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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no pain, no gain', 그런 다짐. 야마다 타카유키의 35.


1982, 별 다를 거 없고, 지난 해 소설 인기 덕에 여기저기서 회자가 되었지만, 나이를 한 해, 한 해 쌓아가며 숫자 안에 담긴 날들을 떠올린다. 지금도 돌아보면 주책맞게도 스물 언저리의 시간이 바로 옆에 스쳐가는 듯 한데, 가끔 길을 걷다 '아저씨'라 부르는 소리에, 시간은 돌연 내게만 쌓여있다. 오래 전 새벽 라디오를 듣다 야마다 타카유키가 자신의 신작을 '토호 전국 6관'이라 얘기할 때, 외롭지만 어딘가 편안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나의 어제를 건드렸는지 모른다. '워터보이즈'의 풋풋함,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애절함, '전차남' 속 앞머리에 가리어진 서툼과 4호선을 타고 대학로에 내려 수업을 듣고 영화를 보곤했던 시간들. 그가 TV와 스크린을 물들이던 시간은 이미 많이 흘러 그의 이름, '야마다 타카유키'는 조금 오래된 이름이 되었버렸지만, 한철 청춘이었던 그의 지금이 나는 마치 내것인양 애틋하다. 고작 1년이거나 2년, 아니면 10년. 시간에 묻어나는 무언가가 있다면 아마도 이런 걸지 모르겠다. 야마다 타카유키가 청춘의 자리에서 돌아설 때, 세상은 그를 바라보지 않았지만, 오래 전 세상의 중심이었던 그의 시간은 지금 조금 다른 자리에서 중심을 그린다. 시간은 여지없이 흐르고, 세월은 모두에게 공평할 때, 야마다 타카유키는 이곳에 존재하는 유일한 변수가 사람임을 보여준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길, 성공이나 성취로 설명될 수 없는 시간. 야마다는 2017년 이후 두 편의 드라마와 한 편의 영화 제작에 크레딧을 올렸다. 시간은 돌아볼 때 의미를 갖기도 하고, 산다는 건 그런 순간들과 마주하는 이름 없는 날들의 기록이다. 야마다 타카유키의 영화를 보았다.

도쿄에 갈 때면 상영 중인 영화들을 체크한다. 좋아하는 건 국도 246길변의 '이미지 포럼'이거나, 시부야 분카무라 뒷골목의 '유로 스페이스'이지만, 신주쿠 Ward9엔 실내 흡연실이 있고, 길 하나 사이 '피카데리'엔, 로비를 채우는 사람들의 그라데이션이 몹시 좋다. 최근엔 키치죠지 역 인근에 새로운 극장이 생겼지만, 야마다 타카유키의 영화는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다. 촘촘한 일정 사이 애써 빈 칸을 남겨두고, 시부야를 걷고, 록뽄기를 걷고, 그렇게 또 나이를 먹는다. 'no pain, no gain'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다가온 영화다.이 영화의 정보는 아직도 위키피디아에 올라오지 않았고, 네이버 검색에는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야마다 타카유키가 종종 TV에 나와 보여줬던 시간들, 이전의 길과는 사뭇 다른 곳에 흘러가는 시간들이 내게 이 영화를 어렴풋이  설명했다. '아픔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는 진부한 제목, 흔해빠진 문장의 흔해빠진 날들. 하지만 그 속에 흐릿해지고 사라지는 의미들. 야마다는 1983년 태어나 서른 일곱이 되었고, 나는 올해로 서른 여덟 번째 여름을 맞는다. 이 곳에 완전히 새로운 내일은 찾아오지 않지만, 쌓여온 시간이 만들어내는 샛길이 이미 어딘가에 시작되고 있다. 'no pain, no gain'은 배우가 아닌 프로듀서 야마다 타카유키의 이야기이고, 그보다 서른 중턱에 오르는 한 남자의 기록이다. 100여 개의 작품과 인물을 지나, 다시 자신으로 돌아가는 여정은 왜인지 눈물을 닮아있었다. 

'no pain, no gain'이란 제목을 쓰는 영화에서 상영 시간 122분을 채우는 건 대부분 고통, pain이다. 정해진 길이 아닌 자신이고 싶어 걸어가는 길에 어느 하나 수월한 건 없고, 청춘, 스타란 이름으로 쓰여진 길의 자욱을 걷어내는 건 버겁기만 하다. 야마다는 가깝게는 매니져, 멀게는 알 수 없는 수 많은 사람들이 얽혀 그려내는 길 위에서 위화감과 정면으로 부딪힌다. 스타이기를 버리고, 만들어진 이미지를 지워내고, 지금까지와는 정반대의 자리, 어쩌면 보이지 않았던 백스테이지에 들어가 자신이 살았던 날들을 새삼 살아간다. 백 여 개에 가까운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도 언제 한 번 온전한 자신일 수 없는 배우란 자리의 묘하고도 애절한 초상을 그리기 시작한다. 영화 '데이 앤드 나이트(デイアンドナイト)'의 제작비를 위해 쿄토까지 찾아간 자리에서 투자자는 '야마다 타카유키란 이름에 돈을 낼 수는 있지만, 각본에는 투자할 수 없다'고 얘기하고, 그만큼 현실을 이용하는 건 지금, 여기 남아있는 어찌할 수 없는 과거의 잔상이다. 소위 '쉬운 길을 가지 않는다'는 어쩌면 현실 너머의 길을 야마다는 주저하지 않는다. 평소 동경했던 배우 안도 마사노부를 만나 마치 오디션을 보는 신인 배우처럼 각본을 전하고, 여자 주인공을 캐스팅하는 순간, 예고없는 눈물을 떨군다. 내가 아닌 나란 중심에서 벗어나 나로부터 멀리 벗어난 어느 곳의 나로부터. '즐겁기 위해  편한 길을 택하진 않아(楽しむために、楽をしない).' 영화의 제목은 현장에서 야마다가 수도없이 뱉어냈던 순간순간의 다짐에서 가져왔다.

영화가 공개된 날, 야마다 타카유키는 기자 회견에서 '관계자 분들은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신인 배우의 매니저 분들은 배우에게 절대 이 영화를 보지 말라고 얘기해주세요'라 말했다. 영화의 완성을 알리고, 선전을 하기 위한 자리에서 야마다는 아마 전혀 다른 곳을 바라봤다. 세상엔 많은 사람이 알고 누려야 좋은 시간도 있지만, 모른척하고, 눈을 징끗 감고 지나쳐야 하는 길목도 자리한다. 내가 나로 살아가는 것, 그렇게 돈을 벌고 밥을 먹고 하루를 사는 것.  'no pain, no gain'은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는 흔한 얘기가 되어버렸지만, 그 말이 품고 있는 굴곡의 삶은 종종 현실 바깥 너머에 있다. 어제를 부정해야 하는 날, 어제를 지울 수 없는 날, 그럼에도 다가오는 오늘과 남아있는 어제의 자리는 수많은 다짐을 필요로 하는 일이고, 그만큼 이곳에 자리하기 힘든 삶의 근원적 물음이다. 야마다 타카유키의 시간을 급선회 시킨 건 어쩌면 2006년 갑작스런 결혼과 아이의 출산 때문일 수도 있고, 배우란 자리가 품고있는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향한 물음표는 야마다 타카유키의 지금을 그려낸다.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선 나는, 여전히 서른 여덟의 어느 무렵이고, 아픔 이후 찾아오는 결실의 시간은 아직 막연하기만 하지만, no pain, no gain, 이 말은 다짐형의 문장이다. 
by ABYSS | 2019/05/16 16:25 | Ein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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