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장은 필요없어요.


얼마 전엔 이력서를 자필로 쓰다 아홉 장이나 버려버린 나지만, 지나간 어제를 생각하면 왜인지 마음이 편해진다. 아마도 지금은 지금이라 보이지 않는 것들이거나, 이미 결정난 날들의 기억이라서 겠지만, 남기도 돌아온 곳, 그렇게나 바보같던 날들도 조금은 애뜻하다. 어제 밤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라디오를 들으며, 그곳에 출연한 이와이 슌지 감독과의 대화를 들으며, 사람이 숨긴 애처로운 맘들을 여전히 그에게, 그리고 내게도 아마 있다. 영화 '라스트 레터'는 서로 주소를 잘못 찾은 편지의 어긋남, 그런 이야기라 하고, 그 작은 사소한 오해의 드라마는 15년 전 '러브 레터'의 오지 않을 답장처럼 느껴진다. 사실 이와이 감독 영화는 청초롭고 순백한 설산의 풍경이라기보다, 그곳에 숨어있는 실패하는 마음의 처연한 빛이기도 하고, 오래 전 함께 가던 버스를 멈추고 구매했던 그의 소설 '집의 개는 뜰안을 지키지 않는다'는 홀로 기괴하게 빛나는 마지막의 서사였다. '라스트 레터'는 소설이 원작이지만, 그건 촬영을 하며 감독이 떠올린 이야기를 엮어낸 원작 아닌 원작이고, 그의 영화를 생각하면 그런 시간상의 혼란은 오히려 이와이의 월드답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와이 슌지의 팬이라는 사실을 어제 처음 알았고, 코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50대 동년배 감독으로 그에게 보내는 메시지에 시간을 새삼 다시 돌아본다. 그리고!! AV 여왕으로 군림했던 쿠로키 카오루는 이와이 슌지 초기작에 출연을 한 적이 있다. 세월은 알 수 없이 오늘 곁에 흘러가고, 그러고 보면 집에 가는 길 언제나 지나온 길을 생각했고, 마츠 타카코의 아역으로 출연하는 모리 나나는  히로세 스즈를 묘하게 참 닮아있다. 모리가 부르는 주제가 고운 목소리의 노래는, 왜하필 'カエルノウタ'다. 

by ABYSS | 2020/01/31 15:14 | Cultur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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