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7월 03일
도쿄가 다시 도쿄로 태어나는 날들의 기록 (Ⅰ)

록뽄기의 ‘아오야마 북 센터’를 기억한다. 도쿄이지만 도쿄가 아닌 듯한 외곽의 미타카(三鷹), 너무나 알려지지 않아 ‘어디에 사느냐’고 물으면 ‘키치죠지 쪽’이라 얼버무렸던 그 곳에 살던 시절, 도쿄국제영화제 취재 차 도쿄에 온 선배를 그곳에서 기다렸다. 일반 대형 서점과 달리 들어서자마자 계단이 보이고, 비교적 조각조각 나뉘어진 책장이 서점이라기 보다 책방의 분위기를 품은 그곳은 아침 5시까지 영업을 하는 꽤나 독특한 서점이었다. 도쿄를 중심으로 일본 곳곳에 10여 개의 지점을 운영하면서도 마이너한 책들을 메인 선반에 진열하고, 늦은 밤 거리에 불빛을 비추며 늦은 귀갓길의 샐러리맨들을 기다리던 ‘아오야마 북 센터 록뽄기’가 지난 여름, 38년의 문을 닫았다. 동네가 가진 특유의 세렴됨에 자주 찾지는 않았지만, ‘아오야마 북 센터’가 남긴 빈자리는 이상하게 오래갔다. 근래에 도쿄에선 자꾸만 이별 소식이 들려온다. 2020년 올림픽을 준비하는 새로움이 동반하는 어쩔 수 없는 헤어짐일 수 있지만, 내게 지금 도쿄가 보여주는 이별은 그저 마지막을 고하는 이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시모키타자와 상점가에 나붙은 ‘87년간 감사했습니다’란 문구 속엔 분명 아직 떠나가지 않은 날들의 물컹한 울림이 스며있다. 나날이 높아지는 스카이라인, 연일 들려오는 망치질 소리, 생경하게 들려오는 이별과 쓸쓸해진 거리. 하지만 변화의 하루하루를 어제처럼 살아가는 사람들과 거리에서, 나는 도쿄에 남아있는 어제의 흔적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도쿄는 변화한다. 도쿄는 변하지 않는다. 도쿄는 이상하게 이 모순의 두 문장으로 설명되는 도시다. 전통과 노포의 거리 한켠에 최첨단 유행과 트렌드가 매일같이 갱신된다. 100년이 넘는 역사의 긴자 상점가는 H&M이 일본 진출을 염두하고 첫번째로 고른 거리이고, 메이지(明治)부터 헤세이(平成)까지 네 번의 연호를 관통한 허름한 역사(駅舎) 하라쥬쿠는 구르메 테이스팅 마켓으로 가장 먼저 손꼽히는 곳이다. 도쿄엔 변화를 변화가 아닌 어제, 혹은 오늘, 아니면 내일로 바라보는 시간이 흘러간다. ‘소니’가 50년의 역사를 매듭지으며 ‘소니 빌딩’ 자리에 지은 ‘긴자 소니 파크’는 지하 4층의 공원 구조를 하고있고, 이 공원은 2022년 ‘소니 빌딩’이 완공되기까지 기간 한정으로 운영된다. 그야말로 어제와 내일을 잇는 가교로서의 공간. 도쿄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교차하고, 서로 다른 시간이 도쿄란 이름으로 공존한다. 도쿄에 도착한 헤세(平成)의 마지막 날, NHK는 영화 ‘백 투더 퓨처’를 방영했다. 지난 6월 폐점한 록뽄기 ‘아오야마 북 센터’ 자리엔 ‘분끼츠(文喫)’란 이름의 책방이 오픈했고, 영화관 ‘시네마 라이즈’가 폐관을 고한 2010년 이후 시부야 스페인자카 길목은 라이브 하우스 ‘WWW’가 이어가고 있다. ‘파친코나 게임센터가 들어서면 뭔가 슬플 것 같았어요.(’분끼츠’ 부점장 이즈미 하야시) 지하에 남아있는 어제의 시간들, 영화관의 단사(段差)를 간직한 독특한 공연장. 어제를 기억하며 오늘을 만들 때, 변화는 왜인지 내일을 닮아있다.
단순히 이야기하면, 도쿄는 지금 격심한 변화 속에 있다. 시부야 주변은 365일 공사중이고, 하라쥬쿠 역사(駅舎)는 몇 년 째 완성된 된 길을 걸어본 적이 없고, 드라마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로 유명해진 IWGP는 어느새 공사판에, 동서가 확연히 구분됐던 신주쿠는 카부키쵸(歌舞伎町)를 비롯 동쪽의 대대적 개발로 전혀 다른 내일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해 오픈한 시부야 역 인근 고층 빌딩 이름이 ‘시부야 스트림’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 맞은 편 스크램블 교차로의 ‘스크램블’이 떠올라 도시 속 사람과 사람, 너와 나의 자리가 느껴졌다. 서로 다른 세 개의 빌딩을 하나로 재개발해 완성된 마루노우치(丸の内)의 ‘니쥬바시 스퀘어(二重橋スクエア)’는 모든 점포가 노면을 바라보게 디자인돼 건물 하나하나에 담긴 거리의 풍경을 이어가고, 시부야에서 다이칸야마 방향으로 세워진 ‘시부야 브릿지’는 이름 그대로 본래 도보로 이동할 수 있었던 시부야 인근 지역을 이어주는 가교 빌딩 역할을 한다. 새로움과 변화로 물드는 지금의 도쿄이지만, 그곳엔 어제를 외면하지 않는 오늘이 있다. 지역이 쌓아온 오래된 내일이 있다. 컬쳐 패션 브랜드 Beams가 도쿄의 목욕탕 550곳과 진행한 콜라보레이션엔 어김없이 어마어마한 갭이 존재하지만, 그만큼의 위화감을 아우르는 품을 도쿄는 갖고있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 날 밤, 나는 우리 집 강아지를 위해 10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신주쿠의 애견숍 ‘Pet Paradise’에서 노란색 탱크탑을 하나 샀다.
*싱글즈 6월호에 전편이 실려있습니다.
つづく...
# by | 2019/07/03 13:05 | Travelog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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