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5월 26일
봉 감독의 축하스런 아침, 어느 한 켠에

이상한 여름 감기에 밤새 시달리다 일어나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식을 듣는다. 여기저기 쏟아지는 축하 메시지에 몇 년 전 쪼그라들었던 비 오던 날의 아침이 떠오르는 걸 보니, 어제를 꽤나 벗어나지 못했다. 패션지 화보라면 으레 있는 풍경이지만, 샤넬이 제안한 틸다 스윈턴 화보 현장에 오지 않는 봉 감독님을 기다리며 애간장을 태웠다. 한 손에 핸드폰을 쥐고, 비오는 성북동 한옥 정원을 걷고 또 걷고. 할 수 있는 게 그 것밖에 없어 그랬다. 틸다 스윈턴과 봉준호, 그 많던 스태프가 자리를 뜬 묘하게 텅 빈 공간. 영어는 더욱더 나오지 않았고, 봉 감독님의 배려는 오히려 부끄러웠고, 배에선 소리가 진동하는데도 권하는 샌드위치를 한 입도 먹지 못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말들은 쌓여 비가 그친 길을 걸어 아직 있을지 모르겠지만 '쵸콜렛 카페'에 누가 볼까 얼른 숨었다. 이미 몇 년이나 지난 기억, 고작 단 하루의 비오는 날이 나는 아직도 부끄럽다. '서스페리아'를 보던 날, 한국영화의 기념이란 불리는 오늘 눈을 뜬 아침,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수 많은 그와 그의 날들 어딘가에서, 나는 아마도 계속, 부끄럽고, 창피할 예정이다. 한 영화의 힘이란
# by | 2019/05/26 15:50 | Ein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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