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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세상이 내 편처럼 느껴졌다.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즈 워드'

이렇게 단도직입적인 영화를 본 적이 없다. 기아와 폭력, 혐오와 재난, 불평등과 테러의 현실을 훑어가면서도 이렇게나 명확하고, 흔들림없이 뻗어가는 이야기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없다. 하물며 빔 밴더스라는, 베테랑 거장의 이름으로 쓰여진 영화에서 이런 풍경은 다소 당황스럽다. 하지만 영화엔 알지만 모르고 있던 현실의 희망이 아른거리고, 보고도 지나쳤던 날들의 아픔이 스며들고, 앞뒤로 꽉 막힌, 숨통을 조여오는 듯한 지금, 이 현실에 숨어있을, 어딘가 잠자는 내일에 마음이 시큰해지는 순간이 있다. 결코 이곳을 버리지 않는 거대한 세계의 품 같은 게 영화를 감싸안는다. 교황 프란체스코의 삶이자, 말, 말이자 삶. 영화 '프란치스코 교황:맨 오브 히즈 워드'를 보며 나의 어제가 떠오른 건 어쩌면 어떤 기도의 한 장면이었는지 모른다. 화해란 말에 눈물이 떨어졌고, 보다 거대한 세상에서, 어쩌면 괜찮을 것 같은 이상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세례를 받은 지 20여 년, 성당을 외면한지 2년 여. 하지만 그보다 수도 없이 반복됐던 실패와 우울과 회복과 역경 속에, 영화는 내가 아닌 나를 돌아보게 한다. 보다 거대한 세상을바라보게 하고, 그 안의 나를 가능하게 한다. 자칫 개인의 신격화, 맹신과 추종이란 오해를 살, 충분히 그럴만한 이야기를 끌고가면서도 영화엔 결코 어느 하나도 홀로 두지 않는 관대함이 있다. 아픔과 증오가 태어나기 전의 시간, 모두가 자연스레 그저 곁에 자리했던 태초의 시간. 그 하늘을 등 뒤로, 세상이 조금은 내 편인 것처럼 느껴졌다.

영화는 프렌체스코 교황의 일생을 다룬다. 266명의 교황 중 유일하게 프란체스코란 교황명,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를 택한 인물, 청빈과 겸손, 소박함 그대로 프란체스코의 삶을 따라간 사람, 비유럽권, 남미 출신의 처음이자 유일한 교황. 영화는 그가 교황으로 위촉된 2013년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아우르지만, 그건 곧 폭력과 테러, 증오와 싸움으로 태초의 모습을 잃은 이곳의 위태로운 시간을 묵묵히 밟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지금을 살아가는 어느 종교인의 발걸음. 종교는 가장 가깝고 가장 멀어 언제나 막연한 자리에 있지만, 빔 밴더스는 그 막연한 발자국을 사람 마음 속에 깊이 남겨간다. 많이 보았던 풍경, TV나 뉴스 속에 수많이 스쳐갔던 장면, 밀입국을 시도하기 위해 망망한 바다에 표류하고 기아에 시달려 누워있는 것 조차 힘겨워 보이는 아프리카 대피소에서 프란체스코의 손짓, 눈 마주침, 어느 넓은 바다와 같은 포옹은 삶을 다시 삶이게 한다. 먼지로 더럽혀진 세상에 나약한 우리는 희망을 잃고 비틀대지만 발을 씻겨주며 건네는 포옹은 실패하지 않은 실패를 품어내고, 멸망이 다가올 것 같은 풍경에서 그의 말들은 주변을, 곁을, 우리를 향해있다. 자유와 선택, 죄와 용서, 때로는 기쁨이고 때로는 위태로운 시간을 걸어가는 세상에, 종교는 어쩌면 그런 그림인지 모른다. 수없이 무너지지만 다시 일어나는 아침, 죽음과 화해하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 프란체스코는 가장 실천하는 한 사람이지만, 그는 가장 이곳에 있지 않고, 최소한 그곳엔 선명한 내일이 있다. 수 천 년이나 흘러버린 이곳에서, 가장 실천적인 종교를 기도한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가난해질 필요가 있고, 나는 몇 해 전 '내게 필요한 건 나를 용서하는 일'이라고 긁적였던 어느 새벽을 떠올렸다. 그 눈물을 잊고 싶지 않은 2시간이었다. 
by ABYSS | 2019/11/14 21:45 | Cultur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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