네고 키스를 하지만, 그건 여느 남녀의 만남처럼 보이지 않았고, 빵을 사러갔다 아침이 되어 돌아오고, 신발을 사러갔다 몇 년째 무소식에, 그저 옛 연인을 닮았을 뿐인데 소스랄칠 정도로 놀라곤 하는 '아사코'의 이질감은 무언가 묘연한 공포를 닮았다. '아사코'의 원제는 寝ても覚めても, 칸느 상영 당시 타이틀은 Asako I&II. '아사코'를 풀어보면 아침(朝)과 사람(子)이고, 극중 두 번이나 등장하는 전시 타이틀은 'Self & Ohters'다. '아사코는 내가 아닌 나, 여기가 아닌 여기, 강이 아닌 바다의 세계를 품고 사랑을 얘기한다. 알 수 없이 사랑에 빠지고 알 수 없는 이별을 하고, 알 수 없는 사고를 당하고, 알 수 없는 재난이 찾아오고. 유독 잠이 오지 않았던 지난 도쿄에서의 열흘 한 가운데, 나는 어쩌면 나인 것만 같은 나에게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했다. 

종종 생각하곤 한다. 가끔 얘기하기도 한다. 혼자인 게 편하다고. 혼자이고 싶다고. 하지만 '아사코' 안에서 혼자는 혼자가 아니다. '혼자라는 건 과연 혼자의 시간일까'라는 생각을, 나는 이제서야 떠올린다. 거울 속 나는 내가 아닌 나이고, 내 안의 어딘가에 또 다른 나로서의 내가 자리한다. '아사코'를 세 번 보았다. 잠이 오지 않았던 도쿄에서, 초반을 졸아버린 탓에 다음 날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한국에 돌아와 개봉 첫 날 홍대 근처에서. 막연함을 품어내는 영화의 뭉클함이 좋았다. 바쿠는 이름도 이상하지만 병중이라는 아빠는 등장하지도 않고, 아사코와 바쿠는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고도 어디 한 군데 상처 없이 평상에 앉아 수박을 먹는다. 아사코와 바쿠의 관계는 이상하다못해 괴상하고, 따져보면 바쿠는 아리송한 구석 투성이다. 맨발에 슬리퍼로 갤러리를 돌며 멜로디를 읊고, 이름을 묻는 질문에 키스를 하고, 시간이 흘러 어느새 모델이 되어있다. 하지만 영화는 마치 보호라도 하듯 그를 그저 '사귀기에 위험한' 남자라고 설명하고 만다. 바쿠를 연기한 히가시데 마사히로는 아사코가 도쿄에서 만나는 료헤이도 연기하는데, 이 영화에서 1인2역은 극적인 툴을 넘어 은유와 상징 위에 자리한다. 한 사람 안에 두 명의 인물. 오묘하고도 이질적인 풍경을 '아사코'는 영화의 틀을 빌려 '보이지 않는 현실'처럼, 가장 '리얼하게' 그려낸다. 흔히 호러 영화의 도플갱어가 여기에선 내 안에 숨어있는 또 다른 나, 심연의 '나'로 그려진다. 위화감에 내 안의 내가 멀어지려하는 찰나의 아름다움이 '아사코'엔 가장 보편적인 일상 곳곳, 강물처럼 흘러간다. 막연하고 광대한 세상과 사람, 그리고 사랑. 돌연 사라진 아사코 이후 '전혀 모르게됐어. 다시 원점이야'라고 말하는 료헤이의 대사 속엔, 내가 아닌 나, 료헤이가 아닌 바쿠가 있다.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곳의 풍경', 그리고 내 안의 타자. 나는 울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세상은 모르는 것 투성이다. 갑작스런 지진에 공연이 중지되고, 앞자리의 누군가는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향한다. 전차는 모두 발이 묶이고, 여자는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린다. 그러고보면 세상에 갑작스럽지 않은 것은 없어 사랑도, 이별도 알 수 없이 왔다 알 수 없이 떠나간다. 바쿠의 친구 오카자키(와타나베 타이치)가 평상에서 내려오다 넘어진 건 가벼운 찰과상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흘러 그는 병상에 누워 눈을 깜박이며 의사를 전달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모든 게 이유가 없는 건 아니지만 상실의 구멍을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아사코'는 그 텅 빈 구멍의 생경한 풍경을 바라본다. 오프닝의 기묘한 폭죽 장면과 'Self & Others'란 이름의 전시, 그리고 아사코를 연기한 카라타 에리카의 여기가 아닌 듯 울리는 목소리와 료헤이와 바쿠라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 세상이 모르는 것 투성이인만큼 사람도 모르는 것 가득이라 오카자키의 엄마는 고작 아침 한 끼를 위해 오사카에서 신칸센으로 도쿄 아사가야(阿佐ヶ谷)까지 깄다오고, 하지만 정작 결혼한 사람은 다른 남자이다. 료헤이는 떨어진 공연의 포스터를 아무렇지 않게 바로 잡고, 거리에 앉아 눈물을 흘리는 여자에게 비슷하게 손수건을 건넨다. 옆으로 누워버린 '야생 오리(野鴨)'란 타이틀과, '괜찮으세요?'란 말에 이어지는 '고맙습니다.' 어쩌면 내가 아닌 나의 말과 너가 아닌 너의 행위. 나는 내 안의 나를 만나고, 너는 와 너 안의 너와 마주한다. 모든 게 산산조각난 재해의 풍경 속에, 모든 게 뒤엉켜 알 수 없는 칠흙같은 시간 곁에, '아사코'는 '내 안의 타자'를 드러낸다. 왜인지 사랑에 빠지고, 알 수 없이 이별을 하고, 하염없이 무너지고, 어떻게든 일어났던 나의 시간과 타자의 시간들. 결코 바다를 잊지 못하는 강물의 이야기에, 나는 나의 풍경을 떠올렸다.

바쿠와 료헤이, 오사카와 도쿄. 두 덩어리의 이야기가 수평을 그리듯 흘러가는 영화인 듯 싶지만, '아사코'는 사실 바다와 강, 강과 바다, 결코 수평을 그릴 수 없는, 지금 여기, 바다 이후 강물같은 영화다. 갑작스레 찾아온 바쿠의 손을 잡고, 료헤이와의 삶을 포기하고, 선택 아닌 선택을 하고, 센다이(仙台) 초입에서 다시 선택을 포기하고, 그녀 안의 '바쿠'는 바다를 보고싶지만, 방파제에 가려 바다는 보이지 않고, 멀리 떠나가는 '바쿠'를 뒤로 아사코는 눈 앞의 바다를 바라본다. 대재난 이후 아무 일 없었던 듯 씩씩하고 평범하게 흘러가던 일상의 여기가 아닌, 알 수 없는 물결이 세차게 몰아치는 바다를 바라본다. 실제 감독의 경험을 그대로 옮겨왔다는 이 장면은 무력하게 아름답고, 내 안의 내가 아닌 나, 타자가 살았던 시간처럼 웅장하게 애절하다. 바다와 하늘이 뒤섞이는 듯한,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 이후, 아사코는 하염없이 방파제 위를 걷고, 하염없이 고양이를 찾고, 하염없이 료혜이를 쫓아 달린다. 이곳의 프레임을 벗어나, 바쿠와의 프레임을 벗어나, 내 안의 타자로부터 멀리멀리, 료헤이를 향해 달려간다. 아무렇지 않게 손수건을 내밀고, 아무렇지 않게 마사지를 하고, 아무렇지 않게 '좋아해'라 말하고, 아무렇지 않게 수박을 먹고, 빨래를 널고, 그저 그런 하루를 살았던 오사카, 그리고 도쿄 찻집 '우니미라클'의 프레임을 향해 달린다. 나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알 수 없이 울고 싶었고, 오사카의 새로운 집 창가에서 잡 앞에 흐르는 물줄기를 보며 료헤이는 '더럽다'고 말하고, 아사코는 '그래도 아름다워'라 답한다. 입원과 퇴사 이후 알 수 없이 아팠던 텅 빈 2년 여의 시간, 내게 찾아왔던 대재난의 사건사고를 뒤로 나는 조금 '그래도 아름다워'라 말하고 싶어졌다. 나는 가끔 나를 보고 싶어 눈을 감는다. 

by ABYSS | 2019/03/17 18:24 | Ein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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