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静かに朝は
by ABYSS
잠들지 않는 노래, 파바로티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의 '투란도트'를 기억한다. 8년만의 올림픽, 당시 안도 마키와 아사다 마오에 쏟아지던 주목 속 뒤로 밀렸던 아라카와 시즈카가 빙판에 그려낸 푸치니의 오페라는 아직도 그 때의 4분 남짓이곤 한다. 아직 이너바우어가 건재하던 시절, 점프 경쟁이 가속화하는 지금의 빙판으로부터 무려 10여 년 전, 그건 곧 아라카와의 삶, 그녀의 4분이기도 했다. 고작 노래 한 곡이지만, 사실 그 시간은 때로 영원하기도 해 아름다운 음악 앞에서 말은 별 힘을 갖지 못한다. 제목부터 명확한,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론 하워드의 영화 '파바로티'는 그의 70여 년 생을 별 다른 수식없이 정리했고, 그건 사실 어찌할 수 없는 회고의 무능력한 오늘이기도 하다. 다소 복잡했던 여자 관계, 불행하고 차디찬 상처가 스쳐갔던 어린 시절, 파바로티의 삶이 결코 평탄했던 건 아니지만, 영화는 소리 소문 없이 그의 흔들리 없이 뻣어가는 노래를 끌고간다. 정작 주요한 트라우마, 꽤나 치명적이었던 아킬레스적 시간은 뒤로 슬쩍 빼고, 살며시 흘러보내며 끝내 아름답게 마무리된 한 곡의 자리를 잃지 않는다. 어쩌면 다소 나태하고, 게으른, 진부한 방식의 다큐멘터리이기도 하지만, 파바로티의 라 보엠을 들으며, 암 투병에서 돌아온 호세 카라레스, 3대 테너라 불리었던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선 무대에서의 '넬순 도르마'는 노래가 이곳의 희망일 수 있음을 어느새 흐느끼고 있다. 이 영화는 최소 돌비 시스템 극장에서 볼 이유가 있다.

노래가 모든 걸 용서하지 못한다. 노래가 아픔을 구원하지 못한다. 노래에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세상은 노래 한 곡 없이 어쩌면 잘만 돌아간다. 하지만, 어떤 새벽 보이지 않던 어둔 하늘에서 떠올리는 멜로디, 그저 지나쳤던 멜로디가 사무치게 다가오는 저녁 노을, 노래는 어쩌면 세상 전부이곤 하다. '파바로티'가 영화로서 훌륭한 자리에 있는 건 아니지만, 거기엔 노래로 남아있는 삶의 흔적들이 뭉클하다. 결국 한 곡의 노래로 끝나버리는 하염없이 무력한 시간의 절대적인 순간들. 화해를, 치유를, 구원을 애기하지 않지만, 내일을 바라보게 하는 믿음들. 파바로티의 노래 속에 그의 가족사가 가진 질펀한 상처들이 무화되는 건 아니지만, 영화는 노래가 스쳐갔던 날들의, 딱 그만큼의 아름다움을 아낌없이 간직한다. 클래식 음악에서 록 스타와의 협연, 광고를 도배하며 상업적 길을 오고갔던 날들, 세상은 파바로티를 이렇게, 또는 저렇게 이야기하지만, 어쩌면 사는 건 그렇게 거대한 게 아니고, 고작 노래 한 곡으로 충분한 시간은 분명 이곳에 흘러간다. 굴곡의 세월이 지나 어떤 우연은 그를 그곳에 데려갔고, 넬 순 도르마, 세상은 아직 잠들지 않았다. 영화가 유일하게 강조하는 건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했던 파바로티의 인간적 면모인데, 음악은 그렇게 나를 나이게 한다. 세상에 음악이 있다는 건, 아마 아직 남아있는 이곳에 대한 상상일지 모른다. 
by ABYSS | 2019/12/30 15:52 | Cultur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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