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은, 우리의 '공간'이 될까요?

애플 뮤직에서 스포티파이로 갈아타고 4개월. 하나씩 채우기 시작한 플레이리스트가 무려 10개나 되어버렸다. ‘최신 가요'나 ‘인기곡 베스트'와 같은 카테고리가 별로 취향이 되지 못하는 탓에, 좋아하는, 혹은 새로 알게된 뮤지션의 맘에 드는 곡들이 흘러나올 때, 핸드폰 창을 열고 플레이리스트 추가 버튼을 누른다. 록음악이나 소울 뮤직, 혹은 일본의 인디 밴드들이나 CF에서 들었던 ‘훅 했던’ 이름모를 노래들. ’근래엔 퓨마 블루에 빠져 그들의 노래만 줄창 들었더니 그와 비슷하게 ‘세상 가장 슬픈' 노래들이 리스트에 수두룩 쌓여버렸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플레이리스트에 장르상 구분은 당연히 없고, 어제의 리스트 01번이 오늘은 왜인지 03으로 느껴지는 날도 더러, 혹은 왕왕 있다. 어쩌면 나의 감정적 기복, 변덕이 만들어낸 ‘리스트의 음악'인걸까. 하지만 스포티파이를 시작하고 처음 만든 리스트의 이름은 ‘うぬぼれた日(반해버린 날).’ 그곳에 내가 가장 착했던, 세상이 돌연 아름답게 느껴지던 시간(기억)이 혹시나 ‘쌓여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암 투병에서 두 권의 베스트셀러를 냈던 사진가 하타노 히로시는, ‘나는 기분이 매우 좋을 때 셔터를 누른다. 그건 곧 사진엔 나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담겨있다는 이야기이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플레이리스트'가 (어쩌면 내게만) 붐이다. 5, 6년 전 애플 뮤직에 각자의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할 수 있는 방식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이게 무슨 소용일까 싶기만 했는데, 그 ‘무슨 소용일까 실은’ 계정에 내게도 팔로워라는 게 있었다. 그러고 보면 (트위터에서만) 친한 누구는 본인의 ‘플레이리스트'를 종종 ‘트윗'하기도 했고, 요즘 유튜브 채널 중엔 심심찮게 ‘플레이리스트’ 채널들이 보이기도 한다. 방식도, 스타일도 다양해 근래엔 문장으로 제목을 쓰는, 말하자면 ‘장면, 상황 별 나눔의 카테고리'가 유효해 보이기도 한다. ‘아쉬움은 씁쓸한 커피향을 닮았다. 아련해지는 노을 재질 인디’랄지, '비오는 날, 추적추적 빗줄기에 생각을 흘려보내’랄지. 근래 서점가 에세이 코너의 책장 하나를 그대로 가져온 듯한 느낌도 드는데, 애초 플레이 ‘리스트', 수많은 노래 중 몇 곡을 추리고 골라 배열을 한다는 건 ‘생각의 표현', 소위 ‘큐레이션'이라는 작성자의 감성이거나 감정, 혹은 생활의 다양한 것들이 작용해, ‘선택'이란 행동으로 이어진 ‘순간의 기록’에 다름 아니다. (선택된) 노래에서 드러나(내)는 ‘누군가의 일상 한 자락이랄까. 오래전 ‘테이프 시절에는 라디오에서 녹음한 음악 테이프를 누구가에게 전하곤 했는데, 세상은 지금 음악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시작한 걸까. 지난 4월, 무인양품은 매장에서 틀어오던 BGM을 일부 스트리밍에 공개하기 시작했다.

뒤늦게 일어난 아침, 트위터에 odol의 ‘sleep’ 리스트가 올라와 있었다. odol은 몇 해 전 그저 시간이 맞는다는 이유로 시부야 라이브하우스에서 처음 마주했던 4인조 밴드인데, 무슨 영문인지 공연이 시작하고 끝이 날때까지,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수 년 전 병원에서의 칠흙같던 날들이, 이후 일어나지 못했던 늦은 새벽녘의 기억이 왜 하필 그곳, 무대에서 나를 울리고 있었다. 손에 든 진저에일을 한 두 모금은 마셨었나. 아마도 나보다 조금 크거나 비슷할 보컬 미조베 료는 공연 도중 주머니에서 립밤을 꺼내 입술에 곱게 바르기도 했는데, 어쩌면 난 그 날 처음으로 나를 용서했던 것도 같다. 새삼 음악이란 무엇인지. 그들은 이후 ‘awake’란 플레이리스트도 공개했고, 날 울렸던 노래들은 어디로 갔는지 요즘은 해맑게 맑은 아침녘의 노래들이 TV의 CM으로 쓰이고 있기도 하다. 새삼 세월은 무엇인지.

집에선 손바닥만한 블루투스 스피커로, 밖에 나올 때면 늘, 귀에 이어폰을 꽂고 사는 나는 노래에 눈물을 닦던 날이 숱하게 많(았)지만 여전히 제자리인 듯 싶고, 돌이켜보면 인생은 bgm인데 그곳의 이야기를 나는 아직도 잘 모르곤 한다. 그저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가끔 불어오는 봄바람에 나도 모르게 또 하나의 노래를 저장하고 있다는 ‘사실(하루).’ 그런데 노래는 정말, 나를 구원할 수 있나. 피쉬만즈의 노래 중엔 ‘구원받는 기분(救われる気持ち)'이란 곡이 있다. 아무 상관이야 없(겠)지만, odol의 리스트엔 들어있지 않다.

odol의, sleep

https://open.spotify.com/playlist/72DCf3agvhMQAbRsn64dxh?si=96039e73ed294d16

장소가 기억하는 음악이 있다. 음악이 간직하는 기억이 있다. 음악에 떠오르는 시간이 있고, 시간이 불러오는 음악이 있다. 그리고 이건, 모두 코로나 때문에 하고있는 이야기인지 모른다. 365일 거의 빼놓지 않고 노래를 들으며(혹은 스치며) 사는 인생인데, 새삼 ‘플레이리스트'를 이야기하는 건, 돌연 잃어버린 일상에서 노래는, 내가 알던 그 곡은 사라지지 않고, 여지없이 흐르고 들려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래 전 첫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지인은 멀리 뉴욕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잃어버릴 때(정확한 타이틀은 아니지만)'란 제목의 글을 보내준 적이 있는데, 그런 상실에서의 bgm. 유니클로는 ‘lifewear’를 이야기하다 못해 음악(MUSIC)을 덧붙여 유튜브에 영상을 공개하기 시작했는데, 그런 ‘옷장'에서 흐르는 음악들.

일본에선 센토에 가지 못하자 사우나가 인기를 끌며 ‘칠 아웃' 플레이리스트가 ‘센토' 이름으로 올라오기도 하고, 그런 ‘이상한 트랙’이 구현하는 ‘잃어버린 공간’의 환상이 어쩌면 이곳엔 있다. 음악엔 애초 시제가 없고, 공간을 초월하고 시대를 망라하며 때로는 ‘일상'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도 하는, 시대를 건너(抜けて) 인생을 관통하는 ‘아이러니'가 담겨있는걸까. 때로는 나를 구하고, 때로는 배신하는. 그렇게 오늘이 되었다 어제가 되기도 하는. 무인양품이 공개한 bgm의 주제는 ‘초여름을 보내다', 그들이 이야기한 건 ‘기분 좋은 일상을 제공하다’였다.

‘사도'란 드라마가 있다. 일견 ‘고독한 미식가'의 ‘사우나' 버전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 드라마는 쿠스미 마사유키의 ‘고독한 미식가'가 ‘혼자의 식사'에 대한 예찬으로 시작하는 것처럼 사우나를 ‘최고의 힐링', 만인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일상의 ‘휴식'이란 행위로 규정하며 문을 연다. 이야기는 그야말로 ‘고독한 미식가'의 ‘식食'에 센토의 ‘유湯'를 대입한 것과 같은 느낌. 주인공을 68년생 미야케 히로키가 맡았는데,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 씨와 마찬가지로 어디까지나 ‘아저씨'의 드라마, 샐러리맨의 팍팍한 일상 속 숨은 ’틈새의 이야기’를 그린다. 다만, 여기에 코넬리우스의 음악이 흐른다. 인트로 나레이션 부분에, ‘토토노우,' 소위 사우나의 ‘활홀경'이라 부르는 상태에 빠졌을 때의 bgm. 코넬리우스라면 전자 음악을 중심으로 90년대 이후 어디까지나 젊은, ‘도쿄의 감성'의 음악이기도 한데, 무려 ‘중년 아저씨'들의 아지트, 센토와 아무런 위화감 없이 만나버린다. ‘토토노우'로서의 센토와 ‘칠아웃’으로의 코넬리우스. 음악은 무엇을 잇고, 무엇을 소환하는가. 극중의 유일하게 젊은 배우 이소무라 하야토는 ‘센토는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릴 만큼 강렬한 취미'라 이야기했다. 센토의 플레이리스트, 음악은 이곳에 무엇을 구현하고 있나. 코넬리우스의 ‘사도' 주제가 제목은, ‘사우나가 너무좋아'였다.

플레이리스트가 붐이다. 유튜브 내의 선곡 채널은 물론 책방이, 카페가, 어패럴 브랜드가 플레이리스트를 제작, 그리고 공개한다. 단순히 쇼핑가에 틀어놓은 찢어질 것 같은 대용량 볼륨의 유행가가 아니라, 시간, 일상을 바라보는 ‘음악’들이 움직이고 있(는지 모른)다. 지난 봄 시모키타자와에 2호점을 오픈한 작은 책방 ‘후즈크에'는 독서를 위한 음악, ‘책을 읽게하는 소리'란 타이틀의 앰비언트 앨범을 출시했고, 유니클로가 유튜브, 단 30분에 그려낸 한 컷의 일상은, 우리곁에 흘러가는 다반사의 ‘재연'이었다. 스타벅스는 매장의 bgm을 고를 때 귓가에 오래 남지 않을 것, 유명한 곳들을 피할 것 등의 조건이 있다고 하는데, 그들은 별 일 없는 우리의 일상을 이미 짐작이라도 하고 있었던 걸까.

센토의 플레이리스트는 그저 센토와 칠아웃, 그 음악과의 궁합이 좋았을 뿐일지 모른지만, ‘공간'이 아야무야해진 시절, 우리는 소리로 그곳을 기억한다. 음악으로 그 자리를 돌아본다. 구원이 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기억한다는 것. 일본의 소설가 오가와 사토시는 ‘코로나 이후 우리가 잃은 건 공간이 아닌, 그 안에서의 ‘만남'이었다'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런 시절의 주름같은 것. 그러니까 bgm은 일상이 될 수 있나요. 음악은 늘, 내게 지나간 날들을 일러주었다. 그러니까 ‘구원받는 기분들.’ 플레이리스트를 듣는다.

©️ Hideki Hamada

by ABYSS | 2021/06/16 17:53 | Cultur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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