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3일
퍼블릭한 계절의 언덕에서

#02 거리에 그린 피카소러첨 비비드한 컬러의 기형적 인물을 그리는 코류는 지난 여름 나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공감이란 건 작품을 소유하는 것에 한하지 않고 작품을 어떻게 자리하게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어제 아침 나는 아마도 근래 가장 일찍 집을 나와 합정동 거리를 배회했고, 조금 늦게 도착한 클럽의 주인은 10여 국의 잡지가 가득한 곳곳의 이야기를 서슴없이 늘어놓았다. 촬영을 마치고, 인터뷰는 하고 싶지 않다던 그의 말들을 기억하느라 머리를 되감으며 걷고, 또 걷다 문득 들어간 곳이 彼氏다. 남친도 없으면서 그곳에서 첫 수프 카레를 맛보았다. 없는 시간을 쪼개 마감도 조금 하고, 이런저런 메일도 처리하고, 한남동에 가야했던 탓에 마음은 바빴지만, 뼈가 시릴 듯 추웠던 그 날, 그곳에 남친이 있었다. 코류, 그녀는 거리의 그래피티에서 그림을 시작했고, 가까운 내일 퍼블릭 아트를 하고 싶다고 마지막 질문에 얘기했고, 그제 아침 나는 메일로 퍼블릭한 거절을 당했었다. 그렇게 차가운 겨울 ,오랜만에 걷는 이태원 언덕길에서, 면허를 따지 않는 한 다시 오지는 않을 것 같은 카페 주인은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묻는 말에 직접 내 핸드폰을 잡고 키보드와 씨름했고(내 핸드폰은 블랙베리다), 그걸 돕다 잠깐, 아주 잠시 손과 손이 스쳤다. 경리단으로 내려가는 언덕길은 조금 편해 빵을 사려 했지만 보이는 게 체인 빵집 뿐이라 하염없이 걷고 또 걷고. 지난 여름 '남의 것을 내것처럼 한다'는 코류의 말이 나는 그저 이상하기만 했는데, 작자 불명의 거리에서 느껴지는 거리감의 밀도는 아주 조금 따뜻한 겨울처럼도 느껴진다. 少しばかり暖かい.
# by | 2019/12/13 10:29 | Ein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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