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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실종된 518의 어떤 추적, '김군'

시간은 하루하루 쌓여가는 것만 같지만, 어떤 날은 어김없이 오래 날을 돌아보게 한다.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4 시간은 잠시 5 어느 날을 바라고, 5월이 오는 즈음이면 광주가 그립다. 아무런 이유없이 바다 속에서 이별을 고해야 했던 시간들, 치유되지 못한 아픔으로 40 어느 광장에서 멈춰버린 시간들. 광주의 5 18일을 그린 작품은 이미 여럿 있었고, 번의 날이 지나갔지만, 가끔은 잊지 말아야 하는 어제가 있다. '김군'이란 제목의 영화를 처음 접했을 어떤 작품인지 쉽게 떠올릴 없었고, 어제는 잔인하게, 그렇게 묻혀간다. 마흔  번째의 5 18일을 하루 앞둔 저녁, '김군' 보았다. 거친 입자의 흑백 사진, 지난 시간으로 발걸음을 옮기듯 조심스레 인물을 비춰가는 영화는 문득 돌아본 거리에 고여있는 아픔처럼 이곳에 자리하지 못한다. 걸어온 시간이 외면한 시간은 차곡차곡 쌓여 하염없는 어제가 되었다. 시종일관 묵묵하게 과거를 추적하는 영화에 과거를 탓하는 격정의 분노는 없고, 잊혀진 기억을 추모하는 타인의 눈물이 없다. '김군' 선전과 선동을 위해 시간을 소모하지 않는다. 찢어지고 밟혀나간 상처의 시간 곁에 아무렇지 않게 흘러간 40년이 하루의 오늘을 더할 뿐이다. 오늘은 결코 어제를 돌아보지 않고, 영화는 현실 속에 차게 식어버린 지난 날의 외롭고, 쓸쓸한 초상에 가깝다. 나는 이처럼 차가운 어제의 영화를 적이 별로 없고, '김군' 지금 얘기할 있는 가장 솔직한 시선, 지금 여기 존재하는 가장 현실적인 어제이다. 왜곡과 부정, 투쟁과 싸움의 현실을 뒤로하고, '김군' 과거와 함께 살아갈 있는 시간의 오늘을 그려낸다. 영화가 태어나기까지 무려 4년의 시간이 흘렀다.


영화는 '김군' 찾아 쫓는다. 행방불명된 누군가의 행적을 더듬 , 실종으로 시작되는 서스펜스의 미로같은 뿌연 길을 헤집듯, 85분의 시간을 모두 '김군' 찾아내기 위해 애쓴다. 518이란 거대한 역사의 비극을 다룬 이야기의 제목이 달랑 사람의 () 것도 의아하지만, '김군' 종내의 518 영화들과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이름을 잃고 ()만이 부유하는 현실의 시간 속을, 영화는 우직하게 걸어간다. 결말을 위해 치닫는 나아감의 시간 대신, 뒤를 돌아보며 지나감을 만회하려는 미안함이 오늘을 미룬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518이란 사건에 남아있는 헛점이 드러날 수록, '김군' 바라보는 ' ' 지금 이곳에 자리하는 518 현실에 가장 가깝다. 역사를 부정하려는 이들의 선동이 몰아닥친 시대에 영화는 칸을 칸으로 바라보려 노력한다. 잘못 쓰여진 어제를 지우고, 잃어버린 어제를 드러내고, 최선의 뒷걸음으로 1980 5월을 얘기한다. 4년이란 제작 기간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강상우 감독은 신중하고, 신중하다.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앞이 아닌 주변을 둘러보고, 그만큼 장면은 더디게 흘러간다. 피해자 사이의 서로 다른 어제의 충돌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세월이 지워버린 기억, 반쪽도 남아있지 않는 기억, 잘려나가고 찢겨진 기억, 서로와 서로가 어긋나는, 인간이란 육체에서 퇴화된 지금의 기억을 영화는 가장 최선의 오늘이 되어 바라본다. 그러니까 아픔을 이야기하는 영화가 빠지기 쉬운 억울함에 대한 호소를 피해가며, '김군' 1980년의 518 아닌, 지금 2019년의 518 자리한다. 그렇게 '김군' 다시 시작하는 영화다.


김군을 찾아가는 영화의 여정은 묻혀졌던 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복원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통성명은 하지 않더라도 서로 끼니를 챙겨주고, 무기를 함께 들어주고, 같은 자리 같은 시간 같은 곳을 바라보며 목청을 높였던 이들은 '518', '민주화 운동', 학살의 피해자 개인이 소거된 대중의 역사로 설명되지만, 영화는 양동남, 이창성, 이강갑, 오기철, 차종수, 그리고 주먹밥을 만들어 사방을 종횡무진 했던 주옥 사람, 사람 개인의 시간에 귀를 기울인다. 기록의 역사가 간과하는 작고 치밀한 시간의 조각과 조각들이 '김군'에선 서로가 서로에게 반응하는 살아있는 시간의 역사가 된다. 극장에 모여 30 전의 자신과 마주하는 명의 518 시민군을 비추는 영화의 엔딩은, 야속한 세월 속에 등돌렸던 상처나고 묻은 어제와 상봉하는 순간이다. 동시에 오랜 시간 방치됐던 ' '과의 조우이다. 명이 백명을 죽이고, 명이 백명에 살해당하고, 냄새가 도시 전체를 삼켜버린 시간은 여전히 뒤틀린 기억으로 남아있고, 왜곡된 그림으로 전시된다. 하지만 어제는 어떻게든 오늘로 이어져야 하고, 누군가는 거짓된 시간에서 당당하게, 다른 누군가는 절름발이 신세로 40 넘는 시간을 휘청대고 있다. 타인의 시간을 부정할 있지만, 나의 어제를 모른 수는, 아마도 없다. 영화는 타인에게 무참히 짖밟힌 시간에서, 명의 사람으로 받아들일 밖에 없는 '어제 이후 오늘' 향해있다. 이제야 518 소리' 품은 오늘이 도착했다.

by ABYSS | 2019/05/26 21:02 | Publicité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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