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6일
어떤 회복에 관하여

#02 벌써 두 해나 흘러 빵을 공부하던 무렵의 기억은 길 잃은 순간만 여기저기 남아있고, 절반의 체념으로 끝나버린 시간은 어딘가에 숨어 '싱글즈'에 연재를 시작하며 문득 그 시절을 떠올렸다. 말하자면 절반의 결과만 얻은 셈인데, 세상은 그런 반쪽짜리 어제에 별 관심이 없다. 사실 10년을 넘게 글을 쓰며 연재가 많지도 않았지만, 처음은 아니었고, 이 무렵, 어딘가에 무언가를 쓴다는 건 왜인지 홀로 의미심장했다. 나머지 절반을 이어가겠다는, 다소 유치한 망상이기도 했고, 여전히 나를 모르는 나는 이 우연의 시작이 지나간 어제의 어떤 답일 수도 있다는 막연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어떤 근거도, 증거도 없는 소박한 망상. 하지만 그제 아침 문 너머 들려왔던 옥상달빛에, 세상은 가끔 망상이곤 한다. 시작부터 얘기하면 8년 즈음, 이사를 하고도 왕복 2시간의 단골 카페를 다니며, 눈인사를 나눌 뿐 별 다른 이야기를 한 적도 없는 비하인드의 사장 님과 단둘이 대화를 나누고, 인터뷰라고는 해도 좀처럼 마주할 수 없었던 시간을 함께하고, 촬영이 끝나고 그곳에서 아스파라거스 샐러드를 주문했다. 조금 일찍 도착한 그곳에 흘러나오던 옥상달빛. 한동안 많이도 울고 기댔던 날들이 떠올라 부끄러운 흥분을 감추지 못했지만, 세상엔 분명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우연의 세계, 망상의 축, 무력한 기억의 계절같은 게 흘러간다. 이제야 이름을 알게된 사장님은 'CD를 정리하다 그냥 꺼내봤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게 전부가 아니기도 하다는 걸, 이젠 조금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못난 어제도 빛을 내는 날이 때로 찾아온다. 세상의 절반은 어쩌면 망상 한 뼘이다.
🎼キセル、君の犬 너의 강아지.
# by | 2019/12/16 16:59 | Ein | 트랙백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