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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거대한 일상의 한조각, 2019 도쿄
#01_인터뷰라는 게, 사실 산다는 게 예상 밖의 길을 걷는 일이지만, 막상 그 곳에서 마주하는 예상못한 그림은 허둥대기 십상이다. 어떤 예고편. 충분할 줄 알았던 시간에 진땀을 빼며 시계를 보았고, 마주한 시간을 느긋이 바라보지 못한 채 열흘이 흘렀나 보다. 돌아와 바라보면 그렇게나 촘촘하게 굴러갔던 일들이 이제야 자리를 찾아간다. 사실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내 안의 무언가를 거쳐 밖으로 드러낸다는 건, 짜여진 시간표로 그려질 그림이 아니건만, 알면서도 얄팍한 계획에 기대어 걷고 또 걷는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다름을 바라본다는 건 일상 최대의 변수이거늘, 항상 늘 서툴었고, 나를 버리지 못한 채 걷고 또 걸었다. 그래도 그곳에 있고싶다 생각하고, 내일의 한 뼘을 빌려 바보처럼 마음을 정리한다. 여행의 진통인지, 서른 후반에 찾아온 찬 계절의 바람인지. 그저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어제와 오늘 사이 어딘가에 남아있다.

#02_10일, 240시간. 꼼꼼히 차곡차곡 채워넣으려 해도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은 퍼즐 맞추는 일이 아니고, 시간이 아무리 적다고 하더라도 피로가 노동에 비례해 쌓이는 것도 아니다. 매번매번 애초 그렸던 그림이 무색해졌고, 같은 도쿄라 해도 편도 40km를 반복해 취재를 하러 갔던 건 이번이 처음이다. 뙤약볕에 밭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왜인지 같은 주소를 쓰는 탓에 괜한 2층 아저씨에게 민폐를 끼치고, 점심 12시면 칼같이 식사를 하는 이유로 의도치 않게 처음보는 부자와 한 상에 앉아 밥을 먹고, 기자 생활 10여 년만에 처음으로 '보수'란 이름으로 봉투에 5000엔 짜리 지폐를 고이 챙기기도 했다. 그래도 지난 번보다는 나아져 새벽 5시 혹은 6시쯤 일어나 담배를 한 대 물고, 호텔 앞에서 찬 바람을 맞으면, 그게 그렇게 평범하고 좋을 수가 없었다. 하루가 끝나기도 전에 내일이 기다리고 있어 마음을 추스릴 새도 없이 열흘을 보냈나 보다. 가방엔 농장에서 받은 생전 처음 보는 호박과 감자가, 니가타 현에서 왔다는 니혼슈 한 병이, 100여 년에 이르는 역사를 짊어진 노트 두 권이, 어떤 우연인지 그 노트에 새겨진 어느 개그맨의 사인이 여기저기 쌓여있다. 감사의 메일을 보낼 생각만 해도 어깨가 지끈거리지만, 감사는 몸이 아닌 마음으로 전달하는 것이고, 몸을 되돌리는데 하루 꼬박이 걸렸지만, 와중에 꼭 맞는 팬츠 하나와 타카히로 미야시타의 셔츠 한벌은 건졌다. 사람은 어떻게든 사는 법. 그래봤자 나는 거기서 거기인 것. 열흘을 죽도로 일하고도 또 하루를 사는 법. 여전히 아쉬움과 미안함, 고마움이 뒤섞여 마음은 여기와 저기 어디 즈음인 듯 싶지만, 그 불완전한 나를 이제는 오래 바라보고 싶다. 이케멘이 유독 많았던 도쿄, 여름이 아직 남아있었던 도쿄. 나는 그저 또 나였고, 도쿄는 여전히 도쿄였던 그곳. 아쉬움이 남아있는 빈칸을 왜 하필 이제는 알 것 같다.


#03_시차도 없는데, 이미 열흘이나 지났는데, 타임랙이라도 걸린 듯 내 몸이 내 몸같지 않고, 내 맘이 내 맘같지 않다. 고작 며칠 사이에 올해 가장 거세다는 태풍 소식을 염치없이 바다 건너 바라보며 오만가지 감정은 오락가락 정신없는데 차라리 그런 핑계라도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게으른 며칠째다. 뒤늦게 트위터에 올라온 곳곳의 무사한 소식들을 접하고, 도쿄는 오늘 티 한점 없는 파란 하늘에 29도였다 한다. 고작 내가 뭐라고 걱정을 하냐 싶지만, 오래 전 도쿄에서 살다 돌아왔을 때도 비슷한 우연이 있었고, 어쩌면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간다는 건 생각보다 거대한 일상일지 모르겠다. 가끔 여기가 아닌 곳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세상은 조금 내 편이 되어줄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 시부야 극장에서 가져온 이케마츠 소스케 영화 포스터를 방 한 쪽에 붙여놓고, 끝나지 않은 마감을 한 글자 더 긁적인다. 負けてたまるか。주말이 끝이났다.

by ABYSS | 2019/10/15 07:48 | Ein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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