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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가장 촌스러운 눈물, '미야모토가 너에게'

10월 2일 저녁 선로에 하나의 시간이 추락했다. 아마도 수 백번은 지나왔던 그 곳. 신주쿠 카부키쵸의 번잡한 골목을 빠져나와 역으로 걸어가는 나는 또 하나의 버리고 싶은 '나'를 마주한 채였다. 길어봤자 5분이 넘지 않는 열차는 아직 오지 않았고 이어폰을 끼고 있던 탓에 한참동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미 수 십분은 흘러버린 시간과 전광판에 박제된 듯 묶여 있던 시간. 우울은 세상을 가득 채우고도 넘쳐나지만, 나는 점점 내가 가진 것이 내 것이 아닌 듯 느껴진다. 5시를 조금 넘은 시간과 6시가 되어가는 지금, 시간이 갇혀있었다. 역무원과 경찰들은 파란 시트를 둘러놓고 분주하고, 누군가는 무심하게 핸드폰을 바라보고, 나는 아직도 그 거리를 빠져나오지 못했다. 택시를 탈 생각인지 플랫폼을 떠나는 사람들과 계단에서 계속해서 밀려오는 사람들. 시간은 가끔 부재로 느껴진다고 하는데, 하나의 추락이 시간을 떨구고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가끔 그곳을 바라볼 때가 있다. 영화 '미야모토가 너에게'를 보았다. 

지금의 일본 영화들은 대부분 만화가 원작이다. 아니면 소설을 옮겨오고, 오리지널, 그러니까 애초부터 영화인 영화는 별로 없다. '미야모토가 너에게'도 아라이 히데키의 90년대 동명 만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 놓은 이야기를 재탕하는 일, 상업적으로 보장된 작품을 리메이크하는 것. 가끔은 오리지널리티 부재라며 싫은 소리를 듣고 눈총을 받는 일.  하지만 '미야모토가 너에게'엔 만화를 가져오며 계산을 하는 눈치가 없고, 시대를 의식하며 뒤로 물러서는 망설임이 없다. 시종일관 부딪히고, 실패하고, 깨지고, 피흘리고, 다시 부딪힌다. 세상이 우울과 위로로 가득찰 때 외면받는 아픔이, 이 영화엔 날것 그대로 담겨있다. 영업 사원이면서도 굽힐 줄 모르고,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3리터는 되는 술을 한 번에 들이키고,  자신보다 배는 될 체격의 남자 앞에서도 발톰을 숨기지 않는 미야모토는, 사실 우리가 보고 싶어하지 않는 실패와 상처 투성이 그대로다. 그의 삶을 바라보는 게 참 쉽지 않았다. 

'미야모토가 너에게'는 고독을 그리는 많은 영화들과 달리 투박하다. 촌스럽고, 단순하고, 솔직하다. 애초 술자리에서 생각이 다르다며 목청을 높이는 것 자체가 유치하고, 고독이란 대부분 체념을 동반해 그려진다. 하지만 미야모토(이케마츠 소스케)는 영업 사원이면서도 사람을 모르고, 아첨은 커녕 생각을 조금도 굽힐 줄 모른다. 편하게, 쉽게 살아간다는 게, 그에겐 그렇게나 힘이 든다. 부장 상사가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아내, 애 벌어 먹일 정도는 해야한다'는 말에 반박은 하지 않지만, 미야모토는 어김없이 미야모토여야 한다. 내가 나이기 위한 나의 분투. 영화는 고독을 이야기하지만 멈춰있지 않고, 이케마츠는 지난 해 마츠이 다이고 감독의 영화 '너는 너라서 너이다'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거구의 럭비 선수에 맞서다 이빨이 나가고, 팔이 부러져 기브스를 하고,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지만, 자신에게 다가온 과제와도 같은 거구의 산을 기꺼이 넘고 만다. ’負けてたまるか', 이 유치한 울부짖음에 부서지지 않는 고독을 보았다.

영화를 보며 나이를 느낀다. 음악을 들으며, 인터뷰 기사를 보며, 책을 읽으며 나이를 느낀다. 이건 곧 눈물이 많아졌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미야모토가 너에게'를 보며 또 다시 눈물이 터졌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나와 닮은 나를 이야기해 줄 때, 영화이든, 음악이든, 눈물을 흘린다. 알 수 없지만 어떤 기대, 혹은 의지(依支)가 눈물을 터뜨린다. 고독은 좀처럼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고, 우울이 고개를 드는 건 꽤나 힘이 드는 일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 순간을 부딪히며 끌어내고, 내가 아닌 너의 자리에서 고독의 자리를 빚어낸다. 이케마츠 소스케, 아오이 유우란 이름값을 가진 배우들이 할 거라 생각지도 못할 정도의 질펀한 시간이 거칠게 터져나온다. 너를 바라보면서 나아갈 수 있는 한 걸음이, 이 영화엔 쌓여간다. 너와 나의 사이, 둘을 잇는 그 관계가 가장 촌스러운 눈물을 흘린다. 너와 나의 이어짐, 너에 대한 기대 속의 나. '살아있는 건 모두 강하다'는 말이 외면하는 건 사실 어느 하나 없고, 나는 어쩌면 내 안에 수 많은 리메이크를 쌓아왔는지 모르겠다. 부딪히는 사랑과 사랑(ぶつかり会う愛と愛)이라 쓴 영화의 카피. 愛는 때로 영혼이라 읽기도 한다. 

**10월 20일 16시 마포구 서교동 후에고에서 '도쿄 살롱 #02' 진행합니다. 무료 입장, 가볍게 놀러오세요. 자세한 내용은 https://brunch.co.kr/@jaehyukjung/364 클릭하시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by ABYSS | 2019/10/18 17:01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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