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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는 은연중 한 걸음 다가오는 듯 싶지만, 갑자기 멀리 달아나기도 한다. 일본의 멀티 플렉스 영화관 ‘도호 시네마’가 입장료를 1900엔으로 100엔 올린다는 뉴스를 보았을 때, 지난 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을 보았던 시부야 ‘도호 시네마’가 떠올랐다. 좁은 로비와 많은 사람들, 앉을 자리 하나 없는 곳에 팝콘을 파는 카운터는 화려한 네온을 빛내고, 내가 느낀 건 결국 돈으로 치환되는 영화와 사람 하나하나의 시간이었다. 그곳은 매달 14일 ‘도호 데이’라 이름을 붙여 조금 싸게 영화를 볼 수 있지만, 나는 두 시간 남짓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 시부야엔 ‘분카무라’ 뒷쪽으로 ‘유로스페이스’가 있고, 조금 걸어 국도 246길변에 ‘이미지 포럼’이 있다. 두 곳 모두 아트 계열의 영화를 상영하는 미니시어터다. 도시에서 기호를 지킨다는 건 어쩌면 자신에게 어울리는 거리를 만나는 일인지 모르겠다. 최근 키치죠지에 멀티 플렉스와 미니 시어터, 그 중간 즈음인 ‘미니 콤플렉스’ 형태의 극장이 생겨났다. 갤러리와 작은 숍이 있고, 맥주와 크래프트 콜라를 팔고, 상시적으로 전시를 하는 다용도 목적의 영화관 ‘Uplink 키치죠지’는 1995년 오픈한 ‘Uplink 시부야’의 2호점이자, 연장선이다. 아사이 타카시 대표는 ‘시부야 3관, 키치죠지 5관을 하나의 큰 틀 안에서 생각한다’고 말한다. 얼마 되지 않은 상영관에서, 상영 횟수를 줄이고, 작품 수를 늘이는 Uplink의 방식은 다양성을 품어내는 태도, 그 자체의 구현이다. 키치죠지 Uplink는 가장 적은 29석부터 가장 많은 98석 까지 모두 다섯 개의 스크린을 갖고있고, 각각의 스크린에 서로 다른 이름과 콘셉트를 붙였다. 키치죠지 점에서 일하는 최하늘은 ‘우드를 주재료로 사용한 ‘우드 관’은 사운드를 중시해 음향을 즐길 수 있는 스크린’이라고 설명했다. 영화에서 퍼져나가는 다양한 갈래의 영화적 시간들이 그곳에 있다. 5월 초 그곳에선 퀸에 관한 다큐멘터리 ‘퀸 히스토리 1973~80’이 상영되고 있었고, 또 다른 상영작 ‘빌 에반스 타임 리멤버드’ 관련 전시도 진행중이었다. 관내에 흐르는 음악은 데릭 저먼 감독 영화의 음악 감독으로 알려진 사이먼 피셔 터너의 오리지널 뮤직, 로비 천장을 장식하는 미러볼은 시부야 Uplink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클럽 Womb의 기증품이다. ‘콤플렉스’의 풍경은 아마도 이런 그림이다. 지금 도쿄를 수식하는 세 개의 키워드는 다양성과 이어짐, 그리고 커뮤니티이다. 얼마 전 부터 시부야는 ‘차이를 힘으로 바꾼다’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고, 호텔인지 책방인지, 책방인지 카페인지, 영화관인지 갤러리인지 경계가 불분명한 그라데이션과 심리스(Seam-less)의 변화는 다양성의 공존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영화관이 아닌 영화가 있는 자리, 책방이 아닌 책이 놓인 장소, 카페가 아닌 커피와 함께 하는 시간. 무엇이라 규정하지 않는 공간이 새로움의 자리를 남겨둔다. ‘왕도로 책을 바라보는 출판 업계에서 저는 미움 받는 사람이에요. 책이라고 그 안에서만 사고하는 것보다 열어놓고 바라보고 만들어가는 게 의미있게 느껴집니다.’ 소메야 타쿠로가 디렉팅한 ‘분끼츠’에 새로운 책방의 내일은 없지만 잊고있던 책방의 내일이 존재한다. 선서실(選書室), 연구실(研究室), 킷사실(喫茶室), 전시실(展示室), 열람실(閲覧室) 등 다섯 개로 나뉘어진 공간은 독서의 다양한 방식을 제안하고, 소파는 물론 누워서 뒹굴 수 있는 형태의 좌석까지 마련된 건 책과의 시간을 일상의 다양한 프레임 안에서 소화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도쿄의 공간은 어김없이 사람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일상의 리듬으로 변화하고 있다. 유료 서점이지만 입구부터 잡지가 진열된 선반과 전시실은 무료로 공개되고, 보통의 책방처럼 길을 걷다 책만을 구입해 돌아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 어찌할 수 없이 변화하는 시대의 풍경 속에, 도쿄는 변화하지 않는 본래의 모습을 돌아보며 변화의 방향을 만들어낸다. 2018년 여름, 38년의 문을 닫았던 ‘아오야마 북 센터’ 록뽄기에 정해진 내일은 없겠지만, 나는 그곳에서 책과 마주했던 오래 전 기억을 돌아봤다. ‘분끼츠’란 이름을 처음 보고 읽지 못해 한참을 헤맸다. 자판에 입력을 해도 자동으로 맞는 한자가 떠오르지 않았다. 일본어는 종종 아는 한자임에도 읽지를 못해 곤란해질 때가 있는데, 그만큼 알지 못했던 내일을 품고있는 게 일본이다. ‘분끼츠’는 오랜 역사를 가진 일본의 찻집 ‘킷싸뗑’을 의식했다. 하야시라이스, 나폴리탄 등 ‘킷싸실’에서 제공되는 메뉴들만 봐도, 책이란 길고 긴 시간 속 ‘어제와 오늘이 만들어낸 그라데이션의 책방’이 떠오른다. ‘책은 혼자서 읽는다’는 개념을 지우고, ‘분끼츠’는 이미 존재했지만, 잊고있던 책과의 시간을 공간으로 만들어냈다. 소메야 타쿠로는 ‘개인적으로 킷싸뗑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했고, 최근 도쿄에선 킷사뗑을 찾는 젊은 사람들이 늘어나고있다. ‘킷사뗑은 공원과 닮은 부분이 있어요. 무엇을 해도 괜찮다는. 노트북 작업을 하든, 책을 읽든, 회의를 하든. 그런 다양성을 만들고 싶었고, 하나에 제한되어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 안엔 입장료를 1500엔으로 지정하며 ‘책방’을 ‘비일상’의 자리로 데려오려는 시도가 있고, 1970년대부터 시작된 또 하나의 책의 역사, ‘망가킷싸(漫画喫茶)’의 요소를 담아낸 부분 역시 자리한다. 진보쵸의 ‘망가 아트 호텔’을 만든 미코시바 마사요시가 만화를 아트로 바라보기 위해 오로지 숙박 위주의 폐쇄적인 공간을 고집한 것 역시 책을, 독서를, 책과의 시간을, 보다 뚜렷하게, 하나의 고유한 자리로 드러내기 위함이다. 다양성은 모두가 함께 공존하는 풍경이지만, 실은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그렇게 수많은 혼자가 나란히하는, 다소의 소외와 고독을 동반하는 풍경이기도 하다.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를 지나며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 외롭지만 왜인지 그 무드에 취하곤 하는 거리는, 사실 누구도 홀로 두지 않는다. つづく *'싱글즈' 6월호에 실린 글 중 일부입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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