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1LK와 너의 '공유 오피스'


첫날을 이야기하는데 일상의 디테일도 색감도 다르지만 내가 알던 그 첫날의 무드만은 닮아있다. 느지막히 TV를 틀고 '독립만세'란 프로그램을 한참 보고잇었다. 사실 요즘 나의 일상이라면 느긋이 TV를 볼 시간이 끼어들 틈새 없이 갑갑한데, 수많은 타인의 일상을 쫓는 일종의 '페이크 다큐'가 그리는 건 분명 일상이 일상이 아닌 듯 빛나는 지점에 있다. 내가 살던 집에서 나와 내가 살아갈 집을 고른다는 것. 달라진 환경에서 하루는 마치 딴 나라의 세상처럼 펼쳐질 것 같고, 그 순간 바보같은 환상과 흥분은 오직 내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름을 이제야 알게된 배우 김민석의 '예약된 듯 벌어지는 불후한 사건'에 내일이 아닌 듯 내일처럼 이입하도, 군대를 갔다고 하더니 얼굴이 몹시도 달라진 뮤지션 찬혁의 남산이 바라보이는 넓은 창에서 오래 전 가파른 경리단 길 사선으로 나있던 나의 창밖 풍경을 떠올렸다. 아무일도 벌어지지 않는데,주어와 시간, 그리고 공간만 달라졌을 뿐인데 왜 이런 이야기는 매번  나의 내 일상에 파고드는지. 그리고 스며드는지. 갑작스레 찬혁의 집을 방문한 이승철은 쳇 베이커의 LP를 올렸고, 작은 방 남의 '첫날'에서 흘러나오던 재즈 선율은 그 순간 시공간을 이탈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디까지나 늦잠에 덜 깬 감성의 '발광'이지만, 세상엔 공간을 떠나, 시간이 흘러 만들어지는 자리가 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모두 네 번의 ZOOM 인터뷰를 진행했다. 가장 먼저는 지난 여름 제주도에 오픈한 d-JEJU의 나가오카 켄메이와의 인터뷰, 그의 사무실, 이사를 하기 전 D&Department 오피스가 있던 오쿠시부의 그의 방은 '녹음'이 우거져있었는데, 당시 ZOOM 취재가 처음이라 질문과 질문을 제외하면 아무런 준비가 되어이지 않았던 내 화면에 등 뒤로 널부러져있던 옷과 옷가지들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는 불운의 올림픽 경기장을 설계한 건축가 쿠마 켄고. 역시나 그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했는데 쿠마 씨 등뒤로는 수 백권에 달할 책이 가득한 책장이 보였다. 알고보니 모두 자신의 작품에 관련한 서적들. 나의 경우를 말하자면 그나마 '백'을 바꿔보자고 협탁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켠 모니터엔 우리집 앙증맞은 곰돌이가 해맑게 웃고있었다. 그리고 하츠다이에서 시작해 시모키타자와, 올 여름 니시오기까지 3개의 점포를 갖게되는 책방 '후즈크에'의 주인 아쿠츠 타카시는 그의 '오샤레한' 책방이 보일거라 생각했지만 '보너스 트랙'에 입점한 '워크 스페이스' 1인실에 남아있는 공간은 없었다. 그리고 지난 4월의 초입 스타벅스에서 18년간 공간 디렉팅을 한 타카시마 마유는 새로 옮긴 회사의 라운지에서 카메라를 켰고, '일상에 공원을'이란 모토의 작업을 하는 곳다운 '비쥬얼의 경관'이 펼쳐졌다. 천장엔 하늘에서 솟아나온 듯한 나무가지와 로비엔 빛을 사용해 떨어지는 물방울, 테이블 옆엔 연못이 물결을 찰랑이고 나와 너의 거리를 확보해줄 꽃과 화초와 화분들. 20년 넘는 디지털 시대를 살면서, 그건 어디에도 없던 공간의 '출현'이었다. 

온라인의 일상이란 그저 차갑고 건조하고 디지털이란 말처럼 기계적으로 느껴지지만, 코로나 시절을 살며 그건 조금 뭉클한 대안의 일상이 되어가는지 모른다. 많은 게 제한되고 하지 못함의 다음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그건 언제 한 번 마주하지 못했던 나의 구석 자리같은 곳이기도 하다. 만나서 이야기하는 취재라면 옷이나 신발, 얼굴의 상태나, 소위 내 몸둥이 하나만 체크하면 되지만 코로나 시절 인터뷰를 하기위해 난 방의 물건을 정리하고 배열을 바꿔보기도 하고, 내가 아닌 '나의 자리'에 치장을 한다. 나를 소개하는 '요소'로 가끔은 벽에 붙은 모리 에이키의 사진이, 책장에 꽂힌 수 십권의 '브루타스'가 그리고 무심하게 놓인 몇 장의 LP 판이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난 이런 게 온라인 시절 기억으로 구현되는 '공간'이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애초 서로 다른 자리에서 고작 인터넷 망에 연결돼 나누는 이야기에 '장소성'은 물리적인 게 아니고, 그렇게 '장소'를 상실한 공간은 도리어 내가 보지 못했던 '자리'를 느끼게 한다. 비좁은 1LK의 형태가 아니라 그 안을 구성하고 있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그 넘어에 존재하는 것들. 고작 해시태그를 붙이며 경험을 공유하고 대화를 나누는 건 역시나 내 안에 잠재된 '기억'의 작용이고, 직접 만남이 제한된 시절 바다 건너 누군가와는 오히려 취재가 더 수월하다. 집에서 매일을 뒹굴며 일이 잘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건 그곳에 '일'과의 기억이 빈약하기 때문, 형태를 갖지 않는 것들에서 보이기 시작하는 '형태의 공간'이 있다. 

그리고 난 얼마 전 동교동 언덕 구석에 책상 하나 만큼의 자리를 렌트했는데, 빌려 쓰는 공간에서 나의 '지분'은 얼마만큼일까. 하지만 두 번의 전세와 두 번의 월세를 거쳐온 내 인생 절반은 '렌트의 일상'이기도 했다. 




by ABYSS | 2021/04/11 14:46 | Ein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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